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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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전자파 매출 판도 바꾸나

정통부 ‘인체흡수율 공개’ 권고 제조업체 민감 반응 … 소비자들 제품 선택 중요 기준으로 삼을 듯

  •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입력2002-11-13 12: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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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폰 전자파 매출 판도 바꾸나

    전자파 인체흡수율이 공개되면 소비자들이 휴대폰을 고를 때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12월부터 휴대폰 전자파 인체흡수율(SAR)이 공개된다는 보도가 나간 뒤 전자파 흡수체나 필터 등 전자파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기업의 주가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는 정보통신부(이하 정통부)가 휴대폰 제조업체에 자율적으로 전자파 인체흡수율을 공개토록 권고한 데 따른 기대감으로 해석된다. 전자파 인체흡수율을 공개하게 되면 그만큼 전자파를 차단하기 위한 기술 수요가 늘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 것.

    그러나 정작 휴대폰 제조업체들은 언론 보도로 SAR 공개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가 높아지자 언짢은 기색을 보이고 있다. LG전자 관계자는 “아직 업계에서는 어떤 식으로 표기를 해야 할지 의견을 모으지 않은 상태”라며 “소비자들이 무조건 전자파가 낮은 제품을 선호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SAR는 휴대폰의 송수신 성능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수치가 낮다고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정통부의 자율공개 방침에 따를 수밖에 없겠지만 SAR에 대한 국민적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며 SAR 공개를 부담스러워했다.

    수출품엔 밝히고 국내엔 비밀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SAR 공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전자파의 유해성 여부가 아직 확실하게 결론 나지 않은 상황에서 소비자들이 전자파 흡수율이 낮은 제품만을 선호할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각 업체에서 휴대폰 전자파를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 전자파의 유해성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업체로선 적극적으로 전자파 차단을 위한 연구 계획을 밝힐 수도 없는 입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12월 SAR 자율공개를 앞두고 각 업계에서는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며 “섣불리 입장을 밝히는 것이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고 전했다.

    전자파 유해성 여부는 아직 논란거리로 남아 있지만 휴대폰은 머리에 밀착시켜 사용한다는 특수성 때문에 외국에서는 이미 SAR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다. 최근 영국에서 SAR를 휴대폰 단말기에 표기하도록 했고,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도 이미 미국에 수출하는 휴대폰에 대해서는 모델별로 SAR를 미국 통신위원회(FCC)에 보고하고 있다. 미국에서 판매되는 국내산을 포함한 다양한 휴대폰의 SAR를 미국 통신위원회나 정보통신 기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CNET 네트워크’ 홈페이지(www.cnet.com)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휴대폰 전자파 매출 판도 바꾸나

    전파연구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휴대폰 전자파 측정 실험.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는 정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러 나라에서 전자파의 인체노출 허용 권고치를 설정하자 정통부도 4월부터 ‘전자파 인체보호 기준’을 마련하고, SAR이 미국과 같은 수준인 1.6W/kg을 넘지 않는 휴대폰에 한해 판매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정통부가 정한 전자파 흡수율 기준치는 유럽 및 일본의 2.0W/kg보다 엄격한 수준. 그러나 정통부는 “공개할 경우 기업의 공정경쟁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구체적인 SAR 수치를 기업비밀로 보호해왔다. 이 때문에 수출품에 대해서는 SAR를 공개하면서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밝히기를 꺼려 ‘역차별’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정통부가 이번에 자율적으로나마 SAR를 공개토록 권고한 것은 이러한 지적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정통부 관계자는 “이미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SAR 공개를 의무화하고 있어 국내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취지로 SAR 공개를 권고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는 “휴대폰 제조업체끼리 SAR를 설명하는 표준 문안에 대한 협의를 해보았으나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어 12월부터 소비자들이 휴대폰을 구입하기 전 SAR를 살펴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휴대폰 전자파 매출 판도 바꾸나

    전자파의 잠재적 유해성을 우려해 독일 정부는 최근 전자파 흡수율을 유럽 기준치인 2.0W/kg에서 0.6W/kg으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의 휴대폰 제조공장.

    국내 휴대폰 제조업체들이 정통부의 기준치인 1.6W/kg을 충분히 만족시키면서도 SAR 공개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휴대폰마다 SAR 수치가 최고 25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정통부가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박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4월1일부터 8월 말까지 적합성 검사를 받은 11개 회사의 36개 기종 중 최고치는 7월에 출시된 A사의 제품으로 1.47W/kg인 반면 6월에 출시된 B사의 제품은 0.06W/kg에 불과했다.

    결국 전자파의 유해성을 주장하는 시각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전자파를 걱정하는 소비자에게는 SAR 수치가 제품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업계의 희비가 크게 엇갈릴 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전자파에 대한 확실한 해답이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그동안 전자파 관련 제품에 꽤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전자파 흡수체 및 차폐용 도료를 생산하고 있는 ‘파워넷’ 홍종희 부사장은 “전자파 관련 업체들은 그동안 전자파 유해성 관련 보도가 나올 때마다 매출액이 큰 폭으로 차이가 났다”며 “국내에서 생산 판매되는 휴대폰 대부분이 규정치를 준수하고 있으나 문제는 더 낮은 수치의 제품으로 소비자가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흡수율 표기 의무화 법률안 제출

    이러한 판단에 따라 휴대폰 제조업체에 전자파 관련 부품을 제공하는 업체들은 SAR 공개를 앞두고 기대하는 바가 크다. 휴대폰의 회로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를 감쇄시키는 부품을 생산하는 ‘세라텍’ 관계자는 “전자파를 줄이는 데 기술적인 한계는 없는 것으로 안다”며 “다만 휴대폰 제조업체의 추가 비용 부담이 걸림돌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파를 낮출 경우 통화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 “과거 통화품질이 휴대폰 선택의 기준이 되던 때에 일부 업체가 출력 주파수를 지나치게 상향 조정했다는 의혹이 있다”며 “소비자의 안전을 고려해 비용 부담을 감수하거나 기지국을 늘리는 방법으로 통화품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메리츠증권 전성훈 연구위원은 “삼성전자나 LG전자 등은 이미 전자파 차단을 위한 조치를 취해왔다”며 12월부터 SAR가 공개된다 하더라도 이들 기업이 특별한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휴대폰이 처음 출시될 때부터 전자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있어왔던 탓에 업계에서는 외국에 비해 빠르게 대처해왔다는 것. 그는 “휴대폰에 들어가는 각종 부품 중 전자파를 차단하기 위한 전자파 차폐용 부품이 차지하는 비율은 아주 미미하다”며 “정통부의 규제를 벗어나지 않는 한 SAR 수치가 조금 높고 낮다는 이유로 휴대폰 업체의 수익성과 경쟁력을 평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자파 논란을 매듭짓기 위해선 유해성 여부를 밝히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통부 산하 전파연구소 전파환경연구과 오태학 박사는 “아직까지 기준치 이하의 전자파가 인체에 해롭다는 것을 입증할 만한 결정적인 연구결과가 없었다”고 말했다. 오박사는 “세계보건기구(WHO)에서 2005년 정도 전자파의 유해성 여부에 대해 결론짓겠다고 했으나 그것마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 정통부가 서울대 등에 의뢰한 연구는 2004년경 그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11월8일, 휴대폰 전자파 인체흡수율 표기를 의무화하는 법률안 입안을 국회에 요구했다. 박진 의원은 법률안 입안(검토) 의뢰서를 통해 “휴대폰 가입자가 3000만명을 넘어서고 있는 상황에서 휴대폰 전자파 흡수율 표기 문제를 단순히 제조업체의 자율에 맡겨서는 안 되고, 담배의 경고 문구처럼 법률로 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자파 흡수율은 가전제품의 ‘에너지효율 등급’처럼 소비자가 사전에 알아야 할 제품에 대한 정보라는 것. 제조업체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있고, 판단은 소비자에게 맡겨야 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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