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0

2002.09.05

‘조세천국’에 저승사자 떴다

국세청, 정예조사요원 양성·국제 공조 추진 통해 ‘조세피난처’ 탈세행위 목 조르기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4-10-05 14: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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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세천국’에 저승사자 떴다
    사례1. 벤처기업 A사 대표 B씨. 99년 대표적 조세피난처(tax haven)인 말레이시아 라부안에 역외펀드 설립. 국내기업 발행 해외 전환사채(CB) 헐값 인수. 3개월만에 250억원 차익. 말레이시아 법인 내세워 유가증권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 탈루.

    사례2. C사 대표 D씨. 국내 벤처캐피탈 설립 후 조세피난처인 버진 아일랜드 등에 여러개의 역외펀드 설립. 국내 관계사 주식 취득 후 양도해 150억원 시세차익. 법인세 등 약 135억원(추징예상세액) 전액 탈루.

    앞으로는 이처럼 조세피난처에 세운 역외펀드를 이용해 수백억원대의 세금을 탈루하는 기업들의 관행에 제동이 걸리게 됐다. 국세청이 ‘조세피난처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8월19일부터 한달간 국내 65개 법인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섰기 때문.

    그 동안 국내기업들은 대부분 절세(節稅) 목적으로 말레이시아 라부안 등에 페이퍼 컴퍼니(paper company?유령회사)를 세워 가공거래하는 방식으로 유가증권 거래 차익에 따른 세금을 내지 않아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방식의 변칙적 거래가 제조업뿐만 아니라 금융 등 서비스 분야로 확대되면서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되어 왔던 것.

    역외펀드 이용한 수백억 탈루 관행



    국가간 상품 무역에 있어서 기업들은 조세피난처를 경유해 소득의 일부를 조세피난처에 떨어뜨리는 방식을 그 동안 사용했다. 그러나 ‘흔적이 남지 않는‘ 금융서비스나 자본거래에서는 아예 조세피난처를 이용하여 세금을 전혀 부담하지 않기도 한다. 수법 또한 국내발행 전환사채(CB) 헐값 인수, 외자 유치 위장 등으로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조세천국’에 저승사자 떴다
    그러나 수법이 다양하고 교묘해질수록 이를 뒤쫓는 국세청 요원들의 발걸음도 빨라지는 법. 현재 국가간 거래에 대한 정보수집과 분석조사 능력을 갖춘 국제조사요원은 약 380명이 활동중이다. 이들은 대부분 국세청 본청과 지방 국세청뿐만 아니라 각 일선 세무서에까지 실핏줄처럼 뻗어나가 관내 외국인 투자기업 등의 탈세 행위를 족집게처럼 찍어내고 있다. 지방 국세청의 한 조사요원은 ”98년 이후 급증하기 시작한 국내 외국인투자기업의 일거수 일투족이 모두 감시 대상”이라고 말했다.

    날로 교묘해지는 조세회피 방법을 따라잡기 위해 조사요원들의 전문성 보강작업도 진행되고 있다. 국세청 한상률 국제조사담당관은 ”9월 한 달 동안만 해도 국제조사전문요원 교육과정(8주), 이전가격전문요원 교육과정(3주) 등 국제조세 조사요원들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교육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조세연구원(KIPF) 산하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조세교육센터가 이미 5년 전 설치돼 OECD에서 직접 파견 나온 전문 강사들이 조세피난처 실태, 이전가격 제도 등 국제 조세의 주요 현안과 대처 요령들을 가르치기도 한다. 이 교육센터는 동남아 지역을 대표해 한국에 설치된 것으로, 동남아 국가들의 세무공무원들도 교육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또 재경부에서도 3년 전부터 국제무대에서 발생하는 조세문제 협조체제를 모니터링하고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 OECD에 국제조세를 담당하는 상근 인력을 파견해 놓고 있다.

    그러나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세를 일일이 잡아내기 위해 세무당국이 눈을 부릅뜨고 뒤진다고 해도 정작 이들 조세피난처에서 거래내역을 내놓지 않으면 목적 달성은 요원한 일. 결국 국제사회의 공조가 없으면 조세피난처를 통한 탈세는 아예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국가간 교역 규모가 큰 선진국들의 경제협력체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몇 년 전부터 조세피난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공조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조세연구원 최준욱 박사는 ”최근 2∼3년 동안 OECD를 중심으로 하는 국제공조 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했다.

    OECD는 지난 99년 출범한 ‘유해조세 경쟁포럼‘을 중심으로 조세피난처 국가에 대한 ‘압박작전‘을 펼친 끝에 이들로부터 2005년까지 국가간 자본이동을 왜곡하고 재정기반을 무너뜨리는 유해조세를 폐지하는 한편 조세정보까지 공개하도록 하는 약속을 받아냈다. 국세청에 따르면 현재까지 조세정보 교환을 약속한 조세피난처는 모두 28개 지역. 바하마나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등을 포함해 주로 중남미나 태평양권의 도서 지역들이 다. 이 숫자는 앞으로도 점차 늘어날 전망.

    라부안 버뮤다 등은 정보 교환 소극적

    그러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이성봉 박사는 ”대략 50개 가까운 조세피난처 대상 지역 중 아직까지 조세정보 교환을 약속하지 않은 곳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한국 기업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말레이시아 라부안이나 중남미의 버뮤다 등도 조세정보 교환을 약속한 국가 명단에는 빠져있다. 또 리히텐슈타인이나 룩셈부르크 등 조세 특혜가 많은 유럽 소국(小國)들도 아직 정보 교환에 비협조적이다.

    특히 조세피난처가 편입된 대부분 국가의 경우 이 지역을 외자 유치와 돈벌이 수단으로 교묘하게 활용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들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과세 정보를 내놓을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 재경부 임성균 국제조세과장은 ”조세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양국간 조세조약에서 합의한 세제 혜택을 주지 않는 등의 보복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조세피난처에 대한 규제가 한 나라 차원에서 이뤄져서는 별다른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점. 조세피난처 국가와 거래하는 여러 나라들이 협공을 통해 이 지역을 ‘왕따‘ 시키지 않는 한 조세정보 이행 약속을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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