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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노무현 경제 리더십

실전 盧노믹스 ‘기대반 우려반’

“SK쇼크 통해 빠르게 현실경제 인식” “아직도 현실과 동떨어져” 안팎 엇갈린 평가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실전 盧노믹스 ‘기대반 우려반’

실전 盧노믹스 ‘기대반 우려반’

주한 외국 기업인들을 만나는 노무현 대통령. 노대통령은 무디스 방문단의 보고를 받은 이후 국제 금융시장에 적극적으로 현안을 설명하라고 지시했다.

라종일 국가안보보좌관의 대북 비밀접촉 파문과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 아들의 이중국적 파동으로 청와대가 시끌벅적하던 3월5일. 재정경제부(이하 재경부) 국제금융국에 예기치 못한 손님들이 들이닥쳤다. 지난 2월 한국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해 ‘무디스 쇼크’를 몰고 왔던 신용평가기관 무디스의 앤드류 킴벌 수석담당관을 포함한 무디스 고위 관계자 3명이었다. 이날 무디스 관계자들과의 대화중에 재경부는 의외의 정보 하나를 입수했다. 한국에 대한 신용등급 조정 여부를 결정할 9인 등급위원회가 3월10일 열릴 예정이라는 사실이 이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것.

그러잖아도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넘어서는 등 금융시장이 불안한 상황에서 무디스의 등급위원회 개최 임박 소식으로 국제금융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권태신 국제금융국장은 이 사실을 즉각 김진표 경제부총리에게 보고하는 동시에 청와대 이정우 정책실장, 권오규 정책수석, 조윤제 경제보좌관 등에게 통보했다. 재경부측은 무디스측이 한국의 신용을 불안하게 보는 대표적 요인이 북핵 문제라는 점을 감안해 경제부처뿐만 아니라 국방부와 외교안보 관계자를 포함한 대표단을 무디스에 파견하는 것이 좋겠다고 청와대에 제안했다. 이때부터 청와대 비서진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재경부의 이런 의견은 이실장과 권수석, 조보좌관 3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에게 바로 보고됐다. 이실장 등 3명은 금융시장에 미칠 수 있는 불안요인을 감안해 대표단 출국은 극비리에 이뤄져야 한다는 단서를 달아 노대통령의 재가를 요청했다. 보고를 받은 노대통령은 그 자리에서 대표단 파견을 지시했다.

무디스 파견 건의받고 그 자리서 수용

재경부는 대통령의 재가가 나자마자 무디스측에 전화를 걸어 “직접 갈 테니 일단 기다려달라”는 뜻을 전했고 청와대는 반기문 외교보좌관의 출국을 결정했다. 청와대측은 반보좌관의 출국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자 “뉴욕에서 열리는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 갔다”고 연막을 쳤다.

무디스측은 한국의 요청을 받고 등급위원회 개최를 일단 미뤘다. 10일 오전 한국 대표단을 만난 뒤 그날 오후 등급위원회를 열려던 계획을 바꿔 위원회 개최를 12일로 미뤘고, 이날 위원회에서 우려와는 달리 한국에 대한 신용등급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재경부의 한 관계자는 “SK 쇼크로 금융시장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무디스가 신용등급 하향 조정 결정을 내렸을 경우를 생각하면 아찔할 정도”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무디스를 방문한 대표단 귀국 이후 한 노대통령의 발언이다. 노대통령은 반보좌관으로부터 방미 결과를 보고받은 뒤 “정부 고위 당국자가 직접 가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안보관계 및 경제정책 고위 책임자가 정례적으로 국제 금융시장에 가서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정보를 제공토록 하라”고 당부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사진 찍으러 미국에 가지는 않겠다”고 하던 대통령의 발언을 떠올려보면 적지 않은 인식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노대통령은 “방미 설명회가 기대보다 효과가 좋았다”고 평가하면서 반보좌관에게 “소주 한잔 하자”는 농담까지 던질 정도로 흡족해했다는 후문이다.

실전 盧노믹스 ‘기대반 우려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시절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방문한 무디스 관계자들은 북핵 관련 현안과 한미 동맹관계 등에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노대통령이 검찰과의 기싸움을 벌이면서 대북송금 특검법에 관한 해법을 찾는 사이 금융시장을 덮쳐버린 ‘SK 쇼크’를 통해 경제문제에 대한 ‘실전감각’을 빠르게 익히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한미관계의 이견을 강조하는 발언들이나 일련의 북핵 관련 발언들이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도 이번 방미 대표단의 보고를 통해 어느 정도 인지했으리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노대통령의 경제 인식이 경제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노대통령 캠프에 참여했던 한 경제학자는 “노대통령이 경기부양이나 시장개입에 기본적으로 반감을 갖고 있지만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도록 조정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시장에 불안감이 확산될 때마다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면서 시장에 안정감을 주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 비교해보더라도 노대통령의 경제 관련 발언은 별로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재경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가계부채 대책에 대해 부총리를 질책한 것으로 알려진 것 이외에는 최근 금융시장 상황에 대한 직접적 언급은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노대통령이 경제관료들과 일부 언론에 대해 여전히 피해의식이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선자 시절 “일부 언론이 경제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는 식의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되고 있다. 이 발언이 나온 직후 무디스가 한국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해 충격을 던져주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재경부 업무보고 하는 자리에 역할이 불분명한 인수위 출신 학자들을 배석시키는 것을 보고 대통령이 관료들을 향해 ‘이런저런 보고서로 나를 길들일 생각 하지 마라’는 신호를 준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 방안 아직 밑그림 못 그려

실전 盧노믹스 ‘기대반 우려반’

노대통령은 노사분규 현장에 뛰어들어 중재를 시도하는 등 노사관계에 자신감을 드러낸 바 있으나 경제현안 전반에 대한 조정능력은 아직 검증된 바 없다.

노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 방안도 아직 구체적 밑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당시 노대통령 주변인사들 가운데는 국내 경제에 대한 불안심리가 고조되고 있는 마당에 ‘동북아 중심국가론’이 얼마나 현실감 있게 다가오겠느냐는 회의론을 편 사람들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위야 어쨌든 동북아 중심국가론은 ‘노무현시대’를 결정짓는 ‘키워드’로 등장했음에도 정작 추진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결국 최근 노대통령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권한대행과 만난 자리에서 “선거 때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 등 여러 아이디어를 짰는데 사실 껍데기밖에 없다”고 실토하기에 이르렀다.

노대통령 주변의 경제참모들은 대통령이 경제전문가가 아닌데도 경제현안에 대한 이해능력이 뛰어나고 ‘입력이 빠르다’고 입을 모은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현안을 ‘캐치’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상반된 견해에 대한 검증 과정도 빠르다는 것이 노대통령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노대통령이 경제문제에 관한 실전경험은 별로 없지만 이런 점 때문에 경제현안 대처능력에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다. 특히 최근 경제위기 국면이 북핵 문제와 한미공조 균열 조짐 등 지정학적 요인 때문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대통령의 외교 관련 발언이 좀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서울대 박세일 교수는 “노대통령은 ‘정면돌파’ 스타일로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스타일이 (국내의 파워게임에서) 승기를 잡는 데는 유리할 수 있지만 국제문제에서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며 “외교문제에 관한 한 미세한 워딩(말투나 단어 선택)까지 정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미관계에 대한 노대통령의 인식을 보여주는 일화 한 토막. 3월 초 청와대에서 노대통령과 김희상 국방보좌관이 참여한 토론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군 출신의 김보좌관은 대미 공조의 복원 필요성을 역설했다. 토론이 길어지자 노대통령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나와 뜻이 달라 같이 일을 못 하겠다는 거냐”고 말할 정도로 격론이 오가기도 했다. 토론 끝에 노대통령은 “미국에 대한 최근 입장에는 다 전략이 깔려 있는 것이니 믿고 따라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1주일쯤 지나서 노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회담을 통해 한미공조 의지를 확인했다. 또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이 반보좌관의 방미를 전후한 2∼3일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한미 간에 근본적인 이견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따라서 그동안 잇따랐던 한미관계와 관련한 ‘직설적’ 발언들이 노대통령과 참모들의 대미협상용 카드였는지 아니면 노대통령의 대미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노대통령의 발언이 전략적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펜타곤 등 노대통령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미국 내 강경파들과 어떻게 맞설 것인지에 대한 대책도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부에서는 대통령의 경제인식보다도 중요한 것이 경제운용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가동시키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대통령 취임 전 청와대와 내각 시스템에 대해 자문한 바 있는 박세일 교수는 “경제 상황이 불안할수록 대통령 혼자서 모든 것을 일일이 챙길 수 없는 만큼 대통령이 개별 현안에 따라 경제부처 장관들을 만나 논의할 수 있도록 경제보좌관이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대통령은 말을 줄이고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 서울대 행정대학원 최병선 교수는 “경제문제에 관해서 대통령이 자기 색깔을 분명히 보이고 싶은 욕심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불안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교수는 또 “대통령이 좀더 포용적이고 타협적인 모습을 보여줘야 하며 경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는 사실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노대통령이 취임 한 달도 안 돼서 ‘경제위기론’으로 휘청거리고 있는 한국호(號)의 선수를 어디로 향하게 할지 시장 관계자들은 숨죽인 채 지켜보고 있다.





주간동아 377호 (p34~36)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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