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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열풍’ 거품에서 실속으로

해외 취재진·팬들 방한 러시 … 보아 성공적 日 진출, 드라마 수출가도 급등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한류 열풍’ 거품에서 실속으로

‘한류 열풍’ 거품에서 실속으로

일본팬을 위한 팬미팅 현장에서 노래하는 그룹 ‘신화’와 열광하는 일본 팬들.

장면 하나. 영화 ‘스캔들’의 언론시사회가 열린 9월23일, 시사회장을 찾은 기자들은 뜻밖의 ‘사태’에 맞닥뜨렸다. 교토통신, NHK 등 40~50명의 일본, 대만 기자들이 ‘스캔들’을 보러 오는 바람에 한국 기자 80여명이 시사회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것. 외국 기자들은 ‘스캔들’의 주연배우인 ‘겨울연가’ 주인공 배용준 주위에 몰려들었다. ‘스캔들’의 제작사는 이날 영화를 보지도 못하고 돌아간 한국 기자들을 위해 부랴부랴 추가 시사회를 마련했다.

장면 둘. 9월29일 코엑스 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 그룹 ‘신화’의 일본 언론 대상 기자회견이 열렸다. 마이니치신문, 아사히 TV 등에 소속된 40여명의 일본 기자들이 ‘신화’ 멤버들과 소속사인 굿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에게 향후 ‘신화’의 일본 활동 계획에 대해 중점적으로 질문했다. 이들은 일본의 ‘신화’ 팬들을 대상으로 한 ‘신화와 함께하는 엠넷 투어’를 취재하러 온 기자들이다. 이 투어를 통해 일본의 ‘신화’ 팬 400여명이 한국을 방문했다. 굿 엔터테인먼트 박권영 사장은 “내년 2월 ‘신화’의 일본 콘서트를 비롯해 앞으로 ‘신화’의 일본 진출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아, 일본서 연매출 1000억원 수준

9월 말에 일어난 이 일련의 ‘사건’들은 기존의 한류 열풍이 드디어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인가 하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동안 꾸준히 보도돼온 한류 열풍은 어딘가 미심쩍은, 믿어지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모 영화배우가 한류 열풍으로 80억원의 광고 효과를 냈다든가 500만장의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든가 하는 보도는 꼭 먼 나라의 일처럼 막연하게만 들렸다. 그러나 이처럼 해외의 기자들이나 팬들이 적극적으로 찾아오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드디어 한류가 구체적인 성과를 거두는 것일까?

‘한류 열풍’ 거품에서 실속으로

일본, 대만 기자들이 대거 몰린 영화 ‘스캔들’의 시사회장(왼쪽). 외국 기자들은 드라마 ‘겨울연가’의 주인공인 배용준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사실 일련의 보도처럼 한류 열풍이 순조롭게 경제적 이득으로 연결돼온 것은 아니다. 한류 열풍의 중심이자 아이콘이 된 가수 보아의 경우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측이 “보아의 일본 진출을 준비하는 데 걸린 시간만 총 5년이다. 그런데 수익은 지난해부터 나기 시작했다”고 토로할 정도다.



“보아의 성공사례를 보고 다른 가수들이 자꾸 일본 진출을 시도하는데 일본 시장 진출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우선 언어 문제 하나만 보더라도 가수가 일본인 수준의 일본어를 구사하지 않고서는 일본 시장에서 성공하기는 어렵습니다. 또 일본 현지의 파트너 기업과 신뢰관계를 쌓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려요. 형식적 규제는 없지만 심리적인 폐쇄성은 어느 곳보다 강한 곳이 일본 시장입니다.” SM 한세민 기획팀장의 말이다.

보아가 현재 일본에서 올리는 연매출액은 1000억원 수준. 그러나 이 엄청난 수익이 모두 한국으로 오는 것은 아니다. SM은 보아의 일본 진출 과정에서 현지 음반사인 에이벡스(AVEX)와 합작 투자했다. SM측은 “보아가 거둔 수익은 에이벡스와 SM이 나눠 갖는다”고만 밝히고 그 수익의 정확한 분배 비율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수익률이 일반인들이 예상하는 만큼 크지는 않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한류 열풍’ 거품에서 실속으로

일본 및 동남아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가수 보아(왼쪽)와 영화배우 원빈.

중국 시장은 더욱 오리무중이다. 지적재산권 개념이 불분명한 중국은 불법 복제음반의 천국이다. 때문에 우리 가수들이 중국에서 인기를 얻는 것과 그 인기를 바탕으로 수익을 거두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현실적으로 중국 시장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한국 가수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획사들은 중국이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만큼, 앞으로는 지적재산권 문제가 보다 투명해지리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당장 국내의 현실에 비추어봐도 거대한 중국 시장에서 불법 음반이 단시간 내에 사라지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언론이 떠든 한류 열풍에는 분명 과장된 측면이 있다. 중국 시장을 엘도라도쯤으로 생각하고 몰려가던 음반제작자들이 이제 자중하는 분위기다”고 전했다. 한국콘텐츠문화진흥원의 전현택 차장(국제마케팅팀)도 “중국에서 인기 있는 외국 가수 10명 중 9명은 강타, NRG, 장나라 등 한국 가수라는 구체적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반수익은 기대하기 어렵고 공연수익은 미미하다. 이 상황은 당분간 바뀌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나 드라마는 음악에 비하면 그래도 전망이 밝은 편이다. 특히 드라마는 그동안 꾸준히 이루어진 협상과 한국 드라마 자체의 수준 향상에 힘입어 최근 안정적인 수익구조가 성립된 상황이다. 중국 대만 홍콩 말레이시아 등 중화권에는 주말드라마는 물론 사극, 일일드라마 등 국내 드라마의 대부분이 수출되고 있다. 수출가 역시 최근 3, 4년 사이에 서너 배 이상 뛰어올라 이제는 일본 드라마의 가격과 비슷해졌다.

‘한류 열풍’ 거품에서 실속으로

일본 취재진들이 몰려 열띤 취재경쟁을 벌인 ‘신화’의 일본 언론 대상 기자회견

특히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일본 NHK 위성TV에서 한국 드라마인 ‘겨울연가’가 방송된 것은 한국 드라마 수출사에 큰 획을 긋는 ‘사건’으로 손꼽힌다. ‘겨울연가’는 일본 시장에서 미국의 인기 드라마 ‘ER’ 정도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NHK측은 12월부터 ‘겨울연가’를 재방송할 계획이다. 일본 내 한국어 방송인 KN-TV의 무토 요시모리 사장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로 일본의 젊은 시청자들이 부쩍 한국 드라마나 가수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더해 케이블방송, 위성방송 등으로 아시아 각국 TV의 채널이 늘어나면서 방송 콘텐츠의 수요가 늘어났다는 점도 한국 드라마의 수출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드라마보다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영화 역시 한류 열풍이 서서히 구체적 수익으로 연결되고 있다. 한국 영화 해외배급사인 ‘시네클릭’의 지상은 해외팀장은 “영화계에서는 배용준 전지현 원빈 등이 해외 바이어들에게 주목받는 한류 스타들이다. 이들이 출연한 영화는 일단 바이어들의 관심을 끈다. ‘엽기적인 그녀’ 같은 경우는 영화와 주인공인 전지현이 동시에 한류를 탄 구체적 사례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전지현이 출연한 ‘4인용 식탁’의 경우 영화가 미처 완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지현의 이름만으로도 아시아 각국에 팔려나갔다. 현재 연 50여편 내외로 제작되는 한국 영화의 절반 정도가 아시아권에 판매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을 반영하듯 한국관광공사가 9월16일부터 30일까지 외국인 네티즌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외국인이 가장 관심을 보이는 한국문화는 영화와 드라마(총 응답건수 2299건 중 28%)라는 결과가 나왔다. 특히 일본어와 중국어 사용자들이 영화와 드라마에 상대적으로 관심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류 열풍을 ‘얼마 벌었냐’는 경제적인 수익 문제로만 직결시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예를 들어 일본에 한국 드라마를 수출하는 데 따르는 이익은 단순히 판매금액뿐만이 아니다. 일본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에 담긴 한국의 패션, 한국인의 사고방식, 한국의 음식 등을 총체적으로 접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드라마가 파는 것은 한국이라는 국가의 이미지 자체다.

또 지나치게 수익에 급급하다 보면 오히려 현지인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다. 이미 중국에서는 ‘한류(韓流)’를 비꼬는 ‘한류(寒流)’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때문에 단발적 이익 못지않게 한류 열풍을 현지의 산업과 연계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안재욱이 출연한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가 중국에서 드라마 인기순위 1위를 차지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성과는 안재욱이나 방송사보다는 삼성전자에게 돌아갔습니다. 삼성전자가 안재욱을 자사의 CF 모델로 기용해 중국의 TFT-LCD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한 것이죠.” 한국콘텐츠문화진흥원 김태훈 대리의 말이다.

삼성전자가 중국 LCD 시장을 석권하는 과정에서 안재욱이 구체적으로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계산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안재욱의 역할이 컸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처럼 한류는 제조업 분야가 현지 시장을 개척하는 데 중요한 역할까지도 할 수 있다. 스타의 위력, 그것은 한국이나 아시아나 마찬가지로 신비롭고도 무궁무진하다.





주간동아 405호 (p68~70)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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