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5

2003.10.16

“존 쿳시는 너무 자상한 친절맨”

왕은철 교수가 본 노벨문학상 수상자 쿳시 … “심성과 달리 문장은 날카롭고 수려하며 형식미 빼어나”

  • 왕은철/ 전북대 영문과 교수·문학평론가 cwang@mail.chonbuk.ac.kr

    입력2003-10-09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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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존 쿳시는 너무 자상한 친절맨”

    존 쿳시와 우리말로 번역된 그의 대표작들.

    존 쿳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에게 축하한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띄웠다. 그렇지 않아도 신문, 방송, 잡지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할 터에 답장할 시간이 있을지 의문스러웠지만 반가운 김에 그렇게 했다. 사실 그는 지금이라도 내가 번역에 관련된 질문을 하면 신속하게 답장을 보내올 사람이다.

    스웨덴의 한림원은 유감스럽게도, 그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사실을 그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세상에 공표했다. ‘숨어 있는’ 그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노벨상 수상 소식을 접하고 쿳시가 했다는 말도 그의 됨됨이를 알려주기에 충분하다. 그는 자신이 직접 낭독하거나 말하지도 않고, 그가 일시적으로 머물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카고대학 당국을 통해 발표한 소감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오늘 새벽 스톡홀름에서 걸려온 전화를 통해 그 소식을 접했습니다.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발표가 임박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국에 영광을 돌린다든가, 누구에게 감사한다든가 하는 흔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세상이 호들갑을 떨든 말든, 쿳시는 평소의 그답게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너무나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유명 언론 피하고 교내 소식지와 인터뷰



    “존 쿳시는 너무 자상한 친절맨”
    그의 이러한 태도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세계 최초로 부커상을 두 번(1983년 ‘마이클 K의 삶과 세월’, 1999년 ‘추락’) 수상하면서도 두 번 다 수상식에 참석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왜 그랬느냐고 내가 물었더니 “부커상과 관련된 상업성에 휘둘리기 싫어서였다”고 했다. 그는 흔하디 흔한 인터뷰도 하지 않았다. BBC 방송이 그토록 애타게 그의 말을 기다려도 “나 같은 사람에게 두 번씩이나 상을 줘서 고맙다”는 짤막한 말을 한마디 하고는 그만이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신문사와 방송사도 그와 접촉할 수가 없어 속이 탔다. 그들은 그가 부커상을 다시 수상했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그가 직접 한 말을 단 한 마디도 전하지 못했다.

    그런데 예외가 하나 있었다. 그는 자신이 30여년 동안 재직하고 있던 케이프타운대학의 ‘먼데이페이퍼’(매주 월요일에 발간하는 A4 용지 7~8쪽 분량의 흑백 교내 소식지)의 인터뷰 요청을 수락했다. 1998~99년까지 케이프타운대학 영문과 객원교수로 가 있던 나는 그가 ‘먼데이페이퍼’와 인터뷰한 내용을 읽으며 감동을 받았다. 그는 BBC, ‘뉴욕 타임스’ 등과 같이 화려한 매체의 인터뷰 요청은 거절했지만,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먼데이페이퍼’의 요청은 물리치지 않은 것이다.

    그는 번역자인 나에게도 인색하지 않았다. 케이프타운대학의 연구실에서 그의 두 번째 부커상 수상작인 ‘추락’을 번역하는 동안 그의 연구실을 찾아가 수없이 귀찮게 했건만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일일이 응해주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와 ‘페테르부르크의 대가’를 번역할 때도 나는 그와의 인연을 담보 삼아 이메일을 통해 그러잖아도 바쁜 그를 많이도 귀찮게 했다.

    “존 쿳시는 너무 자상한 친절맨”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의 두 얼굴인 흑인 거주지(위)와 유럽풍의 화려함이 돋보이는 백인 거주지역.

    그의 친절함과 자상함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진다. 혹자는 그러한 것들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와 비슷한 위상의 세계적인 작가들 중 그 누가, 지구촌의 어느 구석에서 시도 때도 없이 물어대는 ‘무식한’ 번역자에게 그처럼 많은 시간을 할애해줄 것인가! 따라서 나의 번역에 문제가 있으면 그건 순전히 나의 부족한 역량 탓일 것이기에 나는 솔직히 두렵다. 내가 그의 소설을 계속 번역하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그의 소설에 매료되어서지만, 그에 대한 고마움도 한몫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만난 쿳시는 위대한 작가이기 전에, 따뜻하면서도 자상한 사람이다.

    쿳시는 1940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 근교의 우스터에서 네덜란드계 백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수학, 언어학, 컴퓨터, 문학을 전공한 쿳시는 ‘지적인 힘과 균형적 스타일, 역사적 비전과 윤리적 통찰력을 독특한 방식으로 통합’시킨 독창적인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데,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인종과 성, 휴머니즘과 폭력 등의 문제를 그처럼 빼어나게 형상화한 작가도 드물 것이다.

    식민주의·인종 등 문제 뛰어나게 형상화

    그는 소설 쓰기를 ‘사유의 한 방식’으로 생각하는 작가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대부분 현재시제로 돼 있다. 사유란 과거시제를 통해서 행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게다. 사유가 담긴 내러티브를 음미하면서 따라가다 보면 폭발적인 힘이 느껴진다. 그의 소설의 위대성과 마력은 여기에 있다. 그의 소설은 모두 다른 작가들의 것에 비해 절반이 채 안 될 정도로 짧다. 최소한의 언어에 최대한의 의미를 응축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노벨상 수상작가이자 같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인 네이딘 고디머가 그를 가리켜 “종달새처럼 날아올라 매처럼 쳐다보는 상상력을 갖고 있는 작가”라고 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존 쿳시는 너무 자상한 친절맨”

    필자와 함께한 존 쿳시(오른쪽).

    쿳시의 소설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때로는 사념의 늪에 빠뜨려 허우적거리게 만든다. 상호 배타적인 양자택일 방식이나 이분법적 흑백논리보다는, 회의적인 눈으로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흑도 백도 아닌, 가치의 회색지대를 바라보고 사유하기 때문이다. 그의 소설은 따라서 메시지를 지향하지 않는다. 제3세계권의 소설 대부분이 메시지 지향적인 것에 비하면 추구하는 방향 자체가 다르다. 식민주의 역사와 독재, 인종분규 등 수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는 제3세계권의 국가에서 문학작품이 메시지를 지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그러나 메시지를 지향해야 하는 문화적 현실은 작가가 운신하는 폭을 좁게 만드는 법이다. 사회와 역사가 획일적인 리얼리즘 문학을 강요하며 작가의 상상력을 ‘저당 잡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식민주의적 리얼리티를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제3세계 문학의 편협성을 벗어나려고 했다. 그가 후기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현대이론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자기중심적이고 유희적인 함정에 빠지지 않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문제를 중심에 놓고 있는 소설을 써온 것은 제3세계 작가로서 책임감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보다 넓은 세계문학의 도도한 흐름에 합류하려는 속 깊은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의 소설들은 문학사에 오래 남을 것이다. 비평의 잣대가 아무리 엄하고 혹독한 것이라 해도 그의 소설들은 살아남을 것이다. 사유의 깊이와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력이 엿보이는 날카롭고 수려한 문장, 빼어난 형식미, 현대이론과의 대화, 도스토예프스키·카프카·베케트 등과 같은 위대한 작가들과의 상호 텍스트성, 미니멀리즘에 가까우면서도 수많은 것들을 그 안에 함축하고 있는 관념적 내러티브 등이 그의 소설들을 탄탄하게 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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