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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말한다, 마지막 육신으로

‘망자의 길’ 배웅 국과수 법의관 25시 … 한 달 30~40명 부검 고된 일 사명감으로 버텨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죽은 자는 말한다, 마지막 육신으로

죽은 자는 말한다, 마지막 육신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부검실 테이블 옆에 선 법의관과 연구사들(왼쪽). 부검 과정에 쓰이는 도구들.

소름이 돋을 만큼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방. 하얀 시트에 덮인 한 시신이 카트로 운반돼 들어온다. 하얀 천을 벗겨내자, 뇌 부분은 반쯤 없어지고 가슴엔 지그재그형의 붉은 상처가 선명한 20대 여성의 시신이 드러난다. 처참하게 망가진 시신의 모습에 놀라 기자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싸늘한 주검 앞에서도 법의관 이원태 부장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다.

따라 들어온 경찰이 시신 발견 당시 정황을 설명한다.

“5일 새벽, ××고속도로에서 차량에 치인 여성의 시신이 발견됐습니다. 당시 브래지어만 입은 채 발견된 것으로 보아 성폭행을 피하려다 변을 당한 것 같습니다. 성폭행 용의자의 가슴에서 손톱으로 긁힌 자국이 발견됐습니다.”

사고현장에 대한 정보는 사인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건의 정황을 파악한 이부장은 시신의 외상을 살피기 시작한다. 보행중 차량에 치여 사망했는지, 성폭행을 피하려다 변을 당했는지, 또 몇 대의 차량에 치였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두 명의 연구사는 법의관의 지시에 따라 메스를 쥐고 시신 해부에 들어간다. 무릎을 절개하자 부러진 뼈가 한눈에 들어온다. 복부를 절개하자 비릿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한다. 늑골은 모두 부러진 상태다. 차례로 들어올린 폐, 간, 비장도 손상돼 있다. 연구사는 장기가 터지면서 시신 내부에 고인 혈액을 스쿠프(scoop)로 떠내 용기에 넣는다. 꺼낸 장기는 일일이 무게를 잰다. 시신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온몸으로 사고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알리고 있었다.



해부한 각 부위의 사진촬영이 끝난 뒤, 꺼낸 장기들을 다시 시신의 몸속에 넣는다. 능숙한 연구사의 바느질 솜씨로 시신은 정돈된 모습을 찾는다.

40분에 걸친 부검을 마친 이부장은 경찰관과 유족에게 사망원인을 설명한다.

“직접적 사인은 장기의 ‘다발성 손상’입니다. 차량의 앞바퀴가 도로에 누운 이 사람의 머리를, 뒷바퀴가 가슴 위를 지나가 사망에 이른 거죠. 무릎에 자동차 범퍼에 부딪힌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보행중에 차에 치인 것은 아닙니다. 다리에 있는 붉은 반점은 누군가가 성폭행을 시도했다는 것을 의미하죠. 성폭행 용의자의 가슴에 손톱자국이 남아 있다면 시신의 손톱에 용의자의 혈액이나 피부가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검사 결과를 기다려봅시다.”

죽은 자는 말한다, 마지막 육신으로

법의학과는 부검뿐 아니라 신체조직 검사도 담당한다. 국가가 올해 예산을 들여 장만한 전자현미경.

‘죽음의 비밀’을 찾아내는 곳, 바로 서울 양천구 신월동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 법의학과 부검실이다. 일반인은 ‘부검’이란 두 글자에서 오싹함과 두려움을 느끼겠지만 법의관들 입장에서는 ‘죽은 자의 인권’을 찾아주어 ‘망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는 곳이다. 자살과 살인이 늘어나는 요즘, 가장 ‘죽음’ 가까이에서 살아가고 있는 법의관들의 삶을 지켜보고자 8월7, 8일 이틀간 국과수를 찾았다.

7일엔 총 13구의 시신이 부검대에 올랐다. A, B, C로 나뉜 세 조는 각각 4, 5구의 시신을 맡아 오전 9시10분부터 부검에 들어갔다. 한 조에 투입된 인원은 법의관 한 명과 연구사 두 명, 사진사 한 명, 이렇게 네 사람. 1구의 시신을 부검하는 데 짧게는 30분에서 길게는 1시간이 소요됐다. 저마다 다른 삶의 향기를 가지고 있었을 시신들. 하지만 부검대에 누운 이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무표정하다.

그러나 사연 없는 죽음이 어디 있겠는가. 사이비 종교 교주에게 사기를 당한 후 정신병을 앓다가 손톱깎기를 삼키고 건물에서 뛰어내려 사망한 30대 여성,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죽음을 맞은 20대 공익근무요원, 전동차에 뛰어든 40대 남성 등. “매일 안타까운 죽음을 대하며 우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윤신 법의관은 “감상은 곧 직무유기”라고 답했다. 시신에 일일이 감정을 이입하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억울한 죽음 밝히는 것 국가의 책무

매일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의관들은 우울함을 느낄 겨를조차 없을 만큼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한 달에 5~8번의 부검 당직에 참가하는 법의관들은 한 달 평균 30~40구의 시신을 부검한다. 각 부검에 대한 감정서를 작성하는 데는 보통 보름에서 길게는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법원과 검찰의 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하고 현장에서 시신을 수습하는 경찰을 교육하는 것도 법의관들의 주요 업무다.

요즘 법의관들의 가장 큰 골칫덩이 는 ‘의료사고나 교통사고 감정’이다. 수천장의 의료기록을 파악해도 모자랄 만큼 상황이 복잡하고,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미묘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양경무 법의관은 “의료사고의 경우 법의관에게 모든 ‘의학적 판단’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며 “판사, 검사, 전문의, 법의관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민감한 죽음에 대해 조사할 때 법의관의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에 대한 부검이 바로 그랬다. 4일 정회장의 부검을 집도한 법의관 이한영 과장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파장이 큰 사건인 만큼 부검하는 데 조심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대개 부검은 오전에 이뤄지나, 정회장의 경우 사망한 당일 오후 급박하게 부검이 진행됐다. 일반 부검과 달리 3명의 법의관과 4명의 연구사를 투입해 신중을 기했다. 4일 국과수는 “정회장의 사인은 ‘큰 외력에 의한 다발성 손상’으로 보인다”며 “이는 추락사에 따른 전형적인 결과”라고 1차 부검 소견을 밝혔다. 겉으로 드러난 외상은 크지 않았지만, 추락의 충격으로 정회장의 심장과 심낭이 파열되고 간과 비장이 손상됐다는 것. 정회장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 제기에 대해 이과장은 “파장이 큰 사건인 만큼 한 치의 의문도 남기지 않겠다는 자세로 부검에 임했다”며 부검 결과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올해 국과수 법의관들은 그 어느 시기보다 바쁜 시간을 보냈다. 대구지하철 사고와 같은 대형 재난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정낙은 법의관을 비롯, 2명의 법의관은 대구지하철 사고로 희생된 149명의 사망자 신원을 파악하고 7일 유가족을 대상으로 그 결과에 대한 설명회를 열었다. 이는 국과수 법의관들이 다 타버린 전동차 내부에 들어가 석면가루를 들이마시고, 조사를 위해 켜놓은 라이트에 화상을 입으며 일에 매달린 결과였다.

이들에게 최근 가장 가슴 아픈 일은 법의관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가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국과수 서울 분소에 근무하는 법의관은 모두 13명이며, 전남 장성과 부산, 대전 분소의 법의관을 합쳐 20여명에 불과하다. 높은 보수를 보장받는 전공에 의대생들이 몰리며, 법의관이 되기 위해 해부병리학을 전공하는 이가 없는 실정이다. 국과수의 홍일점 박혜진 법의관은 국과수 법의관에 대한 처우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법의관들의 자부심과 순수한 열의는 열악한 여건 속에서 그들을 지탱하는 힘이다. 이원태 부장은 “부검은 국민의 죽음에 대한 국가의 감시”라며 “국민의 인권을 중시하는 국가에서는 부검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법의관 최영식 과장은 “비의료전문가인 검사가 부검 여부를 결정하는 현재의 검시제도는 억울한 죽음을 밝히는 데 도움이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의관들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인가. 15년 동안 법의관 생활을 해온 이한영 과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재계를 주름잡던 정몽헌 회장의 죽음도 행려병자의 죽음도 그 마지막 모습은 다를 것이 없죠. 죽음을 맞는 건 모든 사람이 다 마찬가지니까요.



주간동아 398호 (p52~53)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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