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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특검’ 십자가 질까

DJ 정권의 대북관계 핵심 … 역할·행보 따라 특검 수위 달라져 ‘정치권 시선 한몸에’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박지원 ‘특검’ 십자가 질까

박지원 ‘특검’ 십자가 질까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

대북송금 특검과 관련, 긴장감이 감돌던 3월14일. 민주당 한 인사는 청와대와 민주당의 분위기를 ‘리얼타임’으로 동교동에 전달했다. 이 인사가 전한 이날 오전 기상도는 ‘거부권 유력’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도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오후 6시쯤, 노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법안을 공포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문제가 꼬였다.

특검법 공포 후 동교동 사저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은 취재기자들을 피해 모처로 잠적했다. 또 다른 대북통 임동원 전 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도 마찬가지. 그의 집으로 전화를 건 기자들은 “언론사 전화를 받지 않겠다”는 가족들의 입장만 되풀이해 들었다. 특검법 공포를 전후해 DJ 정권의 대북통이 모두 잠행한 것이다.

DJ는 정치적 책임, 박지원은 법적 책임?

특검법 공포는 청와대와 정치권의 관계에 대한 기존의 틀을 뒤흔들었다. 여당과 청와대가 한편에 서서 야당과 대치하는 정국 구도가 깨졌기 때문이다. 당정 분리라는 원칙에 따라 앞으로도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정국에 임하겠다는 게 노대통령 측근들의 설명이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직거래 가능성은 민주당, 특히 구주류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런 흐름은 특검의 진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특검은 ‘진실 규명과 국익’이라는 서로 상반된 논리에서 출발했지만 조사대상과 수위를 정치적 대화와 타협으로 조정할 예정이다. 현재 현안은 ‘대북송금 절차를 수사대상으로 삼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민주당은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을 고려해 대북송금 절차를 수사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대북송금 절차는 수사의 본질”이라며 맞서고 있다.



DJ에 대한 조사 여부도 첨예한 대립을 예고한다. 현대의 대북송금액 조성과정 및 정권 핵심부의 개입, 지시 여부 등은 특검의 핵심 수사대상이다. 정치적 배려가 없다면 특검은 이 문제와 관련해 DJ를 직접 또는 서면으로 조사할 수밖에 없다. 이미 검찰이 전직 대통령을 소환, 조사해 사법처리한 전례가 있는 데다 특검 도입의 목적이 성역 없는 수사이기 때문이다. DJ는 이미 이번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DJ가 특검의 요구에 순순히 응할 것인가 하는 점은 예단하기 어렵다. DJ는 퇴임 직전 이 사건을 통치행위로 규정, 법률적 해석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런 입장이라면 특검의 호출에 선뜻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을 감안한 정치권은 박 전 실장을 유심히 본다. 박 전 실장의 역할과 행보에 따라 특검의 조사 방향과 수위는 큰 차이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박 전 실장이 모든 것을 ‘안고’ 갈 경우 특검이 정면으로 DJ를 공격하기 힘들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박지원 십자가론’으로 설명한다. DJ가 정치적 책임을 지고, 박 전 실장이 법률적 책임을 지는 것이 십자가론의 내용이다.

특검이 공포되기 전 여야 정치권에서는 박 전 실장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했다. 3월10일 유인태 청와대 정무수석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권한대행을 만난 자리에서 “박지원 같은 사람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뒤로 빠지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교동계도 이 문제에 대해 깊이 논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인사는 “몇몇 인사들이 모여 누군가 십자가를 져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판단에 따라 박 전 실장이 스스로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검 거부권을 노린 전술이었다는 게 이 인사의 고백이다. 이 인사는 “어차피 대북문제를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면 역할을 분담,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지원 ‘특검’ 십자가 질까

노무현 대통령이 3월14일 춘추관에서 대북송금 관련 특검법에 대한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왼쪽). 김대중 전 대통령이 2월14일 청와대에서 대국민 사과담화문을 발표한 뒤 임동원 특보의 발언이 계속되는 동안 눈을 감고 굳게 입을 다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러나 특검이 공포된 현재로서는 이런 단순논리로 DJ를 보호하기는 힘들다. 정치논리에 특검이 휘둘릴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동교동계 한 인사는 “대북문제에 관한 한 박 전 실장의 광범위한 역할이 있기 때문에 본인이 결단을 내린다면 가능하다”고 말한다. DJ 정권의 대북관계를 처음부터 끝까지 꿰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 박 전 실장이라는 상황논리다.

그는 박 전 실장이 2000년 3월17일, 중국 상하이에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과 북한의 송호경 조선아태평화위 부위원장이 현대의 대북사업 대가로 5억 달러를 지급하기로 합의한 자리에 함께 있었던 점을 예로 든다. 이 자리는 현대의 약속을 보증해주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교동계 한 관계자는 “보증인의 역할을 했다면 내막을 다 알고 있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박 전 실장의 북한측 인사 접촉 범위와 이유, 대화 내용 등은 사건의 성격과 줄거리를 규정짓는 결정적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송금 규모도 박 전 실장의 역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현대상선과 임동원 전 특보는 대북송금액을 5억 달러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재계 안팎에서는 “7대 사업의 30년간 독점 대가로 5억 달러는 적은 금액”이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α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 제기이다. 민주당 K씨는 “한나라당은 박 전 실장이 당시 북측에 남북정상회담의 대가로 5억 달러 이상을 주기로 합의했다는 주장에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2000년 6월 현대에 대한 당좌대월 한도를 어기면서까지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대출해주었다. 대출 과정이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허술하게 이뤄졌다는 점은 여권의 입김이 산업은행에 작용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인식이다. 민주당 K씨는 “박 전 실장이 마음만 먹는다면 특검은 모든 궁금증과 의혹을 풀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과 청와대에서도 비슷한 말들이 흘러나온다.

민주당 일부 인사들의 이런 주장은 말 그대로 희생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박 전 실장이 정치적 판단에 따라 십자가를 질 경우 실체적 진실을 가리는 행위라는 비판도 터져 나올 수 있다. 박 전 실장은 이런 주장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동교동계 한 인사는 “박 전 실장과 몇 차례 통화를 시도했지만 리콜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박 전 실장을 만난 민주당 한 인사는 대북문제와 관련, “지난 5년에 대한 책임은 지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고 한다. “주어진 길이라면 피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라는 것. 그는 “지난해 말 만난 박 전 실장이 매우 씩씩했고, 끝까지 DJ를 보필할 것임을 여러 차례 약속했다”고 말했다. DJ와 박 전 실장은 앞으로 어떤 연을 이어갈까.





주간동아 377호 (p28~29)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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