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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ㅣ兵風 vs 檢風

“97년 악몽 되풀이될라”

한나라당, 병풍위기 타개 총력… ‘검풍’ 띄우기, 장 총리서리 철저검증 등으로 맞불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97년 악몽 되풀이될라”

“97년 악몽 되풀이될라”
민주당 이해찬 의원의 8월21일 ‘검찰의 병역비리 쟁점화 요청’ 발언이 나온 뒤 한나라당이 서울지검 항의방문단 1000여명을 끌어 모으는 데는 한나절도 안 걸렸다. 수십대의 버스를 동원하고, 서울시내 여러 동네에서 여성 당원을 모으는 일이 일사불란했다.

‘병풍’ 대 ‘검풍’의 극한 대치국면은 한나라당과 이회창 대통령후보에게 커다란 위기 상황이다. 병풍이 이후보 행보에 미칠 영향은 크게 세 가지. 정연씨 불법면제가 사실로 밝혀져 이후보가 정계 은퇴하는 경우, 병풍으로 인한 지지율 추락이라는 97년 악몽이 재연돼 낙선 요인이 되는 경우, 지금의 A급 태풍 규모가 미풍으로 약화되는 경우다.

▶ 이회창 낙마 시나리오 현실화될까

한나라당 분위기는 이해찬 발언 이전과 이후로 구분된다. 이해찬 발언 직전 한나라당 한 당직자는 “정몽준 의원이 한나라당 상황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한 발언이 주목된다”고 했다. 정연씨 불법면제가 사실로 드러나면 정계 은퇴하겠다는 이회창 후보의 선언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이 당직자의 말. “현재의 한나라당 결집력은 민자당~신한국당으로 이어져 온 지난 10여년 동안 가장 좋다. 한나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이다. 병풍으로 이회창 후보가 정계 은퇴할 경우에도 한나라당은 와해되지 않고, 새 후보를 낼 정치적 명분과 역량을 이젠 갖게 된 것 같다.” 이해찬 발언은 한나라당 내에서 이러한 동요의 기운이 막 일어날 즈음에 터졌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지방선거에서 영남 단체장 못 내면 후보 재신임 묻겠다”는 자신의 발언 때문에 후보직을 내놓게 될 상황이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의 경우 이처럼 ‘말의 덫’에 걸려들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었다. 이해찬 발언으로 병풍은 그 초점이 크게 흐려졌다. 뾰족한 퇴로 없이 검찰수사 결과에 따른 여론 향배만 지켜봐야 했던 이후보는 이해찬 발언으로 인해 ‘후보 사퇴의 공포’로부터 해방될 가능성의 빌미를 찾게 됐다.

한나라당 논평 역시 그렇다. 한나라당 대변인실은 이해찬 발언으로 ‘현재의 검찰 병풍수사팀-김대업씨-민주당-청와대가 한통속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러므로 현 수사팀이 어떠한 수사 결과를 내놓더라도 이는 정치공작이다→ 정연씨 불법 병역면제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꽤 비약된 논리의 논평을 계속 쏟아내고 있다. 이는 ‘이회창 후보의 낙마 가능성이 없어졌다’는 주장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후보는 최근 불법면제는 없었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불법면제 사실이 드러나면 정계 은퇴하겠다’는 이후보의 선언은 한나라당 내부 결속용 수사(修辭)로만 활용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정황은 역설적으로 상황변화에 따라서는 병풍이 한나라당의 심각한 내부 동요를 일으킬 파괴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기도 하다.

▶ 병풍과 이후보 지지율의 상관관계는?

“97년 악몽 되풀이될라”
“97년 악몽 되풀이될라”
지난 97년 8월 이맘때 이회창 후보는 병풍으로 악몽 같은 세월을 보낸 바 있다. 당시 8월은 국민회의 천용택 의원이 정연씨 병역면제 문제를 집중 제기한 직후였다. 한 여론조사에서 이후보 지지율은 15.2%로 급락했다. 신한국당 경선에서 패배한 이인제 의원이 오히려 30%의 지지율을 보였다. 결국 병풍이 이인제 의원 탈당 및 대선 출마의 빌미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은 2002년 8월의 병풍도 그 같은 효과를 낼지에 쏠려 있다. 이미 97년 제기된 사안이라는 점이 이후보에게 유리한 점이고, 김대업 녹음 테이프 등 새로운 검증요인(불법면제 의혹)이 발생했다는 것이 불리한 점이다. 특히 면제 과정의 세세한 행위들은 결과에 따라 이후보의 도덕성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8·8 재보선 직후 한 여론조사에서 이후보는 이회창-노무현-정몽준 3자 대결시 31.6%, 이회창-노무현 양자 대결시 40.1%의 지지율을 보였다. 한나라당 당직자는 병풍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후보 지지율은 좀더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에서 실시한 병풍 관련 여론조사에선 응답자의 50% 이상이 정연씨 병역비리가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본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자체 여론조사에서도 그 같은 정황이 나타났다. 8월20일 결과가 나온 조사(2000여명 대상)에 따르면 ‘한인옥 여사가 금품을 제공했을 것으로 믿는다’는 답변이 60%로 10일 전 53%보다 늘었다. 한나라당 지지율은 37.8%에서 28.2%로 크게 떨어졌다. 이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15%였다. 현재의 병풍수사가 이회창 후보 회의론을 점증시키고 신당에 대한 반사적 기대감을 높일 경우 이번에도 대선 상황은 예측불허가 된다.

그러나 한나라당 당직자는 낙관론을 펴고 있다. 다음은 그가 말하는 근거. “이번엔 5년 전 병풍 때와 같은 10%대 지지율 폭락사태는 없었다. 5년 전엔 병풍에다 이인제 의원 탈당, DJP 연대로 인한 충청권 이탈, IMF 사태와 김현철씨 비리까지 겹쳤지만 이후보는 30여만 표 차까지 김대중 후보를 따라붙었다.”

“97년 악몽 되풀이될라”
한나라당은 지난 4월 민주당 국민 경선의 ‘노풍’ 발화 상황을 요즘 복기하고 있다. 이회창 후보가 빌라게이트, 손자의 원정출산 의혹, 박근혜 의원 탈당, 비주류의 당내 민주화 요구로 사면초가에 빠지는 바로 그 타이밍에서 민주당이 국민경선-노무현 띄우기를 시도해 지지율 역전에 성공했다고 보는 것.

한 번 당해 본 경험이 있는 한나라당으로선 현재의 병풍정국이 신당 창당-신당 대선후보 선출 때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조기 진화할 필요성이 큰 셈이다. 이를 위한 전략이 바로 김정길 법무장관 해임안 제출 등 ‘검풍’ 일으키기, 장대환 총리서리 철저 검증, 공적자금 국정조사 등 다각적인 맞불놓기다.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의 유임에 대해 한나라당 일각에선 “오히려 잘 걸렸다”는 시각도 나온다. 법무장관과 검찰 수사에 대한 뚜렷한 공격 포인트를 여권이 스스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김대업씨 한 사람의 주변을 추적하는 일에 한나라당 국회의원 12명이 매달린 것도 한나라당이 검풍 띄우기에 주력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진승현 게이트 당시 불법금융 거래를 밝히는 데 발군의 실력을 보인 엄호성 의원을 장대환 총리서리 검증팀에 긴급 투입한 것도 주목할 대목이다. 엄의원은 장 총리서리가 은행에서 빌린 거액 대출금의 이자를 내지 않았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함으로써 기대에 부응했다. 한나라당 임태희 의원은 예금보험공사(이하 예보)와의 전쟁을 준비중이다. 임의원은 “성원건설이 김대중 대통령 차남 김홍업씨에게 로비를 해서 부채를 탕감받은 규모가 검찰수사에선 3700억원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성원건설의 부채탕감 규모는 42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임의원은 예보가 12조원의 기업부채를 탕감해 준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이들 기업 중엔 현대그룹 계열사들이 포함돼 있다. 공적자금 국정조사는 신당의 유력 후보 주변과 현 정권과의 유착관계 논란으로 비화될 휘발성을 안고 있다.

이해찬 발언으로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는 국면 전환의 기회를 잡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여전히 ‘병역비리의 본질은 정연씨가 불법으로 면제를 받았느냐, 아니냐는 사실’이라고 본다. 이로 인한 여러 파생 쟁점들은 곁가지에 불과하다는 인식이다. 한나라당은 검찰 수사의 신뢰도를 부정하고 있지만, 병풍수사에서 유력한 물증이나 증언이 터져나오면 이후보의 운명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여전히 알 수 없는 매우 불가측한 상황이다. 이후보는 아직 병풍의 벼랑끝에 서 있다.



주간동아 350호 (p20~21)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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