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9

2003.01.23

“유언장 쓰면 인생이 확 바뀌죠”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3-01-15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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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언장 쓰면 인생이 확 바뀌죠”
    ‘유언장 은행’.

    소규모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이성희씨(41)가 1월3일 개설한 유언장닷컴(www. yoounjang.com)을 주변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이 사이트를 방문한 사람은 자신의 유언은 물론 재산목록과 채권 채무 관계 등 자신의 사후에 대비한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언 내용을 열람할 수 있는 사람도 철저하게 제한할 수 있다. 열람자를 아내, 아들, 딸 등 3명으로 제한했다면 세 사람 모두 동의해야만 유언 당사자가 남긴 글을 확인할 수 있는 방식이다.

    뿐만 아니라 유언 사이트 운영자인 이씨조차도 회원들의 유언을 함부로 열어볼 수 없도록 보안장치도 마련해놓고 있다. 또 유언장닷컴에 접속한 회원들은 자신이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났을 경우 죽음을 알릴 수 있는 연락처도 적어놓을 수 있다. 이쯤 되면 이 유언장 사이트 앞에서 한순간 경건해지지 않을 네티즌은 없어 보인다.

    사이트 개설 1주일이 갓 지났지만 지금까지 방문자는 1만1000명을 훌쩍 넘겼고 회비 2만2000원을 내고 유언을 남기겠다고 신청한 유료회원만도 100명을 넘어섰다.

    이씨는 IMF 직후부터 노숙자들을 위해 쉼터를 운영한 경력이 있다. 이 ‘IMF 쉼터’가 도화선이 돼 전국적으로 실직자 재취업운동이 불붙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여기서 만났던 사람들 중에는 실직의 아픔으로 죽음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는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었다. 이들을 지켜보던 이씨는 당시 온통 백지로 된 책을 한 권 출간했다. 책 제목은 ‘만약 내 삶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면’이었다.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자신의 유언을 적어보라는 취지에서 낸 책이었다. 이 특별한 ‘백지도서’는 IMF 직후 ‘흉흉한’ 사회 분위기를 타고 꽤 많이 팔려나갔을 뿐 아니라 유언장닷컴의 모태가 됐다. ‘백지도서’가 오프라인 유언장이라면 유언장닷컴은 온라인 유언장인 셈이다.



    유언장 사업을 시작할 정도라면 이씨 자신의 삶도 순탄했을 것 같지만은 않아 보인다. 상고 출신의 이씨는 서점 점원, 호프집 종업원, 주방보조, 요정 지배인까지 안 거쳐본 직업이 없었다. IMF 전인 97년에는 2억7000만원 규모의 부도를 내고 주저앉았던 적도 있었다. 한때 소주 6병까지 마시던 ‘술꾼’이었다. 그러나 10년 전 기독교를 접하게 된 뒤로부터는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있다. 지금은 하나로시스템이라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씨의 삶 자체가 어느 곳 하나 굴곡지지 않은 곳이 없는 셈이다. 이씨는 “자신의 유언을 적어 내려가면서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고 주변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바로 나의 보람”이라고 말했다.



    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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