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표적인 연주자가 1980년대에 활동했던 첼리스트 오프라 하노이였다.
섹시 연주자 1호는 바네사 메이

만약 하노이가 2000년대에 데뷔했다면 미모가 장애 아닌 커다란 무기가 되었을 것임이 분명하다. 새로운 세기의 클래식 연주자들에게는 실력 외에도 섹시함과 미모가 필수적 요소기 때문이다. 특히 기존 현악기 대신 전자악기를 사용하는 소위 ‘일렉트릭 클래식’ 연주자들은 우아한 긴 드레스와 연주회용 턱시도를 벗고 가죽 바지와 배꼽티, 미니스커트로 한껏 섹시함을 뽐낸다. 언뜻 보면 클래식 연주자가 아니라 록밴드나 팝그룹 같다.
‘섹시한 연주자’ 1호는 95년에 데뷔한 바이올리니스트 바네사 메이다. 전자 바이올린 연주자인 메이는 젖은 티셔츠 차림으로 물 속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도발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당시 클래식 팬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고 평론가들은 한결같이 싸늘한 눈빛으로 메이를 외면했다. 그러나 바흐의 바이올린 곡을 전자 바이올린으로 연주한 메이의 데뷔음반 ‘토카타와 푸가’는 대중에게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앨범은 전 세계에서 45만 장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최근 메이는 자신이 출반한 6장의 음반에서 베스트 곡을 엄선한 ‘더 베스트 오브 바네사 메이’를 내놓으며 식지 않은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비발디의 ‘사계’,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등을 연주한 본드의 데뷔앨범 ‘본’(Born)은 2000년 영국 클래식 음악 차트에서 2위에 올랐다가 클래식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트에서 삭제되는 등, 갖가지 화제를 뿌리며 전세계 음반판매 200만장을 가볍게 넘어섰다. 리드미컬한 선율에 맞춰 몸을 흔들며 연주하는 본드의 모습은 클래식 음악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현악 4중주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제임스 본드’에서 그룹 이름을 따 왔다는 ‘본드’는 최근 남북한 군사분쟁을 소재로 한 20번째 007 시리즈의 음악을 맡아 진짜 ‘본드 걸’이 되었다.
200만장 판매가 무슨 대수라고? 하고 묻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클래식에서 음반판매 100만장은 결코 만만한 목표가 아니다. 더구나 가장 인기가 없는 장르인 실내악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하겐 4중주단, 에머슨 4중주단 등 세계적인 현악 4중주단의 신보도 1만장을 판매하기 어렵다.
이 같은 상황에서 유니버설 EMI 등의 메이저 음반사가 일렉트릭 클래식을 적극적으로 키우기 시작한 것은 시장논리로 볼 때 자연스러운 귀결인 셈이다. 이들 일렉트릭 클래식 그룹의 제작자들은 아예 팝가수를 키우는 방식으로 젊고 재능 있는 클래식 연주자들을 발탁해 조련한다.

기악뿐만 아니라 성악에서도 속속 섹시 스타가 등장하고 있다. 클래식을 팝 스타일로 노래하는 크로스오버 장르 ‘팝페라’ 가수들 중 많은 수가 본드나 더 플래니츠 못지않은 미모와 섹시함을 자랑한다. ‘오페라의 유령’ 초대 히로인인 사라 브라이트만이 대표적인 경우. 이지, 사피나 등 팝페라 가수들은 외모만 보아서는 매력적인 팝가수인지 클래식 성악가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기존의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은 이 같은 연주자들의 등장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장 보수적이고 시류에 초연했던 클래식 연주자들마저 상업성에 물들어가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또한 이들 음악이 기존 클래식 팬들을 만족시킬 만한 높은 수준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음반사 기획자들은 ‘과거의 잣대로 이들의 음악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어차피 이들은 새로운 클래식 팬들을 개척하기 위해 음반사에서 내놓은 ‘전략무기’라는 것이다.
“사실 수준 높은 클래식 애호가라면 굳이 더 플래니츠의 음반을 살 필요는 없죠. 다만 새로움을 찾고 싶은 클래식 팬들, 또 클래식 음악을 듣고 싶지만 접근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들의 음반은 확실히 어필합니다. 전자악기로 긁어댄다고 해도 이들은 클래식 악보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EMI 코리아 이상민 과장의 말이다.
유니버설 뮤직의 박문선 대리 역시 “음반사의 입장에서는 잘 팔리는 음반이 있어야 새로운 투자도 가능한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의 음악을 ‘뉴 클래식’이라고 부릅니다. 관점에 따라서는 이들의 음악을 현대음악의 한 조류로 볼 수도 있습니다. 전자악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일렉트릭 클래식’이 현대음악의 한 부분임을 의미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