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5

2003.03.13

“충격…당혹… 어쩌란 말이냐”

대통령 직속 장관급 정부혁신위 곧 출범 … 개혁 대상인 동시에 개혁주체 관가 ‘잔뜩 긴장’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03-05 16: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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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당혹… 어쩌란 말이냐”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가운데 노무현 정부의 관료개혁이 시작됐다. 2월27일 고건 국무총리 취임식장에 모인 관료들.

    노무현 대통령이 파격적인 장관 인선을 단행한 뒤 관가에서는 관료개혁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가운데 ‘참여정부’의 행정개혁을 실질적으로 추진할 기구가 곧 출범할 예정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될 정부혁신위원회(가칭·이하 혁신위)가 바로 그것이다.

    혁신위가 맡을 임무는 모든 부처·청(산하기관 포함)의 기능 재조정, 지방분권, 인사개혁, 관료들의 일하는 방법과 관행까지 바꾸는 시스템 개혁, 재정·예산 개혁, 세정·세제 개혁, 전자정부화 등이다. 한마디로 정부개혁의 큰 틀이 여기에 다 담기게 되는 셈이다. 혁신위는 관료들의 업무 프로세스(과정) 전반에 일대 혁신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혁신위 위원장은 장관급이지만 그 역할은 훨씬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21세기 새로운 패러다임에 따라 정부 조직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 측면에서 전면 개편하는 방안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노대통령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회의에서 “혁신위 위원장의 자리는 장관 2, 3명을 합친 것보다 더 중요한 자리가 될 것”이라며 위원장의 자리에 무게를 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 정부 때의 혁신위는 기획예산처에 소속된 자문기구였지만 새 정부의 혁신위는 격이 한층 높아지는 셈이다. 그만큼 노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노대통령은 평소 개혁과 관련해서는 자신이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비쳐왔는데 혁신위 위원장은 이런 노대통령의 ‘개혁 대리인’ 역할을 맡을 전망이다.

    혁신위의 집행을 맡는 손발 기능은 행정자치부(이하 행자부)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대통령은 2월28일 첫 내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정부개혁은 정부개혁위원회를 만들어 행자부의 뒷받침을 받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개혁위원회가 바로 혁신위다. 혁신위 주요 과제의 상당 부분이 행자부의 업무 영역이기 때문. 행자부는 이를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내부적으로 집중 연구를 해오고 있다. 그러나 재정 세제 등 각 영역별로 직접 관련이 있는 부처도 일을 받아 추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의 한 측근은 “출범 시기와 위원장, 비서진 인선 등은 아직 대통령의 재가를 받지 않았지만 2, 3주 뒤 관련사항들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청와대 정책실장실에서는 혁신위를 띄우기 위한 실무작업을 진행중이고, 개혁과 관련된 다양한 위원회들을 정비하고 관련 법령을 마련한 다음 국무회의 의결을 거치는 과정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충격…당혹… 어쩌란 말이냐”
    개혁의 큰 틀을 담당할 혁신위는 아직 출범 전이지만 관료사회는 조금씩 변화의 바람을 맞고 있다. 특히 이번 인사에서 화제를 모았던 김두관 행자부 장관, 강금실 법무부 장관, 윤영관 외교통상부(이하 외교부) 장관뿐 아니라 대부분의 장관들이 능력 위주의 인사개혁과 조직개편 의지를 밝히고 있기 때문.

    행자부의 한 관리는 “차관 인사에 이어 새 장관의 부처 내부 인사는 관가에 한바탕 회오리바람을 불러올 것”이라며 “서열이 중시되는 관료사회여서 장관보다 나이가 많은 고급 관료들이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게 요즘 상황”이라고 전했다.

    물론 부처별로 상황은 다르다. 김두관 행자부 장관은 2월28일 기자회견에서 “중앙 정부의 권한과 예산을 지방정부에 대폭 이양하는 등 시대적 과제인 지방분권을 추진하겠다”며 “행자부는 ‘자치행정지원부’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행자부에서는 조만간 지방분권을 추진하기 위한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하는 등 조직과 인사 개편이 뒤따를 전망이다.

    행자부의 한 국장은 “신임 장관이 지방자치의 영웅이기 때문에 중앙이나 지방 모두에서 커다란 변화가 기대된다”면서도 “처음 의도와 달리 개혁에 대해 관료와 국민의 관심이 식으면 피로감만 깊어가고 흐지부지되고 마는 사례가 많았던 만큼 이번에는 제대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강금실 장관을 맞이한 법무부도 술렁이기는 마찬가지. 법무부의 한 검사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며 “새로운 피가 필요하다는 데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지만 신임 장관이 법무부 조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충분히 공부하지 않으면 잘못된 관행들을 고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강장관이 ‘법무부의 문민화’ 운운하면서 검사들을 권위주의적이라고 몰아붙인 것과 인사에서 연공서열을 가리지 않겠다고 한 것을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고 전했다.

    외교부 안에서는 부의 특성상 연공서열을 무조건 폐기돼야 할 관례로 몰아붙여서는 곤란하다는 견해도 적지 않다. 외교부의 한 관리는 “외교부는 다른 부처보다 진급이 느린 반면 60세 이후까지도 관직에 머무는 이들이 많다”며 “‘경력 10년은 돼야 국제회의에서 받아쓰기가 가능하고, 20년은 돼야 토론이 가능하며, 30년이 돼야 의장으로 회의 주재가 가능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렇게 한 단계씩 실력을 쌓아간 이들이 무시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폐쇄적이라는 비난을 받았던 외교부의 조직문화도 변화가 예상된다. 윤영관 장관은 취임사에서 “외교통상부 직원들은 엘리트주의에 젖어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고, 조직 내부적으로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경우가 있다는 지적도 듣고 있다”며 외교 분야에서도 일반 국민들의 이해와 지지가 필요한 시대를 맞아 협조적이고 봉사하는 자세를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이었던 김영진 의원을 새 장관으로 맞이한 농림부에서는 김장관이 이전 농림부의 각종 정책에 반대 입장을 펴왔다는 점을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 농림부의 한 서기관은 “한-칠레자유무역협정 등에 반대해왔던 새 장관이 책임지는 자리에 앉게 된 이상 앞으로 어떤 입장에 설지 주목된다”며 “새 장관이 오면 성향에 따라 인사와 조직 등에서 갑자기 많은 변화가 생기는데 행정의 지속성을 해칠 우려가 있는 이런 행태는 지양돼야 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알려진 관료개혁의 내용은 사실 지극히 추상적이다. 노대통령은 조각 발표 때 “관료가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한다”고 말했고, 3·1절 기념사에서도 “무엇보다 정치와 행정이 바뀌어야 한다. 특히 권력기관은 국민을 위한 기관으로 거듭나야 하며 참여정부는 더 이상 권력기관에 의존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진 농림부 장관도 취임사에서 “개혁의 대상으로 밀려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각오로 개혁의 주체로 힘차게 나아갈 것인가”라며 관료들에게 개혁의 선봉장이 돼줄 것을 주문했다.

    그러나 개혁의 실체를 모르는 관료들은 어떻게 변하라는 소리인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문화관광부의 한 서기관은 “무엇을 어떻게 개혁하자는 것인지 몰라 막연히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고 말했다. 새 정부가 개혁의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개혁 추진기구인 혁신위 등을 왜 새 정부의 시작과 함께 출범시키지 않은 것일까.

    이에 대해 노대통령의 개혁 자문을 맡은 한 인사는 “과거에는 인수위 때 개혁의 내용을 정하고 새 정부 출범과 더불어 서둘러 기구개편 등을 단행했지만 실제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노대통령은 강압적이고 하향적인 개혁은 실용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개혁을 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즉 “관료사회가 불안감을 느끼게 하기보다는 개혁의 동력이 되어 자율적이고 분권적이며 창의적인 개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뜻”이라는 게 그의 설명.

    노무현 정부가 인기에 영합해 가시적인 성과를 추구하기보다는 질적인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은 높이 평가될 부분이다. 때맞춰 행정학계에서는 미국 신행정학의 영향인 ‘작고 효율적인 정부, 경영 마인드의 정부’ 방향을 무조건 추종할 게 아니라 우리 실정에 맞는 정부조직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자성이 일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관료가 개혁의 주체로 선다는 것이 과연 어느 정도 가능할까. 개혁의 총체적인 비전을 담은 전략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에서 전술을 담당할 관료들에게 개혁의 주체로 나설 것을 요구하는 것은 자칫 수사에 그칠 우려가 있다. 농림부의 한 관리는 “개혁의 정책 방향은 청와대에서 잡아주는 것이고 관리들은 그 방향에 따라 정책을 실현해내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김영호 경북대 교수도 “개혁의 핵심이 관료들의 권한을 축소하는 것이자 시장에 맡기는 것이 될 텐데 기득권을 포기하기 어려운 관료에게 개혁의 주체가 되라는 게 말이 되느냐”고 지적했다. 김교수가 이처럼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자신이 장관 재직시에 경험한 관료들의 행태 때문. 그는 관료에 대해 “비전과 전략은 거의 없고 순발력과 요령만 뛰어나다”고 혹평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그런 관료들에게 개혁의 주체가 되라는 것은 마치 지주 주도형 토지개혁을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관료사회에 대한 불신은 이처럼 뿌리깊다. 따라서 대통령 직속의 혁신위는 불신을 ‘믿음’으로 바꾸기 위해 관료들의 재교육에 상당한 비중을 둘 계획이다. 혁신위 위원장 후보 물망에 오른 한 인사는 “일반 회사에서도 관리부 직원을 영업부로 보낼 때는 재교육을 시킨다”며 “규제 기능을 담당하는 데 익숙한 공무원들에게 대국민 서비스를 강화토록 하려면 철저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공무원 재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관료사회 내부에서도 이처럼 관료들의 의식과 문화, 행태 등 소프트웨어를 바꾸는 것이 개혁의 급선무라는 자성이 일고 있다. 행자부 김영호 행정관리국장은 “개혁에 성공하려면 우선 공무원이 움직여야 한다”며 “이 무디고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개혁의 동인으로 삼으려면 상향식 개혁보다는 현장의 목소리와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개혁의 걸림돌들을 제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두관 장관도 “권위적인 자세를 버리고 국민과 자치단체에 봉사하는 재미를 느끼면서 즐겁게 출퇴근하는 조직을 만들겠다”며 의식의 전환을 촉구했다.

    그러나 관료개혁은 관료들만의 몫은 아니다. 공무원들을 바라보는 일반 국민의 시선도 ‘개혁’돼야 하지 않을까. 서영복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처장은 “공무원들에게 무조건 기득권을 포기하고 개혁에 동참하라고 요구할 경우 자칫 사기저하와 저항을 초래할 수 있다”며 “시민과 언론, 관이 서로 신뢰하고 상호 존중하는 의식을 길러야만 관료개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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