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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광장 | 두 편의 ‘라 트라비아타’

한·일 ‘비올레타’ 서울의 만남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한·일 ‘비올레타’ 서울의 만남

한·일  ‘비올레타’  서울의 만남

예술의전당 개관 10주년 기념공연 ‘라 트라비아타’의 주인공인 소프라노 김성은과 테너 김재형 (큰 사진). 실제 궁전을 옮겨놓은 듯 화려한 한국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 무대 모습.

만약 다시 태어날 수 있고, 어떤 직업이나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진다면 기자는 단연코 소프라노 가수가 되겠다. 그리고 무대에서 주세페 베르디가 작곡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비올레타를 반드시 불러보리라. 그 이유가 궁금하신 분은 질문하기 전에 ‘라 트라비아타’를 한번 보시기 바란다. 여자의 눈에도 아름다운, 질투가 날 정도로 매력적인 이 여자에게 빠지지 않고는 못 배길 테니까 말이다.

19세기 파리에서 고급 창부로 지내며 쾌락을 만끽하던 비올레타는 한 파티에서 순수한 귀족 청년 알프레도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알프레도의 아버지 제르몽의 강권으로 “사랑이 식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연인의 곁을 떠나는 비올레타. 그 후 폐병에 걸려 모든 부와 친구들을 다 잃지만 그녀는 다시 만난 알프레도의 품에 안겨 행복하게 세상을 떠난다. 어떤 오페라의 주인공이 이보다 더 멋지고 가련하며 매혹적일 수 있을까. 실제로 뒤마 피스의 소설 ‘춘희’를 원작으로 한 이 오페라는 최근의 영화 ‘물랑 루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연극과 영화에 풍성한 예술적 영감을 제공해주었다.

이 비련의 여인 비올레타가 서울 무대에 연달아 등장했다. 예술의전당이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라 트라비아타’가 3월15일부터 21일까지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데 이어, 한국오페라단이 일본 후지와라 오페라단과 합작 제작한 ‘라 트라비아타’가 3월28일부터 30일까지 같은 무대에서 공연된다. 오페라 팬들의 입장에서는 같은 작품을 통해 국내 최고 수준과 일본 최고 수준의 오페라를 비교 감상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잡은 셈이다.

양국 최고 수준 오페라 맛볼 기회

우선 예술의전당이 제작하는 ‘라 트라비아타’는 주역가수 김성은, 김재형을 비롯한 가수들이 돋보이는 무대다. 김성은은 플라시도 도밍고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이탈리아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를 연상시키는 청초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음성이 비올레타에 적역이다. 김씨와 더블 캐스팅된 불가리아 출신의 다리나 다코바는 영국 로열오페라에서 비올레타로 단골 출연하는 가수.



사실 ‘라 트라비아타’는 유명세에 비해 세계적으로도 공연이 드문 편이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주역인 비올레타 역이 너무도 어렵기 때문. 1막에서는 콜로라투라(coloratura)로, 2막에서는 리릭으로, 3·4막에서는 드라마틱 소프라노로 변화무쌍한 노래를 들려주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1급 창부다운 빼어난 외모와 폐병 환자 같은 창백함까지 갖추어야 하니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실제로 1853년 초연 당시 도저히 폐병 환자라고 믿을 수 없는 뚱뚱한 여가수가 비올레타 역을 맡는 바람에 대실패를 하고 말았다. 비올레타가 죽는 마지막 장면에서 객석은 울음바다 대신 웃음바다로 변했다고.

주역가수와 지휘자, 합창단 등 250여명의 일본 스태프들이 내한하는 한국오페라단의 공연은 다국적인 가수들이 인상적이다. 그리스인인 드미트라 테오도슈와 일본가수 데구치 마사코가 비올레타를, 독일에서 활동중인 한국 테너 박기천과 이치하라 다로가 알프레도로 더블 캐스팅되었다.

한국오페라단의 박기현 단장은 “특히 합창을 비롯한 후지와라 오페라단의 앙상블 수준을 눈여겨보라”고 조언한다. 연기도 앙상블도 실망스러운 한국의 합창단에 비해 일본의 오페라 합창단은 유럽 무대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는 것. 모든 무대장치는 물론 의상, 소품까지 이탈리아에서 제작해 왔다는 점도 특이하다. 일본의 현실상 무대장치 등을 일본 내에서 제작하는 것보다 이탈리아에서 공수해오는 것이 제작비가 덜 든다고. 지휘를 맡은 히로가미 준이치는 “실제 궁전을 연상케 할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장치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두 작품이 1주일의 시차를 두고 연달아 공연된다는 사실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각 오페라단의 입장에서도 관객이 분산되니 좋을 리가 없다. 예술의전당 안호상 예술사업국장은 “한국오페라단에서 2002년 4월경에 공연 사실을 통보해왔지만, 이때 ‘라 트라비아타’라는 공연명을 알리지는 않았다”며 “나중에 한국오페라단의 공연이 ‘라 트라비아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이미 주역인 다리나 다코바, 부천 필, 연출자 등과 협의가 끝난 상태라 작품을 바꿀 수가 없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오페라단 박기현 단장은 “2001년 10월에 이미 예술의전당측에 후지와라 오페라단의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할 것이라고 통보했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예술의전당측에서 ‘2년이나 남은 공연을 뭐 하러 벌써 통보하느냐’고 반문했을 정도예요. 그 후 2002년 상반기에 오페라극장 대관을 신청할 때까지 예술의전당은 자체 공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국내 무대에 올려지는 그랜드 오페라는 한 해에 15편 남짓이다. 또한 제대로 된 그랜드 오페라를 공연할 능력을 갖춘 단체도 한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럼에도 같은 작품끼리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극장이 오페라를 자체 제작하는 외국과는 달리 민간오페라단, 국립오페라단, 극장 등이 제각기 동시다발적으로 오페라를 제작하는 우리의 무질서한 제작 풍토를 탓할 수밖에 없다.







주간동아 377호 (p86~87)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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