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4

2003.07.24

‘대박의 꿈’ 박터지는 납품 경쟁

중소기업 신제품 마케팅 0순위 … 불법·비승인 홈쇼핑 업체가 시장 혼탁 주범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7-16 14: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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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박의 꿈’ 박터지는 납품 경쟁

    홈쇼핑은 양질의 제품을 생산하면서도 유통망 미비로 수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잭필드’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케이블TV 시청자치고 “바지 석 장을 묶어 3만9800원에 판다”는 코리아홈쇼핑의 광고방송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매일 수십개의 채널에서 수백 번씩 광고가 쏟아지다 보니 쇼 호스트가 “잭필드”라고 외치면 저절로 ‘3만9800원’이 떠오를 정도다. 케이블TV 광고 하나로 코리아홈쇼핑은 대박을 터뜨렸다. 작은 중소기업이 홈쇼핑 광고를 통해 400만장의 바지를 판매한 믿기 어려운 성과를 거둔 것. 사업 첫해인 2000년 100억원대의 매출액을 기록했던 코리아홈쇼핑은 2001년 300억원, 2002년 1000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올 매출 목표액은 2000억원에 이른다.

    높은 마진·가격경쟁력 홈쇼핑은 ‘오아시스’

    코리아홈쇼핑 박인규 사장(43)은 홈쇼핑 시장이 낳은 스타 CEO(최고 경영 책임자)다. 삼성물산 출신인 박사장은 미국 홈쇼핑 시장을 검토하면서 “아! 이거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처음엔 LG홈쇼핑 등 홈쇼핑TV에 물건을 납품하기도 했으나 업체측에서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어 예상만큼 수익이 나오지 않았다. 결국 그는 광고료가 싼 케이블TV에 홈쇼핑 형식의 광고를 내보내면 마진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의 예상이 그대로 맞아떨어져 잭필드가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그는 “남들보다 먼저 홈쇼핑 시장의 잠재력을 파악한 것이 잭필드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홈쇼핑 브랜드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홈쇼핑 시장은 2000년대 초 최고의 스타 업종으로 등극했다. 홈쇼핑의 최대 강점은 높은 마진과 오프라인 판매로 이어지는 광고효과다. 유통단계를 단순화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인지도를 높이는 데도 안성맞춤이라는 것. 홈쇼핑이 백화점 할인점에 버금가는 유통채널로 떠오르면서 홈쇼핑을 주요 마케팅 도구로 이용하려는 업체들의 납품 경쟁 또한 치열해졌다. 중소기업으로선 너도나도 쉽게 판매할 수 있는 홈쇼핑 업체 주변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홈쇼핑 업체와 제조업체들은 기본적으로 윈-윈(win-win) 관계다. 경쟁력 있는 제품을 갖고 있으면서도 안정적인 판매고를 올릴 수 있는 유통채널을 보유하지 못한 중소업체들에게 홈쇼핑은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우리홈쇼핑에서 MD(구매담당자)로 일하고 있는 이철형씨의 하루일과는 남품을 원하는 업체 관계자들을 만나는 것으로 채워진다. 하루 평균 5~8개사와 미팅을 하는데, 때밀이 수건 30개를 묶어 3만원에 납품하고 싶다거나 요실금을 치료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했다며 받아달라는 등 막무가내로 납품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이익을 얼마나 낼 수 있느냐’와 ‘시연할 수 있느냐’가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최우선 조건이라고 한다.

    홈쇼핑 업체가 ‘갑(甲)’의 역할을 하다 보니 납품 과정에서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보기도 한다. 지난해 한 홈쇼핑 업체에 물건을 납품하려다 포기한 김모씨는 “홈쇼핑 업체에서 가격을 반으로 후려친 데다 반품 비용의 일부를 공탁할 것을 요구하고 견뎌낼 수 없을 만큼의 재고 보유량을 원하는 바람에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홈쇼핑 업체들이 각종 금융부담이나 반품에 따른 택배 비용 등을 중소업체들에게 떠넘기고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납품 경쟁이 로비와 접대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한 홈쇼핑 납품업체 관계자는 “고만고만한 제품의 경우 로비가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게 홈쇼핑 시장만의 문제냐”고 반문했다. 이윤과 리스크를 가장 먼저 고려하다 보니 같은 품목의 경우 질 높은 제품보다는 ‘돈이 되는’ 물건이 방송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박의 꿈’ 박터지는 납품 경쟁

    홈쇼핑은 백화점 할인점에 버금가는 유통채널로 떠올랐다.

    중소기업들의 홈쇼핑 시장 진입이 이처럼 어렵다 보니 자연스럽게 등장한 게 인포머셜 홈쇼핑과 불법 유사 홈쇼핑이다.국내에서 홈쇼핑 업체를 표방한 회사는 정확한 통계가 없을 정도로 많다. 방송위원회(이하 방송위)는 적어도 2500개 이상의 업체가 홈쇼핑 형태의 광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LG·CJ·현대·우리·농수산 5개 홈쇼핑 전문채널들 외엔 모두가 방송위로부터 승인을 받지 않은 업체다. 방송법에 따르면 케이블TV 홈쇼핑 부문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업자는 반드시 방송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비승인 홈쇼핑이라고 해서 모두 불법은 아니다.

    잭필드로 대박을 터뜨린 코리아홈쇼핑은 대표적인 인포머셜 홈쇼핑 업체다. 잭필드의 광고화면 오른쪽 위에 깜빡이는 ‘광고방송’이라는 자막은 승인받은 홈쇼핑 채널과 비승인 채널을 비교하는 기준이다. 문제는 인포머셜 홈쇼핑과 유사 홈쇼핑 업체들이 난립하면서 홈쇼핑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주류 홈쇼핑 업체들도 허위·과장 광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지만, 유사 홈쇼핑 업체들의 행태는 상상을 초월한다. 먹기만 하면 살이 빠진다거나, 오줌발이 바로 달라진다는 등의 과대광고가 그 예다.

    방송법은 소비자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인포머셜 업체들의 광고방송을 사전 심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일부 업체들이 심의를 받은 필름을 수정하거나 심의 후 다른 내용을 첨가해 방송하고 있다는 점. 의사의 코멘트를 삽입한다든지 미국 FDA 승인 등의 문구를 새로 넣는 것이 가장 흔한 수법이다.

    보다 큰 문제는 ‘야바위 홈쇼핑’이라고 불리는 불법 홈쇼핑 업체까지 난립하고 있다는 것이다. 종합유선방송은 자체 광고방송을 내보낼 수 있지만 지방 군 단위 지역에 많은 중계유선방송은 광고를 내보내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줄잡아 2000여개의 업체가 중계유선방송 채널을 통해 장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을 적발할 수 있는 수단이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이들은 군 단위 지역에서 주로 노인들을 상대로 건강보조식품 등을 판매하는 데 전형적인 ‘치고 빠지기’ 수법으로 폭리를 취하고 있다.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들고 전국의 중계유선방송을 돌며 물건을 파는 업자도 있다고 한다. 일부 중계유선방송사는 하루종일 홈쇼핑 광고만 내보내는 불법채널을 운용하기도 한다. 방송위 관계자는 “중계유선방송을 통해 광고하는 제품은 구입해서는 안 된다”며 “거의 약장수 수준의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방송위에서 불법 홈쇼핑을 감시하고 있는 인력은 20여명에 불과하다. 현재 인력으로는 지방의 중계유선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하루 수천 건에 이르는 종합유선방송의 광고를 일일이 모니터링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방송위 관계자는 “현재의 인원과 솜방망이 규정으로는 불법 업체들의 난립을 막을 수 없다”며 “행정처분을 받은 업체들은 전체 불법 업체의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불법 업체들은 건전한 사업자들에게도 피해를 끼치고 있어 당국의 단속이 시급한 실정이다. 코리아홈쇼핑 박인규 사장은 “불법 홈쇼핑 업체 탓에 홈쇼핑 업체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생겨 매출에 지장을 받은 적도 있다”며 “당국이 건전한 업체와 불법 업체를 철저히 구분해 불법 업체를 엄단해야만 사업자와 소비자들이 부당한 피해를 보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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