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2003.01.23

“망가진 손, 새것으로 갈아끼우지 뭐”

피부·연골 등 재생의료 급진전 10년 내 현실화 예상 … 장기 분야도 활발한 연구

  • 허두영/ 한국과학문화재단 전문위원 huhh20@hanmail.net

    입력2003-01-15 15: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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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가진 손, 새것으로 갈아끼우지 뭐”

    이르면 2010년 내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피부나 손상된 신경, 장기 등도 재생이 가능해질 것으로보인다.

    도마뱀이 위기의 순간에 스스로 꼬리를 잘라 위기를 모면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온몸이 미끄러운 비늘로 덮여 있고 보호색으로 위장할 수 있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 되었는지 오랜 세월에 걸쳐 꼬리를 잘라내는 형질을 발달시킨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 곳이나 자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도마뱀 꼬리 중에서도 잘리는 부분이 정해져 있다. 그 잘린 부분은 스스로 출혈을 막고 상처를 회복시키고, 새로운 세포를 생성해 불과 며칠 만에 다시 꼬리를 재생시킨다. 잘린 부분에 잘려나간 꼬리에 대한 유전정보가 저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생물은 이처럼 몸의 일부가 손상될 경우 그 부분의 조직이나 기관을 다시 만들어 원래 상태로 복구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런 복구과정을 ‘재생(Regeneration)’이라고 하는데 재생능력이 강한 동물로는 도마뱀 외에도 도롱뇽, 지렁이, 불가사리, 히드라, 플라나리아 등을 들 수 있다.

    사람에게도 이런 재생능력이 있다. 살갗에 난 상처가 아물고, 뼈가 부러졌을 때 제대로 접합하면 원래 상태로 복구되는 게 재생의 결과다. 간을 이식하면 간세포가 증식하여 원래의 기능을 되찾기도 하고, 적혈구 같은 혈액계 세포나 위장 점막도 재생능력을 보인다. 그러나 얼굴을 비롯하여 손이나 발의 일부에 심각한 손상을 입거나 내장이 심하게 망가지면 도저히 재생할 수 없다. 만약 사람이 도마뱀 수준의 재생능력만 갖출 수 있다면 의료 분야에서 ‘신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최근 이 ‘신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재생 기술 연구가 일본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인체 중 재생의료 개발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관은 피부, 연골과 뼈, 그리고 장기 순. 아직까지는 피부 재생 기술에 대한 연구가 가장 활발하다.

    ‘장기배양표피’ 임상실험 착수



    “망가진 손, 새것으로 갈아끼우지 뭐”

    피부 재생 기술을 연구하는 모습.

    일본의 유명한 콘택트렌즈 제조회사인 ‘메니콘’은 환자 자신의 세포를 이용해 피부를 재생하는 기술을 개발, 지난해 임상실험에 착수했다. 이 ‘자가배양표피’는 화상을 입은 환자에게서 건강한 표피세포를 1cm2 정도 떼내어 ‘탄산가스 인큐베이터’라는 배양장치에서 육성한 것. 한 달 정도 배양하면 500cm2 정도의 표피를 50장, 두 달간 배양하면 350장 정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렇게 배양된 표피를 무덤에 떼를 입히듯, 손상된 부위에 입혀서 피부를 건강하게 재생시킬 수 있다. 메니콘은 지난해 인큐베이터 14대를 갖추고 배양표피를 대량생산하는 ‘바이오센터’를 완공했다. 인큐베이터를 차츰 늘려 완전 가동시키면 표피를 매달 5000장까지 생산할 수 있다. 이 회사는 올해 임상실험을 거쳐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양표피 사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메니콘은 또 자가배양표피 외에 다른 사람의 진피세포를 소재로 하는 ‘동종배양진피’ 사업과 각막 재생 같은 재생의료 사업을 현재의 콘택트렌즈에 이은 차세대 사업으로 정해 집중 투자할 계획이다. 각막 및 망막 재생 기술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서는 정부 차원에서 실명자나 중증 시력장애자를 위한 복지의료 정책으로 지난해부터 10년간 수십억 엔을 투자하는 국가적인 과제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쿄대학의 아사시마 마코토 교수는 최근 개구리의 배아를 이용해 개구리의 시력을 재생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시험관에서 줄기세포를 배양시켜 개구리의 눈세포를 생성한 뒤 그 눈을 시력을 잃은 올챙이에 이식하여 시력을 되찾게 하는 데 성공했다. 시력을 잃은 올챙이 60마리에 눈을 이식하여 70% 정도가 시력을 되찾게 만든 것. 아사시마 교수는 앞으로 쥐를 대상으로 연구를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나 아사시마 교수에 따르면 아직까지는 개구리 기관의 재생을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한다는 것은 무리다.

    일본의 스미토모 전기공업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발모세포를 만드는, EPM이라는 물질을 개발했다. 기존의 발모제는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거나 두피의 환경을 개선하여 머리카락이 잘 자라도록 하는 간접자극 방식을 썼다. 발모제라기보다는 육모제(育毛劑)에 가까웠던 것. 그런데 활동을 중지한 발모세포에 EPM을 발라주면 새로운 발모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 확인됐다. 쥐에게 매일 한 차례씩 한 달 남짓 EPM을 바른 결과 면적당 5%에 불과했던 털이 90% 이상으로 늘어났다. 스미토모측은 동물실험을 통해 이미 안전성을 확인했으며 앞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거친 뒤, 제약회사나 화장품회사와 제휴해 2010년께 EPM을 이용한 발모제를 시판할 예정이다.

    재생의료의 제2세대인 연골과 뼈도 그 재생 가능성이 서서히 커지고 있다. 일본 도쿄대 의과학연구소는 최근 태반의 특수한 세포를 뼈나 신경세포로 배양해 성장시키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태반에서 태아에게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하고 이산화탄소나 노폐물을 배출하는 줄기세포에 약제를 투여하여 신경세포로 성장하는 과정을 촉진시켰으며, 같은 방법으로 줄기세포를 배양한 결과 뼈를 구성하는 칼슘 성분이 증가한 것을 밝혀냈다. 이 연구는 폐기되는 태반을 이용하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가 없는 데다 백혈구 형태가 일치하면 누구에게나 제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에 따라 앞으로 파킨슨병이나 골종양처럼 뇌신경세포가 손상되는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으며, 골다공증 등 뼈 관련 질병도 정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와 함께 치료용으로 다양한 세포조직을 제공하는 ‘재생의료 은행’의 가능성도 엿보인다.

    제3세대 재생의료의 대상인 장기 분야의 연구도 활발하다. 미국 하버드 대학 하워드휴즈 의학연구소의 마크 키팅 박사는 최근 관상용 열대어인 제브라피시의 심장근육을 재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제브라피시는 조직발생 연구대상으로 널리 이용되어왔는데, 지느러미, 망막, 척수 등의 재생에 이어 이번에 심장도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확인한 것이다.

    인간복제 논란도 종지부 찍을 듯

    “망가진 손, 새것으로 갈아끼우지 뭐”

    재생능력이 뛰어난 도마뱀(위).개구리 줄기세포를 이용해 올챙이의 시력을 회복시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아래).

    “제브라피시 10마리의 심장을 5분의 1만 남기고 모두 잘라낸 뒤, 물 속에 넣었는데 8마리가 살아남았다. 이들 물고기는 처음에는 움직이지 못하다가 열흘이 지나자 보통 물고기처럼 활발하게 헤엄치기 시작했고 두 달이 지나자 새로운 심근세포가 자라나 심장이 완전히 재생됐다. 두 달 만에 심장은 본래의 크기와 모양과 박동을 되찾은 것이다.” 키팅 박사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제브라피시의 심근세포를 재생시킨 유전자를 찾아내어 재생 과정을 연구하면 심장 재생의 비밀을 풀 수 있게 되어 심장마비 등 심장과 관련된 많은 질병에 대처할 수 있게 된다. 키팅 박사는 “제브라피시처럼 세포증식이 빠르게 일어나 상처를 보호하고 조직을 재생할 수 있게 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다면 심장근육 재생도 가능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재생의료 분야의 개가가 잇따르면서 제1세대인 피부 분야는 2005년께, 제2세대인 연골과 뼈는 2007년께, 신경은 2010년께 실용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10년이 지나 제3세대로 꼽히는 각종 장기까지 재생할 수 있게 되면 지금처럼 장기 기증운동을 벌일 필요가 없어질 것이다. 또 불멸의 생명을 추구하기 위해 굳이 자신의 복제인간을 만들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고장나거나 망가진 자동차를 수리하듯 손, 발, 피부, 근육, 신경, 눈, 뼈, 심장, 내장, 두뇌 등등 문제 있는 부위별로 준비된 재생의료 소재나 부품을 구입해 갈아 끼우면 큰 불편 없이 생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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