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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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는 어떻게 해서 일본이 되었나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0-08 14: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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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키나와’는 어떻게 해서 일본이 되었나
    월드컵의 열광과 비교하면 너무나 조용히 끝나버린 광복절. 그 즈음 일본 텔레비전에서 히로시마 원폭에 대한 기억을 그림으로 남기는 일본인들을 소개한 적이 있다. 떨리는 팔로 간신히 붓을 잡고 당시 상황을 담담히 그려나가는 구순의 할아버지, 아기를 껴안고 엎드린 채 고스란히 타버린 끔찍한 어머니의 그림을 보며 눈물 흘리는 육순의 할아버지 등 아마추어들이 그린 서툰 그림은 퍼즐 맞추기처럼 하나하나 당시의 상황을 재현하고 있다.

    군국주의의 가해자인 일본이 피해자의 얼굴로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이 가증스럽다는 이도 있지만, 전후 50여년이 지났건만 전쟁의 기억은 여전히 노인들의 떨리는 손끝에서 망령처럼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광복절을 경축하는 우리 또한 식민지의 망령을 깨끗이 떨쳐버렸는가라는 자문과 함께.

    도미야마 이치로 교수(오사카 대학·일본학)가 쓴 ‘전장의 기억’은 우리에게 일상화된 혹은 내재화된 폭력에 대한 일종의 경고다.

    일단 저자가 왜 전쟁이 아닌 전장(戰場)이라는 말을 골랐는지 설명이 필요하다. 전쟁터 혹은 전시라는 말은 특수한 상황으로 제한되지만, 전장의 범위는 전쟁터의 총부리보다 훨씬 광범위하다. 즉 근대의 전쟁은 모든 공간을 전장으로, 모든 인간을 병사로 만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저자는 스스로 던진 질문에 답을 구하기 위해 오키나와를 연구했다.

    오늘날 오키나와로 불리는 류큐는 철저히 ‘일본화’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일본화’의 과정은 제국주의의 폭력 그 자체였다.



    오키나와 출신 한 일본군 사병이 남태평양 전선에서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이 대동아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면, 우리 오키나와인은 일본인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거다. 그러니 전쟁에서 이기면 우리도 일본으로 가서 화기애애하게 살 수 있을 게야.” 그러나 이 사병은 전사함으로써 진짜 일본인이 되지도, 화기애애한 가정을 이루지도 못했다.

    오키나와라는 말이 ‘수준 낮은’ ‘뒤처진’ 것의 대명사였던 당시 상황에서 그들은 진짜 일본인이 되기 위해 몸부림쳤고 그 대가로 목숨을 지불했다. 한편 후방에 남은 오키나와인들은 열심히 ‘오키나와적’인 것들을 버렸다. 오키나와 사투리, 이름, 복장, 음주, 맨발, 육아, 노래 등이 ‘생활개선운동’이라는 미명 아래 사라졌다. 간혹 오키나와 사투리를 고집한 사람들은 스파이로 몰려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사실 류큐의 근대사는 우리에게 예사롭지 않게 읽힌다. 류큐와 일본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일류동조론’(日琉同組論)은 바로 일제강점기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연상시킨다. 오키나와라는 시공간을 넘어서면 이 책은 식민지배하의 불행했던 우리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있다.

    오키나와인이 천대와 멸시를 받았을 때 한국인들은 조센징 혹은 ‘후테이센진’(不逞鮮人)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녔다. 일류동조론에 동의한 류큐의 지식인 이하 후유와, 황국신민화를 외친 한국의 친일 지식인들 또한 다르지 않다. 그 후 제주도 4·3사건, 한국전쟁 때의 민간인 학살사건, 1980년 5월 항쟁, 오늘날 미군기지 반환 요구 등 군사적 폭력은 한 차례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끊임없이 가해자와 피해자의 모습을 바꾸며 이어졌다.

    이 책은 오늘날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폭력의 실체를 보지도 느끼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불어넣는다. 수많은 사상자를 낸 ‘걸프전’이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game over’라는 종료 표시와 함께 사라졌듯, 전쟁은 언제 어디서나 벌어질 수 있고 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끝난다. 그 사이 군사적 폭력은 차츰 이 세계를 위압하고 우리의 일상을 지배한다.

    ‘전장의 기억’은 결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다. 저자의 사변적인 문장이나 다양한 인용 등이 독자를 끊임없이 괴롭힌다. 이 점을 각오하고 꼼꼼한 각주의 도움을 받아가며 읽다 보면 우리 삶을 지배하는 폭력의 실체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도미야마 이치로 지음/ 임성모 옮김/ 304쪽/ 1만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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