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6

2003.08.07

386 “우린 국민연금 봉이야”

아버지 세대보다 많이 내고도 수익은 절반 … 미래에 떠넘기기식 설계 탓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07-30 14: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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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6 “우린 국민연금 봉이야”

    국민연금 도입 초기부터 기금 조성에 기여해온 30, 40대는 아버지 세대인 60, 70대에 비해 상대적 불이익을 받게 된다.

    올해로 직장생활 5년째를 맞는 김진철씨(34·가명)는 이른바 386세대다. 김씨는 요즘 월급명세서를 펴들 때마다 10만원이 넘는 국민연금 내역에 눈길이 머문다. 김씨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연금을 붓기 시작한 1998년 말은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현재와 같은 9%로 인상된 직후. 따라서 김씨는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줄곧 본인 부담과 회사 부담을 합쳐 표준소득월액의 9%를 꼬박꼬박 국민연금으로 내왔다.

    반면 김씨가 취업한 해에 중소기업 이사직에서 물러난 김씨의 아버지(64)는 국민연금 제도가 처음 시행된 88년부터 국민연금을 붓기 시작했다. 김씨의 아버지가 부담한 보험료는 88년 당시 보험료율인 3%에 불과했다. 아버지 김씨의 보험료는 93년에 와서야 6%로 올랐을 뿐이다. 아들에 비해 3분의 1밖에 안 되는 보험료율을 부담했던 김씨는 그러나 60세가 된 1999년부터 국민연금 가입 10년이 지난 덕분에 특례 노령연금의 혜택을 받는 행운을 누렸다. 이전까지 가입 후 15년으로 되어 있던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이 당시부터 10년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김씨가 받는 연금은 소득의 60% 수준.

    386, 국민연금 정착에 최대 기여

    아버지보다 훨씬 많은 국민연금 부담을 떠안은 아들 진철씨. 그렇다고 진철씨가 아버지처럼 60세가 되는 2029년부터 국민연금으로 편안한 노후를 즐기리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2013년부터 5년 단위로 한 살씩 늦춰지기 때문이다. 진철씨는 기껏해야 65세가 되는 2034년부터나 연금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이때쯤이면 이미 보험료는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3~4%의 보험료율만으로 60세부터 생애소득의 60%를 받는 아버지와 10~15%의 보험료율을 부담하고도 아버지보다 5년 뒤에야 생애소득의 절반 정도밖에 건지지 못하는 아들. 게다가 전문가들은 30년 후쯤 아들 진철씨가 얻게 될 국민연금 투자수익률은 아버지 김씨의 현재 투자수익률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이러한 아이러니는 어디서 오는가. 한마디로 국민연금의 설계부터가 우리 세대의 부담을 자식 세대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2000년에 태어난 진철씨의 아들 세대로 넘어가면 이러한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와 민주당이 당정협의를 갖고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의미하는 소득대체율을 내년부터 당분간 55%로 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이러한 우려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복지부는 애초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의 권고안을 수용해 현재 60%인 급여 수준을 50%로 낮추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민주당측에서 수급액의 지나친 삭감에 따른 여론이 좋지 않을 것을 우려해 55%안을 고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안대로 소득대체율을 50%로 하게 되면 보험료율을 2070년까지 15.85%로 올리면 되지만 55%로 하게 되면 17.85%로 올려야 한다. 현재 9%인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하루빨리 올려야만 기금 고갈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다는 데에는 누구나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연금 가입자들의 반발을 우려해 국민연금법 부칙에서 2009년까지는 보험료율을 손대지 못하도록 규정해놓고 있는 상황.

    그렇지 않아도 국민연금 기금 고갈 비상이 걸린 가운데 나온 당정의 개혁안이 또다시 이렇게 정치논리에 발목이 잡히자 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물론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야 국민연금을 많이 급여하겠다는 데에야 반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문제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행 급여율 체계를 소폭 손질한 상태에서 그대로 끌고 간다는 이야기는 곧 그 부담을 미래 세대에게 떠넘기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경제학)는 “내년부터 급여 수준을 55%로한다는 당정의 합의안은 한마디로 연금개혁을 하지 않고 자식 세대에게 부담을 온통 떠넘기겠다는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김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55%의 급여 수준을 유지할 경우 현재 4.7배 수준인 국민연금의 수익비(본인 수급액 현가 총액/ 본인 부담액 현가 총액)는 2060년대 중반이면 1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이 무렵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현재의 갓난아기들은 자신들이 낸 국민연금 액수만큼도 받지 못하는 ‘손해보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자식들에게 가야 할 몫을 아버지가 몽땅 가로채는 결과를 낳게 되는 것.

    전문가들 “세대간 불균형 불가피”

    특히 국민연금 제도가 처음 도입되기 시작한 1988년 무렵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386세대들은 국민연금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가장 많이 기여하고도 정작 수혜 대상에서는 가장 먼저 배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대략 1960년을 전후해서 태어난 이 세대는 국민연금 제도가 처음 생겨났을 때 20대 중반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처음부터 국민연금 갹출금을 내왔다. 그러나 정작 이들이 연금을 받게 되는 2030년경이면 국민연금 적자 누적으로 인해 아버지 세대에 비해 절반 정도의 투자수익밖에 거두지 못할 판이다. 국민연금에 가장 크게 기여하고도 그 혜택에서 가장 먼저 배제되는 집단이 바로 이들 386세대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선진국들의 예를 보더라도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20%를 넘게 되면 이미 정상적 운용이 불가능한 단계에 접어든다고 지적하고 있다. 순천향대 김용하 교수는 “건강보험, 고용보험 등 각종 사회보험 부담이 앞으로 점점 과중해지는 것을 감안할 때 국민연금 개혁은 아무리 서둘러도 지나치지 않다”고 지적했다. 현재 당정이 추진하는 연금개혁은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이야기다.

    인천대 전영준 교수 역시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복지부의 접근 방식은 미래의 출산율이 갑자기 높아지거나 생산성이 갑자기 높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놓고 도박을 벌이는 식”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제도 자체가 세대간 부양이라는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이러한 세대간 불균형 현상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연금적자 문제로 골치를 썩고 있는 선진국의 경우 국민연금 수익비가 1이하로 떨어져 수익은커녕 손해를 보는 경우도 있다는 것. 보건사회연구원 최병호 연구위원은 “국민연금은 결국 선배 세대들이 이룩해놓은 경제적 풍요에 대해 후배 세대가 보답한다는 암묵적 계약을 근거로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처음 도입됐던 것도 당시 유럽에서 노령화 증가에 따른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젊은 세대들의 주머니를 털 수밖에 없다는 공감대가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이러한 세대간 부양에 대한 암묵적 합의가 무너지면 국민연금 시스템은 설 땅을 잃게 된다. 아버지 세대가 누린 풍요에 대해 아들 세대가 ‘왜 내 주머니를 털어 메워야 하느냐’며 국민연금을 기피하는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말이다. 최연구위원도 “사회적 연대의식이 깔려 있는 유럽과 달리 우리나라에서 미래 세대가 아버지 세대를 책임지겠다는 암묵적 합의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인천대 전영준 교수 역시 “세대간 합의를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문제는 현재 세대가 떠넘긴 부담을 미래 세대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냐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교수는 “국민연금 보험료율이 20%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각종 조세와 고용보험 건강보험 등 사회보험 부담이 더해지면 국민들 소득의 40~50%를 정부가 거둬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조차 미진하다고 인정하고 있는 연금개혁은 결국 우리 자식들에게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셈이다. 손해보는 사람은 따로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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