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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대북 교류 사전협의 인터넷이 끝냈다

파트너 물색, 초청장 등 모든 작업 척척 … 영진닷컴 관계자 訪北 ‘새 經協 방식’ 큰 기대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대북 교류 사전협의 인터넷이 끝냈다

대북 교류 사전협의 인터넷이 끝냈다

인터넷으로 남북 교류도 가능한 시대가 됐다. 사진은 북한의 IT기술측 수준을 보여주는 조선컴퓨터센터.

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사망으로 대북 경협사업이 존폐의 위기를 맞았다.

정회장의 투신자살로 새삼 주목받고는 있지만 재계에서는 대북사업은 그 성격상 적자가 불가피한 비즈니스라고 입을 모은다. 남북 교류와 협력에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포부를 안고 저마다 대북사업에 나섰지만 수십년 간 닫혀 있던 교류의 문을 여는 과정에서 돈과 시간을 쏟아 붓고 ‘나가떨어지는’ 기업인들이 부지기수라는 것이다.

적자가 불가피한 비즈니스?

한 대북사업 관련 기업인은 “대북사업을 한 기업치고 망하지 않은 기업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측 교류 파트너를 찾는 것부터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온갖 브로커들이 난무해 대북사업을 하는 기업 대부분이 중간 브로커들에게 막대한 재산상, 정신적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한나라당은 남북협력기금에 대한 국회의 감독을 강화해 사실상 정부의 현금 대북지원을 통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관심을 모으고 있다. 8월7일 한나라당은 남북협력기금 신규 조성과 5억원 이상 기금 사용시 60일 전까지 반드시 국회 동의를 얻도록 규정한 남북협력기금법 개정안을 9월 정기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밝히는 등 정부의 대북지원 통제 방침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이 같은 야당의 입장에 대해 대북사업자들의 반응은 엇갈리고 있다. 한나라당의 입법 방침이 남북교류에 걸림돌이 된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반대의 해석도 나온다. 한 대북사업자는 “남북교류협력도 기업 입장에서는 이익이 나는 사업이 돼야 한다. 북측에 돈 주고 단독사업권을 확보하는데, 국민의 세금인 정부의 돈을 받아서 북한에 주는 관행은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같은 날 한나라당이 발표한 입법 방침 가운데 주목해볼 만한 것이 있다. 한나라당은 9월 정기국회 때 남북 주민간 인터넷 접촉을 허용하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남북한 인터넷 교류 허용 법안은 올 초부터 정가의 화제가 돼왔는데 한나라당이 공식적으로 입법 추진 의사를 밝힌 것이다.

현행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은 “남한의 주민이 북한의 주민 등과 회합 통신 기타의 방법으로 접촉하고자 할 때에는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법상 인터넷을 통한 북한주민과의 접촉은 통일부 장관의 승인이 없는 한 불법이다. 하지만 인터넷 교류와 전자상거래가 보편화되고 있는 마당에 더 이상 남북한 주민 간의 인터넷을 통한 접촉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네티즌과 대북협력사업자들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한나라당 조웅규 의원 등 114명 의원 공동 명의로 인터넷 교류만을 예외로 하는 남북교류협력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주간동아 388호 참조). 당초 지난 6월 임시국회에서 법 개정안을 다룰 계획이었으나 이런저런 사정으로 정기국회로 처리가 미뤄졌다.

대북 교류 사전협의 인터넷이 끝냈다

북한이 인터넷으로 영진닷컴에 보내온 초청장과 서한.

이런 상황에서 최근 인터넷을 통한 대북 접촉이 실제 경제 협력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증명하는 사례가 있어 업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영진닷컴’. 코스닥 등록기업인 영진닷컴은 ‘할 수 있다’ 시리즈로 유명한 컴퓨터 관련 기술서적 전문 출판사다. 8월8일, 이 회사의 한상진 부사장과 문형동 대리 등 2명이 대북교류사업을 위해 북한 방문길에 올랐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한부사장 일행이 방북길에 오르기까지 모든 사전논의가 인터넷을 통해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인터넷 운영자를 매개로 교류협력의 파트너 물색 및 의향 전달, 방북 초청 등의 모든 과정이 온라인상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현재 북한이 운영하는 공식 인터넷사이트는 평양에 서버가 있는 ‘주패닷컴’(jupae.com)과 ‘마이바둑닷컴’(mybaduk.com) 등 3개, 그리고 중국에 서버를 둔 ‘우리민족끼리닷컴’(uriminzokkiri.com) ‘실리뱅크’(silibank.com) 2개 등 5개다.

이 가운데 주패닷컴과 마이바둑닷컴 등 북한에 서버를 둔 사이트는 조선복권합영회사라는 남북합작기업이 운영하고 있는데, 이 회사의 한국측 참여자인 ‘훈넷’이 영진닷컴의 대북교류 의사를 북측에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했다.

지난 6월 중순경, 훈넷측은 영진닷컴이 자신들이 출판한 컴퓨터 기술 관련 재고서적을 북한에 기증할 뜻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인터넷을 통해 북측의 조선복권합영회사에 마땅한 대화창구를 구해줄 것을 부탁했다.

인민대학습당에 서적 기증

조선복권합영회사의 북측 담당자는 남한의 중앙도서관과 정부간행물 출판소를 합쳐놓은 기구에 해당하는 인민대학습당과 이 문제를 상의했다. 그 결과 인민대학습당으로부터 “상호에게 유익한 협력사업이 될 것 같다”는 긍정적 답변을 얻어냈다. 마침내 7월2일 인민대학습당은 최광렬 부총장 명의로 영진닷컴측에 “빠른 시일 내 평양을 방문해 협력사업에 관한 구체적인 문제를 협의하자”는 의향서를 보내왔다. 또 같은 날 북측 민족화해협의회 명의로 영진닷컴 한부사장 일행의 ‘평양방문 초청과 체류기간 편의 보장과 신변안전, 무사귀환을 담보하는’ 초청장을 보내왔다. 이들 의향서, 초청장, 인민대학습당 소개서 역시 인터넷 이메일을 통해 전달됐다.

영진닷컴이 북측 인민대학습당에 제안한 기증도서의 양은 8만권, 시가 10억원에 상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서적은 남한에서는 컴퓨터 사양의 향상 등으로 인해 재고 처리된 책들이지만, 상대적으로 컴퓨터 사양이 낙후된 북한 입장에서는 기술서적으로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

방북한 영진닷컴 관계자들은 인민대학습당측과 컴퓨터 서적 기증에 관한 구체적 실무협상을 벌일 계획이다. 인민대학습당은 영어 일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 세계 각국 언어로 연간 100만 쪽에 달하는 번역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영진닷컴은 이미 인터넷으로 의향서까지 받은 외국어 서적의 한글 번역 및 한글 서적의 외국어 번역을 인민대학습당에 위탁하는 것과 북한이 발행한 음식 관련 도서 등을 국내에서 편찬하는 사업 등에 대해서도 인민대학습당측과 최종계약할 계획이다.

이번 영진닷컴의 대북 교류 과정에서 눈여겨볼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예정대로 교류가 성사될 경우 8만 권에 이르는 우리말 서적이 북한의 최대 규모 도서관에 비치된다는 점이 의미가 깊다. 인민대학습당은 연간 2000만명 이상이 이용하는 명실상부한 북한 최고의 도서관. 남북한 간 언어의 이질성이 심각한 상황에서 남한에서 발간한 서적이 북한 도서관에 비치된다는 사실만으로도 문화교류의 새장을 열기에 충분하다는 평이다.

앞서 지적했듯 영진닷컴 관계자가 방북해 직접 협상을 벌이기까지 모든 과정이 인터넷으로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해볼 만하다. 나아가 이번 협상을 대하는 북측의 달라진 태도도 관심거리다. 남측의 제안을 접한 북측이 주도적으로 북한 내 협상 파트너를 물색하고 이들의 호의가 담긴 의향서와 초청장을 보내오는 등 적극적으로 교류에 나선 것부터 과거의 교류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협상 진행과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진정으로 북한 경제를 돕기 위해서는 그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현찰을 줄 것이 아니라 돈을 버는 길을 알려줘야 한다는 얘기다. 영진닷컴 관련 교류의 경우 단 한 푼의 현찰도 오가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측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북한 내 사업파트너를 구하고 초청장을 보내는 등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했다. 이처럼 북한이 스스로 움직여 문제를 해결하도록 해야 ‘퍼주기’ 의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대북 교류도 원활히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각종 대북사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영진닷컴과 인민대학습당의 교류협력의 과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 스스로를 문제해결의 주체로 만드는 이 같은 교류가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남북한 간 인터넷 상의 교류 합법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더욱 힘을 얻을 전망이다.

한편 영진닷컴측은 8월9일 구체적 방북일정 및 협상 전망 등에 대해 “코스닥 등록기업인 까닭에 13일로 예정된 공정공시 이전에 어떤 확인도 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주간동아 398호 (p26~28)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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