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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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콱…” 자살로 내몰리는 빈곤층

발버둥쳐도 살기 막막 벼랑 끝 상황 … 사회 안전망 확충 대책 하루가 급해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3-07-30 16: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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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라리 콱…” 자살로 내몰리는   빈곤층

    경기 악화로 서민 가정의 경제상황이 급격히 나빠지면서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에는 열심히 살기 위해 발버둥쳤던 젊은이들까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방법이 전혀 없다는 거예요…?” 7월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한국빈곤문제연구소(이하 빈곤문제연구소)를 찾은 김기숙씨(50·가명)는 결국 고개를 떨궜다. 막노동을 하는 남편(44), 중2짜리 아들과 함께 사는 김씨 가족의 수입은 한 달에 30만원 정도. 월 14만원 하는 무악동 아파트의 사글세를 내고 나면, 남는 건 라면만 사 먹으며 한 달을 나기에도 부족한 10여만원뿐이다. 그러나 김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되지 못했다. 동사무소 담당직원이 밝힌 이유에 따르면 ‘부부가 둘 다 너무 젊고 건강하기 때문’이다.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후 거의 일을 하지 못하는 ‘반병신’이 됐다는 김씨는 왜 자신이 도움을 받을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김씨가 빈곤문제연구소를 찾은 건 자신의 사정을 하소연하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구제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차라리 내 몸이 부서져버렸으면 좋겠어요. 청소일도 제대로 못하는 병든 몸뚱이 때문에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라면…. 요새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콱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을 해요. 남편은 일감이 없고, 나는 일을 못하고…. 눈 시퍼렇게 뜨고 굶어 죽을 수는 없잖아요. 모르죠, 곧 내가 자살했다는 기사가 신문에 나게 될지도….”

    아픈 말을 던지고 뒤돌아서는 김씨에게 빈곤문제 전문가들은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일할 수 있는 사람들 죽어나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30대 주부가 자녀 3명을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린 후 자신도 몸을 던져 자살했다. 카드빚에 몰린 30대 아버지는 딸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는 열심히 살았다’는 말을 남기고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벼랑 끝에 서서 ‘곧 뛰어내릴 것’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는 이들, 감히 ‘예비 자살자’라고 부를 수 있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이들이 대부분 젊고 열심히 살아가려 했던 사람이라는 점이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부모 세대부터 대물림된 가난에 묶여 무기력하게 살아왔던 이들뿐 아니라 평범하게 살았거나 열심히 살기 위해 발버둥쳤던 이들까지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가 얼마나 우스운지 알아요? 근로 능력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든 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젊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죽어나가죠. 열심히 살아보겠다며 일을 찾던 이들이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너무 안타까워요.”

    “차라리 콱…” 자살로 내몰리는   빈곤층
    빈곤문제연구소 류정순 소장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서민들의 삶의 질이 급속히 나빠지면서 젊고 일할 능력이 있는 신빈곤층 사이에서 ‘예비 자살자’가 크게 늘었다고 설명했다.

    빈곤문제연구소를 찾은 김씨 가족이 어려움에 빠진 것도 올 초부터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은 있던 남편의 일감이 뚝 떨어지면서 일주일에 고작 하루 이틀을 제외하고는 노는 일이 많아진 것이다. 일당 5만원에서 용역회사 수수료를 떼어주고 나면 정작 김씨 가족이 손에 쥐는 돈은 4만원 남짓. 여기에 김씨의 병까지 겹치면서 이들은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인천여성노동자회 실업대책본부 엄경애씨의 분석도 류소장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요즘 들어 새로 구직 시장에 나오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때 직장을 그만둔 후 개인사업을 하다가 망했거나 다른 회사에 다니다 최근의 불경기로 그곳에서마저 쫓겨나온 30, 40대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엄씨는 올 2, 3월 이후 미숙련 중년 노동자들이 지원할 만한 채용공고를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많을 때는 한 달에 100여건씩 구인광고가 올라왔어요. 구직자들이 선호하는 전자부품 회사 같은 생산직 채용도 꾸준히 있었고요. 그런데 요새는 식당일, 청소일 아니면 거의 없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공장에서는 25세 넘은 사람들은 아예 뽑지를 않아요. 간혹 나오는 건 조건이 정말 최악이죠.”

    엄씨에 따르면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9시까지 일을 시키고 월급 40만원을 주는 회사도 있다. 이런 자리에라도 가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절박한 상황에 몰린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빈곤에 의한 자살이 급증하는 원인으로 이처럼 ‘갑자기 가난해진 이들’이 많아진 것을 꼽는다. 그 원인 중 가장 큰 부분은 신용카드사의 추심 강화다.

    “예전 같으면 진작 망했을 사람들이 카드 덕에 안 망하고 살아왔던 거예요.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카드사들이 빚 받아내기에 나서니까 가게를 하던 사람들과 중소기업들이 줄줄이 망하기 시작한 거죠. 여기서 일하던 사람들은 졸지에 실직자가 됐고 카드빚을 내서 생활비로 써가며 살아왔던 중산층 가정들도 빛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걸 이제서야 깨닫게 된 거예요. 일자리는 없고, 자꾸 빚은 갚으라고 하고. 어떻게 하겠어요?”

    신용사회구현시민연대 석승억 대표의 지적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처럼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는데도 이들을 도와줄 사회보장제도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최저생계 수준 이하 빈민의 수가 2002년 현재 800만명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는데도 현재 기초생활보장 혜택을 받고 있는 수급자는 136만명에 불과하다.

    월 소득이 35만원(1인 가구 최저생계비)을 넘는 차상위 계층들은 보호받을 방법이 거의 전무하다. 이들에게 열린 길은 동사무소의 취로사업에 참여해 한 달에 몇 십만원씩을 벌거나 고용안정센터에 구직 등록을 하고 무작정 기다리는 것 정도.

    “차라리 콱…” 자살로 내몰리는   빈곤층
    서울의 한 일일취업센터에서 만난 김길수씨(47·가명)도 지난 3월부터 일자리를 알아보면서 이런저런 취로사업에 나서거나 막노동을 하고 있다. 전화 케이블을 갈아주는 통신공으로 일하다 허리를 다쳐 그만두고, 퇴직금으로 벌인 사업에 조차 실패한 그는 부실한 허리 탓에 노동일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월세를 내지 못해 쫓겨난 후 용산구 동자동의 한 여인숙에서 살고 있는 그가 원하는 일은 차량 운전. 그러나 풍치로 앞니가 빠지고 안쪽 이도 5개 넘게 흔들린다는 그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씨처럼 온몸이 아프지만 장애로 인정될 만큼 ‘제대로’ 아프지 못하는 빈곤층들은 결국 막노동판을 전전하다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루 일하면 3일은 쉬어야 할 만큼 체력이 ‘달리는’ 상황에서 생활을 계속 이어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IMF 이후 소득 불평등이 더욱 심화되면서 열심히 일해봤자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인식이 서민들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진 것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박찬용 연구원이 우리 국민을 100분위로 나누어 1996년과 2000년의 평균소득을 비교한 자료에 따르면 하위 1%에 속하는 극빈층의 소득은 28.9% 더 떨어진 반면, 상위 1%의 소득은 77.5%나 늘어나 소득 격차가 훨씬 심해졌다(표 참조).

    박연구원은 “우리나라의 상대적 빈곤율은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라며 “하위 10%에 해당하는 가구들의 소득이 하락한 것은 저소득층 가구주의 실직이나 사업 실패 등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아무리 해도 안 된다’는 상실감은 최근 잇따르고 있는 생계 비관형 자살을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빈곤층 방치는 ‘사회적 타살’

    분당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하규섭 교수는 “자기에 대한 요구가 높은 사람은 현실이 자신의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나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가 생길 때 절망감으로 인해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가 있다. ‘내가 죽어줄 테니 너희도 고통을 당해봐라’는 보복적 내면심리가 자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자살을 감행하지는 못하지만 삶의 의욕을 잃고 자신을 학대하다 죽음에 이르게 되는 ‘간접 자살’의 경우도 많다. 빈곤문제연구소 류소장은 아직 살아 있다면 올해 46세가 되었을 이순형씨(가명)를 ‘간접 자살자’라고 소개했다. 밥 대신 술로 연명하며 지독한 간경화와 폐결핵,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고 있던 이씨는 지난해 갑자기 사라졌다. 하지만 류소장은 그가 어디에선가 결국은 죽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대기업에서 기계 노동자로 일하다가 노조활동을 열심히 한 게 밉보여서 구조조정을 당한 사람이었어요. 다행히 바로 다른 공장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프레스기에 손가락 두 개를 잘렸죠. 산재보험에도 가입이 안 된 영세사업장이라 치료비 중 일부만 고용주가 부담하는 걸로 끝이 났어요. 원래 욕심도 많고 의지가 굳은 사람이었는데 이때부터 취직도 제대로 못하고 방황하다가 인생이 완전히 망가지기 시작했죠.”

    이씨는 가난한 살림에도 초등학생 아이에게 5만원짜리 속셈과외를 시킬 만큼 번듯하게 살고 싶어했다. 하지만 아이가 머리에 이가 있다는 이유로 학원에서 쫓겨나고, 자신은 계속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등 삶이 어려워지자 그 고통을 이기지 못했다.

    “간경화가 심해져서 주위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한 후에도 계속 술을 먹었어요. 도저히 말릴 수 없을 만큼 중독 증세를 보이다 어느 날 사라졌죠. 행려병자로 떠돌다 어디선가 죽었을 테지만, 저는 그 사람이 자살한 거라고 생각해요. 죽는다는 걸 알면서도, 어쩌면 죽기 위해서 계속 술을 마셨으니까요.”

    류소장은 이씨처럼 간접적으로 자살한 빈곤층까지 합치면 우리 사회의 생계 비관형 자살자 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도사회복지대 이태수 교수의 의견도 비슷하다. 이교수는 “우리나라의 사회보장 지출은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해 중산층들도 무방비로 벼랑 끝에 서게 된다”며 “빈곤층에 대한 사회적 지원 체계가 무너졌기 때문에 발생한 자살은 ‘사회적 타살’이며, 국가가 나서 적절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지 않을 경우 이 같은 죽음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근로 능력이 있는 이들의 경우 취업이나 창업을 지원하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공익형 일자리를 제공하는 등 정책을 세분화해 빈곤층의 삶을 돕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좀더 실질적인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언젠가 내 이름이 신문에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돌아선 김기숙씨처럼 제2, 제3의 ‘예비 자살자’들이 속출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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