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7

2003.03.27

이슬람 증오 ‘이라크 희생양’

미국인들 아랍에 대한 우월감과 무지 … “테러집단 악의 온상” 중세판 마녀사냥

  •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미국 워싱턴대학 교환교수 lee200@dreamwiz.com

    입력2003-03-20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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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라크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해 미국을 위협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이라크인들은 무역금수 조치로 100만명 이상의 어린 생명과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간 미국이야말로 대량살상무기를 휘두르는 악의 화신이라고 믿는다. 사실상 미국을 제외하면 이라크가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믿는 나라도 없다.

    그리고 왜 그들만이 무기를 보유해서는 안 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국제법을 어겨가며 일방적으로 타국 영공에 비행금지 구역을 설정해놓고 이를 추적하는 자위권을 무차별 공격하는 논리를 그들은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 나아가 이웃 이스라엘은 핵과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무장의 팔레스타인인들을 매일같이 학살하는데도 수수방관하고 오히려 비호하는 미국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분노한다. 급진적 테러를 조장하는 일차적 책임이 아랍에 대한 미국의 불공정한 개입과 이중잣대에 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아랍과 이슬람에 대한 미국인들의 인식은 우월감과 무지, 그리고 증오로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은 자신들이 공격하기만 하면 독재에 신음하는 이라크인들이 대환영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적용될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에 빠져 있다.

    미국 현지에서 만나본 미국인들은 아랍과 이슬람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온통 테러리즘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바라볼 뿐이다. 평화와 인권과는 거리가 먼 악의 온상이라는 중세판 마녀사냥이 현재의 미국사회와 언론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인들의 절대다수는 여전히 이라크의 후세인과 알 카에다를 동일시하고 있다.

    ‘언젠가’ 위협 때문에 공격 논리 모든 국가에 해당



    여기에 더해 9·11 테러 이후 미국 사람들은 눈에 띌 정도로 겁에 질려 있다. 때문에 미국인들에 대한 사회병리학적 고단위 처방을 위해서도 이라크전쟁은 오래 전부터 예견되어 왔었다. 아무런 저항할 힘도 없는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으로는 부족했다. 미국인들은 보다 확실한 희생양이 필요했다. 미국 스스로도 밝혀내지 못했고, 중동전문가들이 한결같이 의문을 제기하는 데도 불구하고 알 카에다와 후세인의 연계설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이라크 공격을 기정 사실화해왔다. 미국은 유엔 무기사찰이 시작되자마자 군대를 걸프만으로 보내 전쟁을 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유엔 무기사찰단은 이라크가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고, 현재 개발하고 있지도 않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럼에도 이라크를 공격하는 것은 이대로 방치해두면 ‘언젠가’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라면 지구촌의 어느 나라가 미국의 공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물론 단순히 그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2004년 대통령선거를 앞둔 부시 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입지 확보, 중·장기적으로는 이라크 석유를 확보함으로써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가격통제권을 약화하고 명실공히 군사력과 경제를 동시에 장악한 초강대국으로 거듭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벌써부터 미국의 이라크 군정과 석유 판매 대금의 전비 충당 등이 행정부 고위 관리의 입에서 공공연히 흘러나오는 것만 보아도 그 내막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전쟁으로 인한 엄청난 민간인의 희생과 사회간접시설의 초토화, 인류문명의 보고인 메소포타미아 문명 유적지와 박물관의 훼손 문제는 미국에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힘을 가진 자의 논리가 정의라는 냉전시대의 악몽이 미국에 의해 되살아나면서 세계평화에 또다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지구촌 여론이 세계평화를 가장 위협하는 나라로 미국을 꼽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다음 차례는 한반도가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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