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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화나셨나요?”

가슴 답답 뜨거운 것이 ‘울컥’

울화 치밀고 흥분 지속 땐 화병 의심을 … 화 쌓아두지 말고 다양한 방법으로 풀어야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가슴 답답 뜨거운 것이 ‘울컥’

가슴 답답 뜨거운 것이 ‘울컥’
결혼 후 지금까지 25년간 남편의 지나친 음주벽으로 인해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아온 주부 김모씨(50대 초반). 그저 ‘팔자소관’이려니 하고 체념한 채 두 딸을 키우며 살아온 김씨에게 2년 전부터 ‘이상한’ 증상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간헐적으로 걷잡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가슴이 답답해짐을 느끼기 시작한 것. 그러다 최근 남편이 외도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증상이 급격히 악화돼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김씨는 체열진단(DITI)과 자율신경계 진단검사를 받은 결과 전형적인 화병환자로 판명됐다. 김씨의 체열진단표에 의하면 신체 부위 중 가슴과 목, 얼굴에 열이 집중돼 있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났다(그림 참조).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김종우 교수(화병클리닉)는 “화병환자의 경우 화가 위로 치솟는 성질이 있어 인체 상부에 열이 집중되거나 교감신경이 비정상적으로 흥분돼 있는 등 공통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또 화병은 일반적인 스트레스성 질환과는 차별되는, 몇 가지 고유의 증상도 있다는 게 김교수의 설명.

스트레스성 급성 화병 ‘탈영실정’ 부쩍 늘어

“화병은 억울한 감정이나 속상함 등 스트레스가 장기간 누적돼 발생하는 질환으로 가슴이 답답하거나 숨이 막히는 듯하고, 무엇인가 치밀어 오르는 증상이 느껴지면 이미 화병이 진행되고 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또 가슴의 정중앙 부위인 전중혈(감정의 기운이 많이 모이는 침자리)을 눌렀을 때 심한 통증이 느껴지고, 얼굴에서 열이 나고 가슴이 뛰는 등 신체적인 반응도 전형적인 화병 증상이지요.”

특히 화병은 한국인에게서만 유독 심하게 나타나 외국의 신경정신과 전문의들 사이에서도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기준서에 ‘코리안 컬처 신드롬(Korean Culture Syndrome)’으로 명시되어 있는 화병은 주로 30대 후반부터 50대 후반까지의 여성이 전체 환자의 80%를 차지한다. 주부의 경우 남편의 외도와 무관심, 시댁과의 불화, 자녀교육 문제 등으로 속앓이를 하면서 화병을 키운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화병클리닉을 찾는 계층이 다양화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신혼 초의 직장남성들과 청소년층에서도 화병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는 것. 이와 함께 급격한 사회적 변화나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발생하는 화병 증상인 ‘탈영실정(脫營失精)’이란 질환을 앓는 환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일반적인 화병이 스스로 원인을 알고 있는 스트레스를 장기적으로 받다가 분노가 폭발하는 것이라면, 탈영실정은 예측이 불가능한 사태로 인해 욕구불만이 터져 나오는 스트레스성 질환이다. 사실 우리 사회는 IMF 관리체제 시절 한바탕 탈영실정이라는 ‘돌연변이성 화병’의 홍역을 치르기도 했다. 다음은 김교수가 소개하는 한 사례.



“50대 후반의 여성이 내과와 정신과를 찾아 치료를 받아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 화병클리닉을 찾은 적이 있어요. 이 여성은 5년 전인 IMF 외환위기 때 친하게 지내던 이웃사람에게 5억원을 사기당한 후 현재까지 그 이웃이 살던 집이나 은행 문만 봐도 얼굴에 열이 나고 숨을 쉬지 못할 정도로 가슴이 답답했다고 호소해요. 그래서 입원시켜 상담요법과 신체 증상을 없애는 침치료와 약물처방을 병행해 치료했습니다. 지금은 환자가 예전의 증상이 없어졌고 잠도 편하게 잘 수 있다고 말합니다.”

김교수는 이런 화병 증상의 경우 주로 특권의식에 젖어 있는 부유층이나 권력층 주변에서 흔히 목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 계층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 자신에게 닥쳐올 경우 순순히 이를 받아들이기보다 ‘왜 하필이면 나인가’ 하면서 일종의 배신감을 느껴 분노를 표출하게 된다는 것. 특히 한국처럼 예측불가능한 일이 계속 벌어질 경우 이런 증상의 환자들도 덩달아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가슴 답답 뜨거운 것이 ‘울컥’

얼굴과 가슴 부위에 열(붉은색과 흰색)이 집중돼 있는 화병환자의 체열진단 사진(왼쪽).기 수련을 통해 스트레스를 다스리는 ‘단월드 대법원 수련회’ 회원들.

화병은 또 방치할 경우 20년 이상 지속된다는 연구보고가 있을 뿐 아니라 두통, 불면증, 고혈압, 심장병 등 각종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화병으로 죽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병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의학적 근거도 있다. 성균관대 의대 삼성서울병원 심장혈관센터 권현철 교수팀은 얼마 전 ‘화병이 생기면 심장이 멈춰 돌연사할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극심하고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은 환자들을 방치할 경우 심장동맥에 이상이 없는데도 심근경색증과 비슷한 심장기능 저하, 가슴통증을 호소했다는 임상보고다.

또 화병환자는 갑작스럽게 화가 나거나 분노가 폭발해 아무 이유 없이 그릇을 집어던지거나 집기를 부수는 등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치료와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김교수는 대구 지하철 참사도 중풍 후유증 때문에 아무 일도 못한다는 분노감이 행동으로 표출된 화병환자로 인한 비극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화병 치료법에는 증상을 없애기 위한 약물요법과 심리치료 등이 있다. 서양의학의 경우 화병을 우울증이나 불안장애 등의 정신질환과 같은 종류로 보고 항(抗)우울제 같은 약물을 투여하거나 상담을 통해 환자의 증상을 개선하는 데 주력한다.

반면 한의학에서는 화병이 화로 인해 생긴 병이기 때문에 화 자체를 조절하는 치료에 주목한다. 구체적으로 환자의 상태에 따라 가슴에 뭉친 기를 풀어주기 위해 침치료를 하거나, 지속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열을 내리도록 한약처방을 하거나, 향의 흡입을 통해 정신의 안정을 꾀하는 아로마요법(향기요법)을 사용하거나, 기공치료를 한다. 이중 기공치료의 경우 화병 치료에 탁월한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환자 스스로가 집에서도 기공체조를 하면서 화를 다스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가슴 답답 뜨거운 것이 ‘울컥’

기 수련이 굳어진 육체와 마음을 이완시켜주는 효과가 있다고 말하는 대법원의 최복규 판사.

화병을 다스리는 데 자주 이용되는 기공체조는 육자결(六字訣). 이는 오장육부, 특히 심장과 폐에 쌓여 뭉친 기를 외부로 내보낼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 동작은 집이나 사무실 등에서 화가 나기 시작했을 때 시도해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몸에 쌓이는 화를 밖으로 내보냄으로써 화를 쌓아두지 않게 되고, 또한 화를 다른 사람에게 터뜨리는 것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뒷장 기공체조 참조).

각종 합병증 유발 돌연사 가능성 매우 커

최근에는 단전호흡이나 명상수련 등을 통해 화를 조절하거나 마음을 다스리는 요법도 유행하고 있다. 한나라당 최병렬 의원은 6개월 전부터 단월드(구 단학선원)의 뇌호흡 수련을 하면서 “화가 나거나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 몸 전체를 유연하게 하면서 마음을 평안하게 해주는 수련 효과를 보고 있다”고 자신의 체험을 말했다. 최의원은 조용한 곳이라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1시간 정도 서서 약간씩 움직이거나 바르게 앉아서 수련을 한다고 한다. 대법원의 재판연구관 최복규 판사(단월드 대법원 수련장 회장) 역시 호흡과 명상수련을 통해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다스리고 있다고 밝혔다. 최판사는 “기운동을 통해 자신의 몸상태를 돌아보게 되고 그로 인해 마음까지 이완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물론 명상이나 단전호흡 이외에 땀을 흘리는 운동으로도 화를 가라앉힐 수 있다. 오세훈 한나라당 의원은 땀을 흘리며 운동하는 것으로 화와 스트레스를 가라앉히는 스포츠맨. 산악자전거 마니아인 오의원은 평소에도 강남에서 국회까지 자전거로 이동하는 날이 많다.

한편으로 화병전문가들은 화병은 치료도 중요하지만 예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화병이 치료된 이후에 재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예방법이 필수라는 것.

먼저 화를 바로 내거나 폭발시키지 않도록 한다. 또 다른 화를 부를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화가 폭발한 경우는 근육이완법이나 기공체조 등을 이용해 경직된 전신을 이완시켜주는 것이 급선무다. 화는 참는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후에도 이를 풀려고 노력해야 한다. 급작스런 화가 가라앉은 후에는 적극적으로 상대방과의 대화를 시도하는 게 바람직하다. 화가 난 상태에서 잠자리에 드는 것도 절대 금물이다. 그대로 잠들 경우 스트레스가 체내에 쌓여 다음날까지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화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자신이 다른 사람의 희생양이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서부터 자부심과 자신감을 갖는 게 좋다. 화병전문가들은 화병은 쌓여서 생겼으므로 어떻게든 풀어야 하며 화병에 걸리기 전에 스스로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강조한다.





주간동아 377호 (p22~24)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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