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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명품 팔아 살아남기

고급화 전략으로 할인점과 차별화 … 불황 안 타는 상류층 겨냥, 유명 브랜드 모셔오기 경쟁

  •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백화점, 명품 팔아 살아남기

백화점, 명품 팔아 살아남기

넓은 공간을 고급 인테리어 자재로 꾸민 백화점 명품관. 현대 압구정 본점(왼쪽)과 갤러리아 명품관.

지난해 말 유통업계의 화제는 단연 ‘할인점의 백화점 매출 추월’이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가격경쟁력 면에서 강세를 보여온 할인점의 대공세가 백화점의 위세를 한풀 꺾어놓은 것. 이후 할인점과의 차별화를 위한 백화점의 고급화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특히 경기 호전 가능성이 불투명해지면서 VIP고객을 끌어들일 명품 브랜드 유치가 백화점의 마지막 생존전략으로까지 이야기되고 있다.

실제 본격적인 봄 시즌을 앞두고 매장구성(MD) 개편을 마무리한 백화점마다 해외 명품 브랜드 입점이 눈에 띈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은 오랜 줄다리기 끝에 ‘샤넬 부티크’를 입점시켰고, 지난해 오픈한 목동점에는 구찌에 이어 페라가모를 유치했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지난달 루이뷔통의 수석디자이너인 마크 제이콥스가 만든 의류 브랜드 마크 제이콥스와 고급시계 브랜드 헤리윈스턴을 유치하는 데 성공해 화제가 됐다. 롯데백화점 잠실점에는 펜디와 티파니가 새로 오픈한다.

그러나 명품 매장을 오픈하기까지의 과정은 백화점측에서 비밀에 부칠 만큼 어렵고 경쟁이 치열하다. 명품 브랜드를 입점시킬 때는 계약서상의 갑과 을의 입장이 뒤바뀌기 때문. 일반 브랜드라면 백화점에서 자사의 이미지와 수준에 맞는 브랜드를 유리한 조건으로 선택해 입점시키겠지만, 명품 브랜드는 각 백화점에서 서로 모시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기 때문에 백화점측에서 가능한 한 최상의 서비스를 명품 브랜드에 제공하고 있다.

백화점이 인테리어 비용까지 부담

명품 매장은 대개 일반 매장과 달리 백화점 내에 별도의 벽을 세우고 독자 공간을 마련한다. 업계에 따르면 최소 40~50평형 규모는 확보해야 명품 브랜드에 입점을 의뢰할 수 있다. 브랜드에 따라 80평 이상의 공간을 확보해놓고 인테리어 비용을 백화점에서 모두 부담하면서 ‘모셔오기’도 한다. 이 때문에 백화점 내부에서는 마진율이 10~18%에 불과한 명품 매장을 마련하기 위해 마진율 30% 이상인 기존 판매대를 포기해야 하느냐는 반발이 나오기도 한다. 더욱이 모셔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연예인을 초청하는 등의 판촉 이벤트에 드는 비용까지도 백화점측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희소성을 내세우는 명품업계에서는 백화점들이 적극성을 보일수록 한 발짝 물러서서 조건을 따져보게 마련이다. 온갖 노력 끝에 압구정 본점에 샤넬 부티크를 입점시킨 현대백화점에 대해 업계에서는 이병규 전 사장(현 상근고문)이 프랑스 샤넬 본사를 방문해 입점을 부탁했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로 명품 브랜드의 콧대는 높고, 업계는 허리를 굽혀가며 적극성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본점이나 강남지역이 아닌 지점에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강남지역 매장에 같은 회사의 하위 브랜드를 여러 개 입점시키는 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게 일반화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한 백화점이 강남지점에 구찌의 서브브랜드인 보테가베네와 세르지로시를 입점시키는 조건으로 강남이 아닌 지점에 구찌 매장을 유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입점 브랜드에 당당하기만 한 백화점들이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가면서까지 명품 브랜드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는 이유는 고가의 명품은 경기변동의 영향을 덜 받아 경기와 상관없이 꾸준한 매출 신장세를 보여왔기 때문. 지난해 롯데와 현대, 신세계 등 백화점 빅3의 해외 명품 매출신장률은 13.4%로 잡화(5.8%)와 여성캐주얼(5.0%) 등에 비해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백화점, 명품 팔아 살아남기

롯데 본관 면세점(왼쪽)와 그랜드마트 명품 매장.

상위 20% 고객이 백화점 전체 매출의 80%를 차지한다는 ‘2080법칙’ 또한 경기 침체가 계속될수록 그 위세를 드러낸다. 1991년 오픈한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은 해외 명품 브랜드 130여개가 한 공간에 몰려 있다. 이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우다. 그런데 갤러리아 백화점의 매출신장률을 살펴보면 IMF 직후인 1999년에 전년 대비 34.3%나 성장했다. 이는 개점 이래 최고치로 이후 갤러리아 백화점은 10~20%의 꾸준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인 지난해 12월 백화점 매출에서도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이 전년 동기 대비 15%씩 감소한 데 반해 명품 브랜드 유치 선두주자인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 백화점은 각각 13%, 9% 정도 줄어드는 데 그쳤다. 이 때문에 경기 침체가 계속될수록 소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져 업계에선 ‘1% 마케팅’이란 말까지 회자될 정도로 고급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기존의 명품시장은 갤러리아 명품관, 현대 압구정 본점, 신세계 강남점 등 강남지역이 독점하다시피 했으나 롯데와 신세계 본점 등 강북의 백화점들이 명품 상권의 판도를 바꾸려는 공세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서울 소공동 본점 바로 옆에 위치한 구 한일은행 빌딩을 인수한 롯데백화점은 내년쯤 별도의 명품관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워두고 있다. 지상 21개 층 중 일부에 50여개의 해외 명품 브랜드를 입점시켜 내년 4월경 오픈할 예정.

지난해 재개발에 들어간 신세계백화점 본점도 명품관으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일제시대에 개점한 본관 건물을 박물관으로 쓸지, 명품관으로 활용할지 고민을 했던 게 사실이나 아직까지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2005년 본관 재개발 공사 및 신관건물 신축이 마무리되면 신세계백화점 본점은 1만6000평의 대규모 백화점으로 변신하기 때문에 본관의 고풍스러운 이미지와 명품을 결합한 마케팅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강남 집중에서 강북·지방으로 확산

명품시장은 강남에서 강북으로의 확장뿐 아니라 서울에서 지방으로의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본점에도 없는 루이뷔통을 지난달 말 오픈한 대구점에 입점시켰으며 샤넬, 구찌, 크리스찬디오르, 프라다 등을 유치해 지역 백화점이 강세를 보이는 대구에 고급화 전략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현대도 2001년 초 울산점에 버버리, 아이그너, 듀퐁, 몽블랑,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명품 브랜드 6개를 입점시켰다. 현대백화점 양경욱 과장은 “울산 상권의 특성상 명품 브랜드의 성공 여부에 대한 사내 반대도 있었으나 아이그너는 지난해 월평균 매출이 본점 수준에 육박할 정도로 성공적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며 “울산지역에 나중에 오픈한 롯데백화점과의 차별화에도 명품 브랜드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플라자 분당점은 지난해 경기도권 백화점으로는 유일하게 페라가모와 크리스찬디오르, 프라다, 에트로 등을 입점시킨 데 이어 올해 테스토니, 발리 등을 추가로 유치할 계획이다.

업계는 백화점과 로드숍을 기준으로 국내 명품시장 규모가 연간 1조~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 규모는 소비의 고급화 경향에 발맞춰 지속적이고 안정적으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통 전문가들도 국내외 경제여건을 감안해 백화점이 3~5%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고급품에 대한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세계백화점 장혜진 과장은 “홈쇼핑 제품과도 차별화하기 위해 백화점의 고급화 추세는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이동훈 수석연구원은 “소비 고급화 추세는 의류에서 시작돼 식생활을 거쳐 주생활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말했다. 패션뿐만 아니라 식품, 가구, 생활소품 등으로 고급화 경향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 백화점이 명품 브랜드를 구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테리어 등을 고급화하는 것도 속속 등장하는 고급 주거공간에 거주하는 최상류층 입맛에 맞춰 소비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해석이다. 이 수석연구원은 “이런 백화점의 변화가 일반인에게 위화감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2대 8에서 1대 9로까지 옮겨가는 사회 소비구조의 고급화 추세에 비춰볼 때 백화점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377호 (p48~49)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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