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0

2002.11.21

쌍둥이 왜 많이 태어날까

시험관아기 성공 위해 4~5개 수정란 주입… 습관성유산 원인 불명 40~60% 치료 어려워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02-11-13 10:08: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쌍둥이 왜 많이 태어날까

    선천성 자궁기형 환자의 습관성 유산을 치료하기 위해 복강경 시술을 하고 있는 최범채 박사(가운데).

    10월 초, 정모씨(37·서울 서대문구)는 결혼 3년째인 데도 아기가 들어서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강남의 유명 영어학원 부원장인 정씨는 결혼보다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서른이 훨씬 지나서 결혼했고, 직장생활 때문에 임신도 미루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를 갖고 싶어 배란일에 맞추어 임신을 시도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좋은 소식이 들리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정씨는 불임전문병원을 찾아가 기초적인 불임검사를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정씨의 난포자극호르몬 수치는 이미 10을 넘어 있었다. 벌써 난자의 노화가 시작된 것이다.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소장 윤태기)에서 배란유도를 시작한 그에게 주치의(남윤성 교수)는 난자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했다. 35세가 넘으면 난자의 노화가 시작된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정자검사 결과도 좋지 않았다. 정자의 수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운동성이 5%밖에 안 되었고 게다가 정자의 대부분이 기형이었다. 비뇨기과 의사는 한숨을 쉬면서 정상 임신(체내수정)은 불가능하다고 판정했다.

    할 수 없이 이들 부부는 시험관아기 시술을 시도하기로 했다. 정씨는 일주일간 매일 피하주사와 근육주사를 맞고, 채혈을 하고, 초음파검사를 받았다. 여러 개의 난자를 얻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그렇게 갖은 고생 끝에 난자를 채취했지만 5개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렇게 채취된 난자는 37℃가 유지되는, 인체의 나팔관과 유사한 환경의 배양접시로 옮겨졌다. 난자 채취 2시간 뒤에는 남편의 정자 채취가 이뤄졌다. 특수 배양액에 담긴 정자는 원심분리를 통해 활동성 있는 정자만 따로 골라졌다.

    다음은 체외수정. 마이크로 바늘에 실린 남편의 정자는 정씨의 난자 내로 직접 주입됐다. 이것이 바로 ‘세포질내 정자주입술’로 보통 난자 채취 4시간 뒤에 이뤄진다. 정씨는 수정이 잘 되기를 손 모아 빌었다. 그렇지만 실망스럽게도 수정에 성공한 것은 전체 5개 중 겨우 2개.



    남윤성 교수는 “이식률을 높이기 위해서 보통 4~5개의 수정란이 여성의 자궁에 주입된다”며 “시험관아기 중에 쌍둥이가 많은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수정란을 자궁에 주입하는 배아이식 수술은 그간의 긴 준비 기간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짧게 10분도 안 걸려 끝났다. 남교수는 입원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지만, 배아이식을 하고 난 뒤 정씨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2주일간 입원해서 꼼짝하지 않고 누워만 지내기로 했다. 옆에 있는 젊은 주부는 5개를 이식했다는데 2개만 이식한 자기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다.

    임신검사를 하기 전날 밤 그는 걱정으로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호르몬 검사는 5 미만. 임신이 되지 않았다. 지금 정씨는 용하다는 한의원에서 지어온 보약을 먹으면서 다음 시험관아기 시술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첫 시도에 실패했지만 정씨가 받은 세포질내 정자주입술은 한국이 이미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차병원 여성의학연구소의 경우 윤태기 교수팀이 불임시술로 국제학회에 발표한 논문만도 무려 43건이나 될 정도. 얼마 전 차병원측에서는 시험관아기로 태어난 아이 300명을 대상으로 발육 및 건강 상태를 조사한 결과 자연임신으로 태어난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성장 발달을 보인다고 발표, 시험관아기들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쌍둥이 왜 많이 태어날까

    난자에 도달한 건강한 정자(위).머리가 달걀 모양으로 반듯한 정자가 정상이고, 머리 혹은 꼬리가 두 개이거나 모양이 찌그러진 것은 기형 정자다. 정자 100마리 중 정상 정자가 14마리 이상 있어야 건강하다고 본다.

    ‘정말 이번 임신은 성공할 수 있을까?’ 주부 조모씨(32)는 결혼한 뒤 이미 네 번의 자연유산을 경험한 터여서 매번 임신 진단을 받을 때마다 수험생이 된 것처럼 마음을 졸여야 했다. 3년 전 네 번째 가진 아이와도 인연이 없었던 조씨는 유산된 상태에서 습관성 유산 클리닉을 찾았다. 담당의사는 유산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유전자 검사를 권했다. 결과는 유산아의 상염색체가 하나 많은 것(47xx+16)으로 나타났다.

    산모의 문제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아기가 정상이 아니므로 미련을 갖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조씨는 슬픔과 기쁨의 감정이 뒤엉킨 눈물을 흘려야 했다. 처음으로 시어머니와 남편으로부터 받아온 따가운 시선에서 홀가분해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 이후 조씨는 부부 유전학 검사는 물론 2∼3개월간 피임을 하면서 호르몬 검사, 자궁난관 촬영, 자궁내막 검사, 자가항체 검사, 초음파 검사를 받았고 자신의 튼튼하지 못한 자궁도 치료받았다. 그리고 다섯 번째 임신을 진단받은 후 황체호르몬을 사용하면서 매주 혹은 10일 간격으로 병원을 찾아 아기의 안전을 점검했다. 이후 2001년 초 조씨는 난생 처음으로 예쁜 딸을 분만했고 올해는 아들을 바라는 욕심으로 또 병원을 찾았다.

    산부인과 영역에서 습관성 유산도 임신이 안 되는 불임의 한 분야다. 전체 임신의 1∼3%를 차지하는 습관성 유산은, 과거의 분만 경험에 관계없이 연속 2회 이상 자연유산이 반복되거나 임신 20주 이전에 3회 이상 반복된 자연임신 손실 증상을 가리킨다. 대개 2회 연속 자연유산된 뒤 다시 유산될 확률은 25%, 3회 자연유산된 뒤 다시 유산될 확률은 30∼40%에 달한다.

    습관성 유산은 아직까지 원인 불명인 경우가 적게는 40%, 많게는 60%에 달할 정도다. 남녀 모두 정상인 데도 유산되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다. 그만큼 치료하기가 어려운 게 이 질환의 특성. 임상의사들은 원인 불명인 경우의 상당 부분이 아직 밝혀지지 않은 면역학적 요인에 있다고 여겨 이를 규명하기 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습관성 유산 시술 분야에서 한국이 세계적 권위를 가지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의사로는 단연 광주 시엘병원 최범채 원장(www.clhospital.com)이 꼽힌다. 성균관의대 삼성제일병원 교수 출신인 최원장은 습관성 유산에 관한 논문만 40여편(국외 발표 논문 10여편 포함)을 발표, 국내 최다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의대에서 포스트 닥터 과정을 밟은 그는 미국불임의학회(ASRM)의 최우수 논문상을 연속 2회(1997, 99년) 수상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미국불임학회에 불임·시험관아기 시술 분야의 좌장(座長)을 맡았다. 좌장은 해당 의학 분야의 최고 권위자만이 맡을 수 있는 사회자를 말하는데, 한국 의료인으로서는 처음 있는 일. 같은 해 11월에는 세계 3대 불임학회 중 하나인 유럽불임학회(ESHRE)에 국내 의학자로는 처음으로 논문 심사위원에 위촉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전 세계적으로 대표적인 산부인과 교과서(Novak’s Gynecology)의 습관성 유산 분야 집필위원으로 선정돼, 습관성 유산의 진단과 치료에 관한 문제를 출제하기도 했다.

    최원장은 습관성 유산은 잘 치료하면 임신성공률이 85%에 이르나 그대로 놔두면 50% 이하로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습관성 유산의 원인을 바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진단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부부의 염색체 이상 유무를 검사하는 부부유전학 검사, 자궁의 선천성 기형·자궁내 유착증·자궁의 혹덩어리 등을 검사하는 X레이 촬영, 자궁내 세균감염이나 호르몬 장애 여부를 검사하는 자궁내막 검사 등이 진단에 이용되고 있다. 그래도 원인이 확실치 않는 경우에는 태반출혈을 일으킬 수 있는 자가면역 이상 검사 같은 여러 면역검사 및 착상 전 유전자 진단 같은 정밀검사를 시행해야 한다.

    최원장은 습관성 유산의 경우 뭐니 뭐니 해도 진단과 치료의 체계화가 우선이라고 말한다. “국내의 경우 습관성 유산 진단 부분이 체계화돼 있지 않아 환자에게 불필요한 검사나 검증되지 않은 검사를 권하고, 또 이로 인해 환자가 불필요한 치료를 받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

    이를테면 국내 일부 의사들은 지금도 원인 불명의 습관성 유산 환자에게 면역글로불린 주사나 제삼자의 백혈구를 주입하는 방법을 사용해오고 있으나 치료 효과에 대한 논란이 있는 상태라는 것. 반면 최근에는 고농도 프로게스테론 요법이 가장 안전한 호르몬 치료요법으로 미국 부인과 교과서에 소개돼 있다고 한다. 또 습관성 유산의 경우 병원 수익 구조 때문에 불임클리닉처럼 전문적으로 운영되는 병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치료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게 최원장의 설명이다. 병원 입장에서 별로 돈이 되지 않아 홀대받고 있다는 얘기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