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4

2003.07.24

뭐가 쪽팔려, 사내 인생이

  • 김영진/ 영화평론가 hawks1965@hanmail.net

    입력2003-07-18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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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가 쪽팔려, 사내 인생이
    곽경택 감독의 신작 ‘똥개’는 언뜻 그의 전작인 ‘친구’ ‘챔피언’과 비슷한 주제를 담은 듯이 보인다. ‘쪽팔리지’ 않게 살아가는 사내들의 얘기인 것이다. 촌놈과 촌년의 순박한 삶의 모습이 그려진 이 영화는 현재를 다루고 있는데도 옛날 얘기를 하는 것 같다. 별명이 ‘똥개’인 주인공 황철민의 사는 모습을 다룬 영화의 제목으로 ‘똥개’를 고집하는 우직함도 약삭빠른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게 감독 곽경택의 뚝심이자 매력이다. 이미 대도시의 일상에서 거의 추방된 사어(死語)나 마찬가지인 ‘똥개’라는 말의 느낌에 딱 어울리는 보통사람들의 모습이 영화 ‘똥개’에 담겨 있다. 이 영화가 주목하는 것은 겉보기와 달리 연약하고 모순투성이인, 그래서 더욱 정이 가는 보통사람들의 삶이다. 그것은 곽경택의 데뷔작 ‘억수탕’에 담긴 세계였다. 곽경택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다정하게 영화 속 착한 인간들을 보듬고 있다. 영화는 그렇게 완성도가 뛰어나지 않는데도 곽경택의 영화세계가 성숙해졌다는 느낌을 준다. 아버지와 동네 사람들한테서 ‘똥개’라고 불리는 황철민은 어머니를 잃고, 어머니 대신 밥하고 빨래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산다. 경찰서 수사과장인 아버지의 타박을 받으면서 빈둥대는 게 일상의 전부인 그는 싸움과 집안일을 빼면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아버지는 그런 철민이 못 미덥지만 대놓고 구박하지는 않는다. 부자는 툭하면 티격태격 싸운다. 아버지는 늘 미래를 ‘생각만’ 하고 있는 아들이 걱정되고 아들은 적당히 속물인 아버지에게 대들고 싶다. 근래 한국영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영화 속 부자 관계는 배창호의 ‘기쁜 우리 젊은 날’ 이래 가장 인간적이고 활기에 넘친다. 어딘가 모자라고 철없어 보이는, 할 일 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고 다니는 주인공 황철민은 누구에게나 친구가 돼줄 듯이 순박하지만 친구 가족이 지역유지에게 해코지를 당하자 ‘감히’ 대들 생각을 한다.

    이미 감독의 전작 ‘챔피언’에서도 드러난 결함이지만, ‘똥개’는 플롯의 흐름이 뚝뚝 끊기는 삽화적인 구성의 리듬이 완벽하지 않은 탓에 관객의 감정이 등장인물들에게 완벽하게 이입되지 못하고 여러 번 주춤거리게 한다. 황철민과 아버지의 드라마, 아버지가 집에 들여놓은 소매치기 정애와 황철민의 머뭇거리는 로맨스 드라마, 황철민 부자가 타락한 지역 유지와 벌이는 싸움이라는 사회풍자 드라마가 산만하게 병렬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를 좋아하고 싶어진다. 아버지와 아들이 계란 프라이 한 조각을 더 먹느냐 마느냐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 등에서 감독 곽경택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결코 영웅적일 수 없는 남성성의 신화를 발가벗긴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어르신 젊은애 할 것 없이 다 되다 만 인간들이지만 근본적으로 순박하다. 영화가 그들의 가식 없는 삶에 요령껏 다가선 것은 망가져도 멋있는 황철민 역의 정우성과 그의 아버지로 나오는 김갑수의 노련한 연기 덕분이다. 들뜨지 않은 은근한 넉살로 사람들의 마음을 훔쳐내는 ‘똥개’는 만만해 보이는 만큼 친근감을 느끼게 하는 무난한 대중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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