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5

2003.03.13

춤추면서 病 잡는다 “얼쑤”

선무치유법·심리 무용치료 등 보완의학으로 각광 … 재활 프로그램·질병 예방에 활용 늘어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03-03-06 13: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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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추면서 病 잡는다 “얼쑤”

    단전호흡, 기공, 명상, 참선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 선무치유법(큰 사진).선무치유법 창시자 이선옥씨.

    춤을 추면서 정신적·신체적 고통까지 다스린다는 ‘춤 치료법’이 최근 주목을 받고 있다.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심신의 장애를 해소하는 예술치료의 영역이 이제 춤의 세계에까지 파고든 것. 무용치료 전문가들은 무용 자체의 표현적인 특성인 무용 동작을 통해 자아를 발견해내고 동시에 자신도 몰랐던 신체의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놀라운 질병 치료 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고 강조한다. 예술적 춤과 의학적 요법이 만나 펼치는 독특한 ‘퓨전 치료’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춤추는 명상, 선무치유법

    맑디맑은 물소리와 청량한 바람소리를 담은 명상음악이 조용하게 흐르는 가운데 선생은 제자들을 ‘워킹 메디테이션(walking meditation)’의 세계로 유도한다. 오른쪽 다리를 한 걸음 앞으로 내민 상태에서 왼팔을 천천히 어깨 위로 들어올렸다 내리는 학생들의 동작들은 마치 학의 군무(群舞)를 보는 듯하다. 이어 왼발과 오른발을 번갈아 들어올리는 동작을 취하는 학생들은 점차 무아의 세계로 빠져드는 듯 얼굴에 환한 빛이 감돈다.

    명상이라 하기엔 동작이 상당히 동적이고, 그렇다고 춤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정적인 예술이라고나 할까. 바로 이 동작이 동양의 선무(禪舞)와 서양의 예술심리치료가 만나 춤을 통해 마음뿐 아니라 몸의 질병까지 다스린다는 ‘선무치유법(Zen-Dance Therapy)’이다.

    국내에 최초로 선무치유법을 선보인 이선옥 박사는 ‘선무 창시자’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통무용가이자 안무가. 현재도 유네스코의 지원 아래 아·태지역 공연예술 네트워크(APPAN) 사무총장직을 맡아 국제 예술활동을 활발히 해오고 있는 이박사지만 정작 주된 관심 영역은 ‘테러피(치료)로서의 예술’이다.



    춤추면서 病 잡는다 “얼쑤”

    무용 동작을 통해 자아를 발견할 수 있다는 심리 무용치료법.

    “미국 뉴욕대에서 공부하는 동안 창작으로서의 예술뿐만 아니라 테러피로서의 예술의 성공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됐어요. 선무라는 주제로 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무용치료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진 끝에 마침내 선무치유법을 탄생시킬 수 있었죠.”

    이박사는 선무치유법이 몸속에 정체돼 있는 기(氣)나 스트레스를 ‘춤추는 명상’으로 해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춤사위와는 개념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또 지나치게 정적인 기공명상 등과는 달리 춤 동작이 어느 정도 가미됨으로써 일반인도 음악에 맞춰 즐겁게 따라할 수 있는 장점도 갖추었다는 것.

    “선무치유법은 사실 단전호흡, 기공, 명상, 선의 요소를 다 포함하고 있어요. 단회항(하단전·회음부·항문) 세 곳을 단련하면서 자연스럽게 단전호흡이 이뤄지도록 유도하는 선무요법은 동작 하나 하나가 유연성을 길러주고 근육을 강화시켜주며, 또한 척추와 골반을 바로잡는 효과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큰 효과는 잠재된 내면의 생각을 동작으로 자유롭게 표현함으로써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는 거예요. 선무에는 특별한 동작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내면의 의식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다양한 형태의 동작을 순수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지요.”

    춤추면서 病 잡는다 “얼쑤”
    이박사가 거침없이 토해내는 선무치유법 예찬론이다. 실제로 선무공연단의 무용수 조정아씨(25)는 “창작춤을 출 때와 달리 선무치유법 동작을 할 때는 5분만 자세를 취해도 피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땀이 나와 춤을 추고 나면 심신이 날아갈 듯 상쾌하다”고 말했다. 선무치유법을 배우는 다른 단원들 역시 비슷한 효과를 봤다고 한다. 그 또래의 무용수들은 대개 무리한 춤동작으로 인한 관절질환과 불규칙한 식생활 습관으로 변비 증세에 시달리는데 선무테러피를 하고 나서 더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는 것.

    최근 들어서는 선무테러피 같은 ‘무용치료’가 의료 일선에서 기존의 의학적 치료체계를 도와주는 보완의학으로도 채택돼 각광을 받는 추세다. 아주대병원의 경우 유방암이나 자궁암 수술 후 환자의 통증을 완화해주는 재활 프로그램으로 선무치유요법이 인기를 끌고 있고, 포천중문의대 차병원에서는 출산 전후 여성들을 위한 선무명상요법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주로 산후 여성들의 우울증, 요실금 치료 등에서 효과가 있다고 한다.

    현재 이선옥 박사는 포천중문의대 보건대학원 예술치료학과에서 대학원생들을 상대로 선무치료사를 양성하기 위한 강의를 하고 있다.

    자아와의 만남, 심리 무용치료

    “무용치료를 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 몸을 느끼기’ 시작했다. 무용을 하면서 몸에 대해 잘 안다고 자만했던 내가 어찌나 무지하게 생각되던지. 매시간마다 내 몸 구석구석을 느낄 수 있었고, 내 몸이 말하는 것을 듣는 시간에는 그동안 너무 많이 신경 쓰이고 아팠던 위장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가끔씩 불편했던 허리도 이제 안 아프다.”(무용치료 초급 과정을 마친 20대 무용과 여대생)

    “두 사람이 한 조가 돼 한 사람이 눈을 감고 자세를 인도하고, 또 역할을 바꿔보면서 나의 모습을 보니 나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 같아 너무나 기가 막혔다. 나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당연히 타인에게도 신뢰가 없는 것이 아닌가. 나는 타인의 공감을 인정해주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엉엉 울었다. 그때부터 한 달 반 동안은 나에 대한 혼란 속에 묻혀 살았고, 어느 때부턴가 나는 더 깊이 나를 볼 수 있게 되었고 타인에게 행복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싹텄다.”(무용치료사를 지망하는 30대 간호사)

    한국무용치료학회(회장 류분순)에서 무용치료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여성들의 체험담이다. 학회장인 류분순 교수(서울여대 특수치료전문대학원)는 “무용치료는 몸의 동작을 통해 정신과 육체를 활성화하는 효과가 크다”면서 “특히 내적, 심리적 고통을 안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몸짓은 언어나 다른 어떠한 표현 양태보다 자기 자신을 정직하게 드러내 보인다는 특성이 있어요. 몸이 말하는 것을 자세히 듣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진실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것이 무언지를 느끼게 되고 내 안의 창의성이 어떤지를 확인하게 되는 등 자기발견에 엄청난 도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류교수는 무용치료의 이 같은 특성 때문에 행동 자체가 타인과의 주요 소통수단이 되는 자폐아 등 소아·유년기 정신과 환자, 언어를 통한 대화가 힘든 정신지체아, 인격에 깊은 상처를 입은 성폭력 피해 여성 등에게 삶에 대한 자신감을 키워주는 방편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 무용치료는 서울국립정신병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이뤄지며, 경기 가평 꽃동네 정신병동과 일부 신경정신과 의원 등에서 전문 무용치료사의 주도로 시행되고 있는데 환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울국립정신병원 입원 환자 28명을 대상으로 무용치료를 12주간 실시한 결과 환자들의 정신불안이 줄고 대인관계가 개선되어 사회적응 능력이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현재 무용치료와 관련해서는 대학 무용학과를 중심으로 무용요법 혹은 무용심리학이라는 교과목이 개설돼 있으며, 전문 무용치료사를 양성할 목적으로 서울여대 표현예술치료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 과정을 마련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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