주간동아 408

2003.11.06

“5억년 전 한반도 호주 중국은 이웃”

과학자들 “세 지역서 발견된 삼엽충 화석 모두 같은 種 … 얕은 바다로 이어져 있었다는 증거”

  • 유지영/ 과학신문 기자 jyryoo@sciencenews.co.kr

    입력2003-10-30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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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억년 전 한반도 호주 중국은 이웃”

    멸종한 삼엽충 화석, 성체 매머드,목포자연사 박물관에 전시된 공룡 렙토세라톱스(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요시무라스피스(삼엽충의 한 종류)씨, 당신은 어디 사시죠?”

    “제가 사는 곳은 북중국과 한반도의 영월지방, 그리고 호주 대륙이 맞닿은 얕은 바다입니다.”

    “지금 장난해요? 한반도와 호주가 맞닿아 있다니요?”

    “아, 글쎄 그렇다니까요. 제가 젊었을 땐 호주랑 한반도는 한 두어 시간쯤 헤엄치면 오갈 수 있는 거리였답니다.”

    지금으로부터 5억년 전 바다를 점령했던 삼엽충과 대화를 시도하면 이런 내용이 될지 모른다. 삼엽충이 증언하는 당시 대륙의 모습은 지금과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12시간 이상 타야 겨우 닿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는 호주 대륙과 한반도가 5억년 전에는 얕은 연안을 사이에 둔 이웃이었다는 게 고생물학자와 고고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렇다면 과학자들은 무슨 근거로 이런 놀라운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이미 과거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는데도 말이다. 그 근거 중의 하나가 바로 고생물의 흔적인 ‘화석’이다.

    범죄 현장에는 늘 증거가 남아 있듯, 시간의 흐름은 화석이라는 흔적을 남기게 된다. 과학자들은 화석을 이용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기억이 미치지 않는 시공간을 역추적한다. 특히 삼엽충 화석은 고생대를 충실하게 증언하는 대표화석으로 학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삼엽충은 이동거리 적은 바다생물

    “5억년 전 한반도 호주 중국은 이웃”

    중생대의 표준화석인 고사리화석.

    삼엽충은 약 5억4000만년 전부터 약 2억450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캄브리아기에서 페름기까지 고생대에 번성했던 생물종이다. 고생대의 바닷속에는 약 110과의 생물이 번성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중 절반에 가까운 50과가 삼엽충이었다. 가히 고생대 바다를 점령했던 생물종이라 할 만하다.

    삼엽충의 서식지는 고대 지질환경을 재구성하는 데 중요한 증거로도 활용된다. 삼엽충은 바다 생물이기는 하나, 고생대 오르도비스기까지는 대개 얕은 바다에서 살았기 때문에 이동 폭이 크지 않았다. 대륙간 이동이 불가능했으므로, 비슷한 종의 삼엽충이 발견되는 곳은 연안으로 분리된 육지거나 지리적으로 근접해 있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 따라서 삼엽충의 화석은 고대 지도를 그리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과학자들이 호주와 중국 한반도가 5억년 전에는 이웃해 있었을 것이라고 믿는 것도 바로 이 삼엽충 화석 때문이다. 우리나라 강원도 태백과 영월에서 쏟아져 나오는 삼엽충 화석이 북중국이나 호주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종이라는 사실은 이들 지역이 얕은 바다를 통해 이어져 있었다는 결정적인 증거다.

    국내 삼엽충 연구의 대가로 손꼽히는 서울대 최덕근 교수는 영월과 태백 지역의 삼엽충을 연구, 북중국과 호주에서만 보고된 요시무라스피스(yosimuraspis)와 코라입시스(koraipsis) 종을 확인한 바 있다. 최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북중국-한반도-호주 근접설을 주장했고, 이는 학계에서 정설로 인정받고 있다.

    최교수는 “학자에 따라 강원도 태백은 북중국에 가까운 반면, 영월은 남중국에 가까웠다는 식으로 분리하기도 하지만, 삼엽충의 분포도를 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영월과 태백은 모두 북중국, 호주와 같은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고 설명했다. 즉 삼엽충의 증언을 통해 5억년 전에는 한반도를 사이에 두고 왼쪽은 북중국, 오른쪽은 호주대륙이 맞닿은 형상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이 주장은 고생대의 지질학적 특성에 대한 연구에서도 재차 확인됐다.

    “5억년 전 한반도 호주 중국은 이웃”

    강원도 태백 지역은 고생대 화석의 보고로 손꼽힌다. 서울대 최덕근 교수팀이 발견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4억9000만년 전 극피동물의 화석.

    과학자들은 고생물학과 고지질학이 ‘잃어버린 지구의 역사’라는 거대한 퍼즐의 조각을 찾는 작업이라고 표현한다. 화석과 지각탐사 등의 고된 작업을 통해 얻어지는 편린이 모여, 38억년의 지질시대를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는 지구의 미래를 유추하는 시나리오라는 게 과학자들의 주장이다.

    화석 연구는 바로 이 재구성 작업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자 가장 중요한 퍼즐 조각을 모으는 작업인 셈이다. 여기서 삼엽충은 여러 개의 조각을 찾아낼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이 때문에 과학의 역사가 오랜 유럽에서는 고지질학이야말로 중차대한 임무를 띤 ‘우아한’ 학문으로 존경받고 있다.

    국내 고생물 연구 낙후 … 일본에 의존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삼엽충 연구를 비롯해 고생물 연구 기반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 실제 한반도의 고생물이나 고지리에 대한 연구는 거의 대부분 일본인 학자에 의해 이뤄졌다. 화석 발굴과 같은 기초적인 작업도 마찬가지다. 강원도 태백 및 영월의 삼엽충 연구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미 1920년대에 도쿄대 고바야시 교수에 의해 대부분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서구 학자들도 한반도의 고지질학을 연구할 때 고바야시 교수의 논문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형편이다. 화석 연구 전반으로 영역을 넓히면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한반도 신생대 포유류 진화의 비밀을 풀 수 있는 희귀 화석본은 모두 일본 도쿄대 박물관 창고에 보관되어 있으며, 국내에서는 관련 연구의 진척이 매우 미미한 형편이다. 아쉬운 대로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융남 박사가 한반도 포유류 화석 연구를 통해 성과를 올리고는 있으나, 중요도에 비해 투자가 미흡한 상황이다.

    우리 고생물학이 일제 강점기를 전후해 일본인에 의해 이뤄진 연구 수준에서 멈춰 있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한반도가 고생대는 물론이고 중생대 신생대에 걸쳐 지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부진한 국내 고지질학 연구는 곧 전 지구적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더구나 영월과 태백은 삼엽충 화석의 보고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화석이 발견되고 있을 뿐 아니라, 지역적으로 동북아 지역의 고생대 지리환경과 생물상을 복원하는 열쇠이며 조사 대상 지역을 북한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는 만큼 지원과 관심이 절실하다.

    한반도가 중국 대륙과 다른 대륙을 잇는 경계선이었을 가능성이 크므로, 남북한의 화석 연구는 동북아 지역의 대륙 이동이나 생물 진화상을 가늠할 수 있는 결정적인 열쇠일 수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의 고생물학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묵은 진화 논쟁은, 지리적으로 중간에 위치한 한반도에 관한 연구에서 결판이 날 것으로 과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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