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7

2003.06.05

여성 골퍼 性벽 허물기 멈출 수 없다

  • 문승진/ 굿데이신문 종합스포츠부 기자sjmoon@hot.co.kr

    입력2003-05-29 14:09: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미국이 골프 성대결 뒷얘기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 주말 미국 언론은 물론 전 세계 모든 골퍼들의 시선은 미국 텍사스주 포트워스에 위치한 콜로니얼 골프장(파70·6471m)에 모아졌다. ‘냉철한 승부사’ 아니카 소렌스탐(33·스웨덴)이 미국 프로골프협회(PGA) 투어 뱅크오브아메리카 콜로니얼(총상금 500만 달러)에 도전장을 냈기 때문이다.

    승패를 떠나 최고의 여자 프로골퍼가 남성과 함께 라운딩을 한다는 것은 남녀 평등이 정착된 미국사회에서도 ‘핫 이슈’로 떠오르기에 충분했다. 경기장에는 ‘세기의 성대결’을 취재하기 위해 600여명의 취재기자들이 모여들었고, ‘아니카 잘해라’는 글귀가 새겨진 배지와 소렌스탐의 사인볼 등이 불티나게 팔렸다. 또한 많은 여성단체로부터 격려의 메시지가 폭주했다.

    대회 전 골프전문가들은 기량이나 코스 길이, 그린의 빠르기, 난이도 등 모든 요인들을 살펴볼 때 소렌스탐이 컷오프를 통과하기조차도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의 이런 예상은 적중했다. 소렌스탐은 2라운드에서 4오버파 74타의 부진을 보이면서 무너졌다. 2라운드 합계 5오버파 145타를 기록한 소렌스탐은 기준타수에 4타나 모자란 성적으로 출전선수 109명 가운데 공동 94위를 차지하는 데 그치면서 컷오프 통과에 실패했다.

    PGA무대에 도전한 여자 골퍼는 소렌스탐이 처음이 아니다. 여성 골퍼의 성대결 도전 역사는 194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여자 골프선수인 베이브 디드릭슨 자하리스는 로스앤젤레스오픈에서 3라운드까지 진출하는 데 성공했으나 79타를 치는 부진을 보이자 기권해 최종 순위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후 여성 골퍼들의 기량은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왔다. 지난해 9월 PGA 코네티컷주 지역선수권에서 수지 웨일리(36·미국)는 남자 선수들을 제치고 우승하며 성대결에 불을 지폈다. 지역예선을 거쳐 처음으로 출전권을 획득한 웨일리는 오는 9월 열리는 PGA투어 그레이터하트퍼드오픈에 참가한다.

    스포츠과학 전문가들은 골프에서는 남녀의 차이가 크지 않다고 본다. 가장 남녀 차이가 심한 것은 바로 근력. 소렌스탐의 올 시즌 LPGA투어 평균 드라이버 거리는 252m(2위)로 PGA투어와 비교하면 163위 정도에 해당한다. 그러나 드라이버 정확도(73.8%)는 PGA ‘톱10’ 안에 들 정도로 정교하다. 또한 여자는 퍼팅을 포함한 쇼트게임 등 섬세함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남자보다 뛰어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실제로 올 시즌 소렌스탐의 그린 적중률(1위)은 76.5%로 PGA 1위(73.3%)의 기록을 뛰어넘는다.

    여성 골퍼들의 도전은 계속될 전망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한국 낭자’들도 가세한다. 270m가 넘는 폭발적인 드라이버 샷을 선보이고 있는 ‘골프 천재’ 미셸 위(한국명 위성미)는 이미 성대결 합류를 선언했다. 미셸 위는 9월18일 미국 아이다호주 보이시의 힐크레스트CC(파71)에서 개막되는 미국 PGA 2부 투어인 네이션와이드투어 앨버트슨 보이시오픈에 출전한다. 미셸 위는 “골프에서 남녀의 차이는 거리뿐이다. 여성들이 용기를 갖고 남성들과 싸워야 한다. 여자 선수의 남자대회 출전이 더 이상 화젯거리가 되지 않는 날이 곧 올 것이다”고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골프여왕’ 박세리(26·CJ)도 5월18일 국내에서 열린 MBC X캔버스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 “(남자대회에 출전하는 데) 관심이 아주 많다. 국내 남자대회에서 초청해주고 일정만 맞는다면 출전하겠다”며 ‘성대결’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여성운동의 혁명적 시발점이 된 1848년 세네카 폴스 여권선언 이후 72년이 지난 1920년에야 비로소 미국 여성들은 시민권과 함께 투표권을 가질 수 있었다. 1945년 자하리스의 성대결로 시작된 여성 골퍼들의 도전이 결실을 맺을 날은 언제쯤일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