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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의학 꿈 좌절 기가 막혀

‘태양인 이제마’ 원저자 최형주 박사 … 국내 최초 ‘사상한방병원’ 건립 무산 법정싸움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사상의학 꿈 좌절 기가 막혀

사상의학 꿈 좌절 기가 막혀

국내 최초 사상한방병원 건립을 계획했던 최형주 박사. 새마을운동중앙회와의 다툼으로 그 꿈은 좌절됐다.

최근 종영된 인기 TV드라마 ‘태양인 이제마’의 원저자 최형주 박사(62·명성한의원). 3대에 걸쳐 사상의학에 기초한 체질 치료를 고집해온 가문 출신답게 동무(東武) 이제마 선생의 생애와 사상에 관한 연구에 한평생을 바친 그는 ‘살아 있는 이제마’로 통한다.

실제 최박사의 조부는 구한말 혜민원에서 의관을 지내고 전북 남원으로 내려가 ‘수산원’을 열고 무료 진료를 베풀었다. 수산원은 드라마의 배경이 된 곳이다. 그의 조부는 운명하는 순간에도 손자인 그에게 “사상의학이야말로 의학의 완성이니 더욱 발전시키라”는 유언을 남겼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경험 처방과 동무 선생이 남긴 유고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는 사상의학의 체계를 공고히 해왔다. 물론 기성 한의학계의 반발과 비난이 뒤따랐지만 그는 ‘100년 후 온 세상은 사상의학으로 귀일(歸一)할 것’이라는 동무 선생의 예언을 믿고 실천했다. 특히 가난하고 헐벗은 민초들을 무료 진료했던 동무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 그 자신도 무료 진료에 발벗고 나서 수많은 환자들의 건강을 되찾아주었다.

새마을연수원 임대 수의계약

음지에서 조용히 선행을 펼치던 최박사는 동무 선생 서거 100주년이었던 지난해, 선생의 일대기를 그린 ‘예언’이라는 전기서를 출간하면서 갑자기 화제의 인물이 됐다. ‘예언’이 드라마 ‘태양인 이제마’의 원저인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약 ‘유명세’를 탄 것.

하지만 그는 이 유명세 때문에 오히려 한의원 문을 닫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 IMF 경제위기가 닥치던 1997년 그가 ‘사상한방병원’ 건립을 추진하면서 빌렸던 28억원에 대한 채권자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기 때문. 채권자들은 최박사가 유명인이 되면서 한의원 경영으로 돈을 많이 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제 그는 현재 운영중인 한의원조차 경매에 부쳐지고, 신용불량자로 올라 카드 거래조차 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도대체 최박사가 건립하려던 사상한방병원은 어떤 병원이며, 왜 병원 건립이 무산됐을까. 국내 최초의 사상의학 전문 의료기관을 표방했던 ‘사상한방병원’은 도시 빈민이나 농어촌 노인들에 대한 진료를 목표로 한 양·한방 협진병원으로, 건평만 1840평에 달했다. 그는 한의학만 고집하지 않고, 병원 내에 양방 과목(내과)까지 만들어 사상의학과 양의학을 접목해 불치의 환자들을 살려낸다는 계획까지 세워두었다. 만약 이 사상한방병원이 세워졌다면 사상의학 발전에 신기원을 이룩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한의학계의 한결같은 평가.

사상한방병원을 서울뿐 아니라 전국 곳곳에 세워보겠다는 생각을 하던 최박사가 처음 문을 두드린 곳은 새마을운동중앙회. 1995년 10월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새마을연수원 2개 동을 임대해 사상한방병원을 운영키로 하고 수의계약을 맺었다. 그는 당시 비어 있던 새마을연수원을 한방병원으로 리모델링하기로 하고 투자자를 모았다. 개보수 공사비만 27억원에 달했기 때문에 최박사 개인의 힘으로는 한방병원 건립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최박사가 새마을운동중앙회와 맺은 계약조건이 최박사에게 너무 불리했다. 보증금 3억원에 연간 임대료 15억원. 게다가 임대료는 3회 분할 선납 조건이었다. 최박사는 “새마을운동중앙회가 하자는 대로 계약을 했는데 계약서를 쓰고 보증금을 주고 나니 투자자들이 너무 일방적인 계약이라며 투자 포기 의사를 밝혀왔다”고 말했다.

사상의학 꿈 좌절 기가 막혀

최박사의 처방은 혜민원 의관이었던 조부로부터 내려온 '비방(秘方)'이 많다(왼쪽).국내 최초의 사상한방병원이 들어설 예정이었던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옛 새마을운동중앙회 연수원 부지. 지금은 아파트 건설이 한창이다(오른쪽)

다급해진 최박사는 당장 임대료 15억원을 마련하기 위해 가산을 정리하고 은행 융자를 받아 선임대료를 내고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27억원의 공사비를 마련하기에는 역부족이어서 공사는 1년 가까이 중단됐고 이 바람에 임대료 15억원만 날린 꼴이 되어버렸다.

공사가 중단되자 새마을운동중앙회는 97년 1월 임대료를 10억원으로 내려주며 공사를 독려했고, 최박사는 병원 수익사업인 식당, 영안실 등 부대사업권을 팔아 공사비를 조달했다. 하지만 설상가상으로 찾아온 IMF 경제위기는 그를 빠져나올 수 없는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융자금 이자는 천정부지로 올랐고, 공사업체들의 자금 요구는 빗발쳤다.

결국 97년 7월1일 공사대금으로 지급한 당좌수표를 막지 못하면서 최박사는 부도를 냈다. 부도 이후 공사업자들이 “일단 병원은 만들고 보자”고 나서 공사는 계속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중앙회측이 공사를 막고 나섰다. 제때 임대료를 내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최박사는 “중앙회측이 자금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두 달간 밀린 선임대료를 빌미 삼아 97년 10월2일 현장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단전·단수를 하는 등 공사를 중단시켰다”고 주장했다. 결국 공사 중단과 함께 최박사의 집과 한의원은 경매에 부쳐졌다.

그 사이 최박사에게는 더욱 충격적인 일이 있었다. 부도를 비관한 둘째 아들(당시 28세)이 자살을 한 것. 사상의학을 집대성하고 가난한 환자를 돌보기 위해 시작한 일이 자식의 죽음을 부른 셈이 됐다.

자금압박에 결국 부도 공사 중단

새마을운동중앙회측의 압박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중앙회측이 그에게 병원 건립 포기각서를 쓰도록 요구한 것. 임대료와 보증금, 공사비 10억원 등 모두 28억원의 돈을 병원 건립공사에 투자한 그는 중앙회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공사업자와 부대사업자들이 한의원에 몰려와 ‘포기각서’를 쓸 것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다. 중앙회도 때맞춰 “자금이 부족하니 일단 병원을 지어 완공한 후 재계약을 하기로 하자”고 새로운 제의를 해왔다. 결국 최박사는 ‘병원 완공 후 재계약을 한다’는 조건을 달아 부대사업자들에게 포기각서를 써주었다. 그는 “공사업자와 투자자들이 중앙회와 건물과 부지 사용 임대차계약을 다시 맺고, 병원 완공 후 운영권은 내게 준다는 조건으로 포기각서를 썼는데, 결국 그것이 화근이었다”고 말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사상의학 꿈 좌절 기가 막혀

97년 한방병원 기공식 당시 중앙회 관계자와 함께 찍은 사진

포기각서를 썼지만 병원 공사는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확인해보니 중앙회측이 공사업자 등 수십명에게 그때까지의 공사비용 등을 기성고 이상으로 보상하자 공사업자들이 병원 공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은 것. “공사를 마친 후 재계약을 하기로 했지 않느냐”며 항의했지만 헛수고였다. 새마을운동중앙회측은 97년 11월29일 연수원 건물과 부지 3만여평을 960억원에 롯데건설에 매각했고, 현재 이곳에는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다.

새마을운동중앙회측은 “최박사가 무리한 자금운용과 임대료 연체 등 계약위반으로 포기각서를 쓰고도 일방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대신한 민사소송에서도 중앙회측에는 귀책사유나 잘못된 점이 없는 것이 확인됐다”고 반박했다. 공사를 중단시킨 것이나 포기각서를 쓰게 한 것도 모두 공사업자와 부대사업자들이 한 것이지 자신들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게 중앙회측의 항변이다. 하지만 최박사는 새마을운동중앙회를 배임과 사기 혐의로 형사고발할 예정이다.

결국 양측 중 누가 옳은지는 법정에서 가려지게 됐다. 그러나 사상의학을 꽃피우려던 최박사의 꿈은 일단 좌절된 셈이다. 국내 최초의 사상한방병원 건립이라는 꿈이 침몰했다.



주간동아 360호 (p64~65)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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