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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리 통기타는 울고 싶어라

업소 과열경쟁 ‘포크 선율’ 하나 둘 실종 … ‘극장식’ 대형업소 트로트 가수 득세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미사리 통기타는 울고 싶어라

미사리 통기타는 울고 싶어라
‘TV에서는 일찌감치 쫓겨나버린 1970, 80년대의 가락’이 있는 곳. ‘최루탄 연기, 데모 행렬 속으로 떠나간 날들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더듬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

2001년 1월 서울대 미대 김병종 교수는 한 신문기고에서 미사리를 이렇게 평했다. 그리고 3년여, 지금의 미사리는 더 이상 ‘그때, 그 미사리’가 아니다. 카페촌은 퇴락했고 ‘기타 하나 달랑 든’ 포크 가수들의 편안한 공연도 사라지고 있다. 미사리 카페촌 소개 사이트인 ‘미사리닷컴’ 운영자 공성필씨는 “장사 되는 집은 4, 5곳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이를 가능케 하는 건 MR(녹음연주)에 맞춰 세련된 ‘무빙’을 선보이는 대형 트로트 가수들이다. 우리가 잊고 지내던 사이 ‘통기타·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메카’ 미사리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미사리 카페촌의 정확한 지명은 경기 하남시 미사동과 망월동, 덕풍동, 신장동, 창우동이다. 이중 올림픽대로 천호대교에서 11km 지점부터 시작하는 망월동~창우동의 팔당대교 쪽 도로변이 흔히 말하는 미사리 카페촌이다. 1996년 ‘록시’가 문을 열면서 시작된 미사리 ‘라이브 거리’는 1999년 50여개소, 2001년에는 70여개소의 라이브 전문 카페가 들어설 만큼 호황을 누렸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월드컵 열기가 뜨겁던 지난해 6월경. 경기 침체와 함께 경쟁이 과열되면서 폐업하는 가게가 속출했다. 2억원을 호가하던 권리금도 5000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남아 있는 20여개 업소 중에서도 제대로 된 라이브 공연을 하는 집은 10곳 남짓에 불과하다.

1회 출연료 수백만원 … 카바레?



미사리 통기타는 울고 싶어라

미사리 ‘정통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라이브 카페 ‘산타페’.

징검다리 연휴 첫날인 10월3일 저녁, 미사리를 찾았다. 서울-하남시 경계 200~300m 전부터 노란 바탕에 검은 글씨로 그날 공연하는 가수와 카페 이름을 적은 소형 플래카드들이 도로 오른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남진, 인순이, 최진희, 김수희, 태진아, 바니걸스…. ‘미사리=통기타 음악’이란 등식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도 포크 음악만을 고집하는 집은 ‘쉘부르’와 ‘싼타나’ 정도다. 다른 가게들도 한두 명의 포크 가수를 쓰고 있으나 대세는 역시 트로트, 발라드 가수다. 특히 1회 출연료가 수백만원씩 하는 유명 트로트 가수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있다. 카바레, 나이트클럽과 뭐 크게 다른 점이 있나, 그런 자조적인 생각이 들기도 한다.”

거리 초입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A씨의 말이다.

이전에도 트로트 가수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과는 세가 비교되지 않았다. 당시 주류는 1970~80년대 이름을 날린 옛 스타들, 가창력으로 승부하는 무명의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이었다. 무대와 관객, 생계의 터전이 절실히 필요했던 이들에게 미사리 카페촌의 등장은 단비와 같았다. 그로 인해 미사리는 다른 ‘유흥가’와 달리 언론과 문화계 인사들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그린벨트 지역이라 주변에 술집, 러브호텔 등이 없고 가족, 친구 단위 모임 장소로 자주 이용되는 등 건전한 분위기를 유지한 점도 주효했다.

미사리 통기타는 울고 싶어라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기대심리를 반영하고 있는 미사리 공인중개사무소들.

가요평론가 이백천씨는 “미사리는 TV와 음반 시장에서 철저히 소외당해 온 30~40대 관객들의 ‘듣고 즐기고 감동받을 권리’를 찾아주었다는 점에서 상업지구 그 이상의 무엇이었다. 그런데 이런 미사리만의 특징 혹은 존재의 의미가 요즘 들어 크게 퇴색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미사리에서 활동하는 업주, 가수들이 지목하는 가장 큰 원인은 과열경쟁. 한정된 고객을 놓고 수많은 업소가 경쟁을 벌이다 보니 보다 큰 규모, 보다 유명한 가수를 내세우지 않고는 이익을 낼 수 없게 돼버렸다.

“그린벨트 지역인 만큼 미사리 카페는 1층 30평, 2층 30평, 부속 건물 20평 등 80평까지만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그런데 경쟁이 치열해지자 100평 이상의 가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른 가게들도 처마가 좀 나왔다, 주차장이 넓다 해서 조금씩은 다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셈이어서 ‘니들만 나쁘다’고 큰소리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같은 벌금 500만원이 나오면 소형 업소와 대형 업소 중 어디가 더 큰 타격을 입겠는가. 결국 배짱 좋고 자금 동원력 좋은 가게만 살아남게 돼 있는 거다.”

미사리에서 3년째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B씨의 얘기다. 실제로 지금 미사리에서 제법 장사가 된다 하는 집 중에는 두 동, 그러니까 30평짜리 건물 두 채를 튼 형태가 많다. 이들 업소는 무대도 일반 라이브 카페와 달리 크고 화려하며, 실내 분위기도 ‘극장식’에 더 가깝다.

“스스로 손님 쫓아내고 있는 실정”

큰 가게를 운영하고 유명가수를 부르자면 그만큼 투자비가 많이 들게 된다. 업주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가게를 더 넓히고 요금을 더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원래부터 미사리 커피값, 음식값에는 공연 관람료가 포함돼 있다. 그래서 공연이 있느냐 없느냐, 또 어떤 가수가 나오느냐에 따라 값이 달라지기도 한다. 3년 전만 해도 8000~1만원이던 이곳 커피값은 지금 3만원까지 올라갔다. 개중에는 3만5000원까지 받는 카페도 있다. 양식 코스로 제공되는 식사값 또한 이전 3만원대에서 7만5000원까지로 상향조정됐다. 물론 아직도 여전히 커피값 1만원, 식사값 3만5000원 선을 고수하는 가게들이 있으나 많지 않은 실정이다.

미사리 카페촌의 터줏대감 격인 ‘산타페’ 이충기 사장은 “과거 미사리는 서민을 위한 놀이터였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편안한 노래를 들으며 가족, 친구, 가수들과 정을 나눌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스스로 손님을 밀어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유명가수 이름에 혹해 미사리를 찾았다가도 커피 한 잔에 2만~3만원씩 하는 걸 보면 발길을 끊게 되기 십상이다. 그래도 대형업소는 수지를 맞출 수 있지만 작은 카페들은 버틸 재간이 없다”고 말했다.

1990년대 초 한때 유명가수로 이름을 날린 C씨는 “아니 할 말로 유명 트로트 가수들은 꼭 미사리가 아니어도 갈 곳이 많다. 방송 출연 기회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렵지 않은가. 또 유명가수들을 보러 오는 관객이란 95%가 뜨내기다. 라이브 카페가 진짜 ‘카페’다우려면 단골이 많아야 한다. 비싼 가수를 불러들일 수 없게 되는 순간 그들도 다른 카페들과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하나의 변수는 그린벨트 해제다. 내년 봄이면 미사리 라이브 거리 일대는 ‘대지’로 용도변경이 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상업시설이든 진입이 가능해 수익구조가 불안한 대다수 라이브 카페들은 더욱 고전을 면치 못하리라는 것이 업주들의 예측이다.

“결국 장사가 되는 5개 정도만 살아남지 않겠는가. 미사리가 한창 ‘대안 문화’의 한 방식으로 각광받을 때, 하남시나 정부에서 ‘특구’ 지정을 해주는 등 관심을 기울였다면 오늘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러다 미사리 라이브 거리 자체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충기 사장은 이렇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주간동아 405호 (p78~79)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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