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8

2003.11.06

“짧은 시간에 당신 능력을 보여줘”

가요 뮤지컬 등 오디션 통해 인재 찾기 일반화 … ‘스타 등용문’ 인식 끼 많은 초보들 응시 열풍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10-30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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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시간에 당신 능력을 보여줘”

    한 뮤지컬 배우 오디션을 앞두고 연습실에서 지정된 춤을 연습하는 응시자들



    오디션(Audition): 오페라 뮤지컬 등의 흥행을 위해 인재를 찾아내는 시험. 라틴어의 ‘경청하다, 청력’을 뜻하는 ‘아우디레(audire)’에서 유래한 말로 초기에는 오페라극장에서 가수를 채용할 때 청각에 의한 판단만으로 당락을 결정했던 것을 가리켰다. 20세기 들어 공연 영화 방송 등에 출연하는 배우 음악가 등을 뽑기 위한 시험 모두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두산세계대백과 사전 중에서).

    오디션. 2,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리 익숙지 않은 단어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뮤지컬 오페라 가요 등 음악계 전반에서는 오디션을 통해 숨은 재목을 찾는 일이 일반화되고 있다. 오디션을 통해 제작사는 새로운 인재를 찾고 신작을 홍보하기도 한다. 응시자 입장에서는 오디션의 좁은 문을 뚫으면 스타로 탄생하는 기회를 거머쥐는 셈이다. 이 때문에 장르를 막론하고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오디션에 도전하는 새내기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초등학생이 케이블 TV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응모하는가 하면, 누가 들어도 이름을 알 만한 배우가 신참 배우들 사이에 끼어 뮤지컬 오디션을 보기도 한다.

    오디션이 가장 일반화된 장르는 뮤지컬이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이 모든 캐스팅을 오디션으로 선발한 이후, 뮤지컬계에서는 작품 규모를 막론하고 오디션을 통해 배우를 찾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 당시 ‘오페라의 유령’ 제작진은 남경주 등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윤영석 김소현 류정한 등 신인급들을 선발, 큰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이들이 제 몫을 훌륭하게 해내 제작진의 안목이 옳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응시자 많아도 원하는 인재 적어 ‘선발 고심’



    “짧은 시간에 당신 능력을 보여줘”

    예술학교 학생들의 오디션이 줄거리인 뮤지컬 ‘페임’.

    한 뮤지컬 관계자는 “오디션이 정착되면서 노래를 잘하는 성악과 출신들이 뮤지컬에 많이 유입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오디션에 응시하는 사람 자체는 많으나 제작진이 원하는 인재는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오디션은 미래의 재목이 아니라 특정 배역에 맞는, 완성된 배우를 선발하는 절차입니다. 때문에 신인이 오디션을 통과하기는 쉽지 않아요. 또 뮤지컬 제작사 중에서는 자사 소속 배우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소속 배우들이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죠.”

    뮤지컬만큼 관례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오페라 무대에서도 서서히 오디션이 정착되고 있다. 그동안 오페라는 ‘밀실 캐스팅’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오페라 출연이 곧 실적으로 인정되는 분위기 속에서 많은 대학교수 지망생 성악가들이 자비를 들여서라도 오페라 무대에 서려 했던 것. 그러나 1996년 예술의전당이 오페라를 자체 제작하며 처음으로 오디션을 실시해 윤이나 김재형 등 실력 있는 신인들을 발굴해냈다. 이후 예술의전당은 대부분의 자체 제작 오페라 캐스팅을 오디션으로 선발했고 현재는 국립오페라단도 상근단원 오디션 등을 실시하고 있다. .

    “예술의전당은 1차 오디션 통과자에 한해 오페라극장 무대에서 2차 오디션을 실시합니다. 이때 대부분 당락이 결정 나죠. 단순히 노래 잘하는 응시자는 적지 않지만 무대에서 완성된 연기로 감정을 표현해내는 응시자는 예상외로 적습니다. 또 각 배역에 딱 맞는 사람을 선발하기 때문에 실력보다는 배역에 어울리지 않아 떨어지는 응시자가 더 많죠.” 고희경 예술의전당 공연기획팀장의 말이다. 예술의전당은 8년 동안 오디션을 실시하면서 다양한 성악가들의 ‘데이터베이스’를 확보했는데 이것도 오디션이 안겨준 부수적인 수익이라고 한다.

    ‘응시자 수 자체는 많지만 정작 인재는 찾기 힘들다’는 말이 가장 들어맞는 것은 대중가요 쪽이다. 실제로 기획사, 방송국 등에는 ‘가수가 되고 싶다’며 청소년들이 보내온 데모테이프와 지원서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SM엔터테인먼트 등 대형 기획사들은 매주 공개 오디션을 열어 연습생을 선발하기도 한다. 실제로 ‘신화’ ‘god’ 보아 등 현재의 스타들 중에는 오디션으로 선발된 연습생 출신이 적지 않다.

    과거 대형 기획사들은 특히 미국 현지 오디션을 선호했다. 영어가 되고 국내파에 비해 세련된 응시자들이 많다는 이유 때문. 하지만 ‘유승준 파동’ 이후로 미국 현지 오디션이 사라진 대신, 최근 들어 중국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둔 중국 현지 오디션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예전엔 교포 대상으로 미국 현지 오디션 성행

    공개 오디션 자체가 별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기획사도 있다. 세븐 휘성 ‘빅마마’ 등을 배출한 YG엔터테인먼트의 이진석 부장은 “우리가 찾아낸 인재들은 대부분 오디션보다는 관계자들의 소개 등으로 발굴했다”고 설명했다. “가요계 바닥이 넓은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좁습니다. 쓸 만한 인재들은 대부분 각 기획사들이 파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실제로 ‘길거리 캐스팅’을 나가서 괜찮다 싶은 인물을 찾아내면 이미 소속사가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요계가 공개 오디션에 대해 시들해하는 것은 음반 시장의 불황 탓도 크다. 한 관계자는 “음반 판매가 워낙 부진하다 보니 오디션 등 적극적인 방법으로 신인을 찾을 여력이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와중에 몇몇 기획사들은 소위 ‘ARS 오디션’이라는 방법으로 전화를 통한 오디션을 실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요 관계자들은 이 ‘ARS 오디션’은 기획사의 장삿속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정말 인재를 찾기 위한 오디션이라면 기획사가 돈을 써가면서 사람을 찾아야죠. 왜 응시자들한테서 돈을 받습니까. 가수가 되고 싶다면 차라리 기획사에 데모테이프를 보내는 게 더 나은 방법이죠.” 한 관계자의 지적이다.

    “짧은 시간에 당신 능력을 보여줘”

    케이블 TV ‘엠넷’의 ‘오디션 대작전’ 프로그램 중 한 장면.

    케이블 TV 중에는 아예 오디션 과정 자체를 정규 프로그램으로 편성해놓은 곳도 있다. 음악방송인 ‘엠넷(m.net)’은 7월부터 ‘오디션 대작전’이라는 프로그램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매주 7, 8명의 가수 지망생들이 나와 개인기와 노래로 대결을 벌여 한 주에 2명씩을 선발한다. 매주 참가신청을 하는 청소년만 200명이 넘는다고. 엠넷측은 연말결선을 벌여 최후까지 남은 승자에게는 가수로 데뷔할 수 있도록 주선해준다는 방침.

    “현장에서 당락을 가리기 때문에 그 자리에 주저앉거나 엉엉 우는 친구들이 많아 보기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청소년들이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고 이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 해요. 그렇다면 차라리 공정한 경쟁을 통해 실력자에게는 가수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오디션 대작전’의 조용현 PD는 “어른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안 될지 몰라도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가진 아이들은 수학능력시험 준비하듯 열심히 오디션을 준비한다. ‘오디션 대작전’은 그런 아이들이 꿈을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라고 설명했다.

    과거에는 ‘얼떨결에 친구 따라 오디션에 응시했다가 친구는 떨어지고 나만 됐다’는 식으로 오디션을 통해 신데렐라처럼 등장하는 스타들이 가끔 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스타는 없다. 장르를 막론하고 철저히 준비한 사람들만이 바늘구멍보다 더 좁은 오디션의 관문을 뚫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오디션 통과자들은 무서울 만큼 치열한 경쟁을 이겨낸 사람들이기 때문에 작품을 대하는 자세 자체가 다르다고 한다. 장기간의 오디션을 거친 뮤지컬 ‘맘마 미아’의 경우, 선발된 배우들은 이미 오디션 과정을 통해 작품 전체를 다 파악하게 되었을 정도다.

    이런 가운데 내년 8월 공연 예정인 ‘미녀와 야수’ 제작진은 11월 중 실시될 오디션에서 ‘브로드웨이와 동일한 객관적 심사기준’을 적용할 방침이라고 밝혀 눈길을 모으고 있다. 즉, 가스통 역은 키 180cm 이상, 아역인 칩은 키 127cm 이하, 미세스 폿츠는 낮은 F#에서 높은 E까지 낼 수 있는 알토 하는 식으로 객관적 기준을 적용한 오디션을 실시하겠다는 것. ‘미녀와 야수’ 제작사인 제미로측은 “브로드웨이에서 오디션을 할 때는 이 같은 객관적 기준을 충족시키는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된다. 보다 배역에 어울리는 배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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