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5

2003.03.13

‘가문의 영광’ 장관은 아무나 하나

국민생활 좌우할 정책 결정 ‘막중한 자리’ … “소신껏 일할 수 있는 기회 줘야 정책 성공”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3-03-05 17: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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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문의 영광’ 장관은  아무나 하나

    노무현 대통령(오른쪽에서 세 번째)이 2월27일 오후 새 정부 첫 각료 인선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고건 총리, 문희상 비서실장, 신임 장관들과 함께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으로 걸어가고 있다.

    1998년 12월21일 남궁석 당시 삼성SDS 사장(현 민주당 의원)이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 장관에 임명됐다. 임명장을 받은 뒤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청와대로 갔다. 남궁의원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김 전 대통령과의 독대 장면을 이렇게 전했다.

    “대통령이 내게 다짜고짜 ‘장관, 앞으로 우리가 뭘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나는 ‘노 타임’으로 ‘대통령님, 저희들에겐 인포메이션 슈퍼하이웨이밖에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이어서 나는 기업가 시절부터 꿈꿔왔던 ‘사이버코리아’ 프로그램을 설명해드렸다. 대통령은 ‘장관 뜻대로 한번 해보세요’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한국정부는 초고속 인터넷통신망을 전국적으로 보급하는 정책에 박차를 가하게 된 것이다.”

    남궁의원은 “98년 말 180만 가구였던 초고속 인터넷 가입가구는 2002년 1000만 가구를 돌파했다. 우리는 불과 2년여 만에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인터넷 인프라를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파격적 첫 내각이 출범하면서 ‘장관이라는 자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머릿속으로만 정리해두었던 ‘꿈’과 ‘비전’을 실현해 한 나라를 자신의 뜻대로 바꿔놓는 자리. 남궁의원이 정의 내린 장관직이다.

    “임명 땐 기쁘고 물러날 땐 아쉽고 또 하고 싶은 자리”



    남궁장관이 임명장을 들고 정통부 청사로 처음 들어설 때 우연히 마주친 사람은 다름아닌 퇴임사를 끝내고 막 떠나는 배순훈 전 정통부 장관이었다. 대우그룹 출신 배 전 장관이 5일 전 자신의 강연이 “빅딜은 잘못됐다”는 식으로 보도되는 바람에 중도 하차하게 된 것. 배 전 장관에게 장관직은 사소한 말 한마디로 허무하게 스러지는 ‘파리목숨’ 같은 것이었다.

    장관에 임명된다는 것은 개인에게 어떤 의미일까. 허성관 신임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 장관(부산 동아대 교수 출신)은 장관 내정설이 나오자 “내가 정말 되는 거냐”고 되묻기도 했다. 2월28일 해수부 장관실을 찾은 기자에게 허장관은 “막상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으로부터 ‘해수부 장관에 임명됐습니다. 쭛시까지 쭛쭛지점으로 나오세요’라는 짤막하고 사무적인 전화통보를 받은 뒤로 지금까지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허성관씨의 신분이 장관으로 바뀌면서 갖게 되는 ‘계량적 권력’은 대학교수 시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는 우선 7900여만원의 연봉과 기사 딸린 ‘체어맨’ 승용차를 제공받는다. 단, 사저는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36평 부산 아파트를 떠나 서울 연희동의 12평 아들 자취방에서 당분간 기거할 예정이다. 허장관은 서울 충정로 해수부 본청, 지방 11개 도시의 해양수산청, 국립수산과학원 중앙해양안전심판원 등 5개 직속기관 산하 3800여 공무원들을 지휘하고, 연간 2조7000억원의 예산을 집행할 권한을 갖는다. 그는 또한 수협중앙회, 한국컨테이너부두공단, 한국해운조합 등 10여개 유관기관의 기관장에 대해서도 직·간접적으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보물선 인양’ 등 다양한 해양 관련 민간사업에 대한 인허가권도 갖게 된다. 또한 대통령의 국가적 주요 정책결정에 직접 참여하는 국무위원의 자격도 주어진다.

    장관직은 임명직으로선 개인에게 최고의 영예다. ‘장관자리 기웃거리는 일’을 경멸해온 이어령씨. 그도 노태우 정부 첫 내각의 문화부 장관 자리를 제의받자 “마음에 잔물결이 일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집에 찾아온 홍성철 대통령비서실장이 “수락한 것으로 알고 가겠다”고 일어설 때도 “안 하겠다”는 말을 끝내 하지 못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장관이 되고 싶어하지 않는 의원은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은 사석에서는 주로 ‘윤장관님’으로 불린다. 한번 장관을 하면 퇴임 이후에도 그 영예는 계속 이어진다. 그래서 DJ정부 때 안동수 신임 법무장관은 “태산 같은 성은에 감사드린다”고 ‘오버’했고, 2001년 2월 한명숙 여성부 장관의 취임축하연장은 한장관과 여성단체 간부들의 ‘감격의 눈물’로 눈물바다가 됐다. “임명되면 대단히 기쁘고, 물러나면 무척 아쉽고, 한번 해본 뒤엔 다시 한번 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자리가 바로 장관자리다.” 장관 출신 한나라당 한 의원의 말이다.

    ‘가문의 영광’ 장관은  아무나 하나

    2월28일 저녁 서울 해양수산부 청사에서 허성관 신임 장관(가운데)이 간부들과 도시락을 먹으면서 첫 업무보고를 받고 있다.

    영어권 국가에서 장관은 심부름꾼을 뜻하는 ‘미니스터(Minister)’, 비서를 의미하는 ‘세크러테리(Secretary)’로 불린다. 반면 한국에서 ‘장관(長官)’이라는 어휘는 ‘국민에 대한 봉사’의 이미지보다는 ‘권력’과 ‘군림’의 이미지가 더 강하다. 그러나 군림하는 장관은 권력에는 봉사하는 경향이 있다. 장관자리가 정권을 쟁취한 권력 이너서클의 ‘논공행상’ 도구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자리는 한정되어 있는데 챙겨주어야 할 사람은 많다 보니 장관이 임기 수개월의 ‘1회용 소모품’ 취급을 받기도 했다. ‘장관의 정치화’는 장관 값을 떨어뜨렸고, ‘잘리지’ 않기 위해 눈치보는 장관을 양산했다는 평도 나왔다.

    두 차례의 휘발유 값 인하를 유도한 DJ정부의 정덕구 전 산업자원부 장관은 정유회사 사장단 군기 잡기에 나선 직후 경질됐다. 전윤철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사석에서 “이완용이란 욕을 먹더라도 구조개혁은 꼭 하겠다”고 비장하게 말했다. 장관의 권력은 막강한 듯 보여도 실제로는 여기저기 부딪히는 데가 많아 소신껏 하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허성관 해수부 장관은 “장관의 결정은 국민생활의 구석구석에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실제로 DJ정권에서 의약분업, 신 한일어업협정, 공적자금 조성, 벤처 지원, 교원정년 단축, 주5일 근무제 도입 등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준 정책 뒤엔 해당 장관들의 ‘결단’이 있었다. 이중 몇몇은 실패로 낙인 찍혔고 몇몇은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장관들 사이에서 가장 나쁜 장관은 아무 결단도 못하는 장관으로 통한다.

    남궁석 의원은 장관 시절 “임기 2년만 보장해주면 기업이 정부를 배우러 오도록 정말 잘해낼 자신이 있다”고 장담했다. 남궁의원은 기자에게 “장관이 소신껏 일하도록 해주면 새로운 정책도 많이 나오고, 정책이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장관의 2년 임기 보장을 약속했다. 노무현 정부의 장관들이 성공한 장관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낼지 관심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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