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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ㅣ 兵風 vs 檢風

‘몸통’놔두고 ‘곁가지’만 건드리나

핵심사안 피하고 의혹만 부풀려…‘체중조작 여부’ 규명 정치 공세에 묻힐 판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몸통’놔두고 ‘곁가지’만 건드리나

‘몸통’놔두고 ‘곁가지’만 건드리나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아들 정연씨의 불법 군대 면제 의혹은 처음 5대 의혹에서 20대 의혹, 56가지 의혹 등으로 나날이 확산되고 있다. 8월3일 검찰 고소 이후 쏟아진 새로운 의혹, 혹은 재탕 의혹들은 수십여 가지에 이른다. 병적기록부 한 장만 갖고도 10여 가지의 의문이 꼬리를 문다. 자칫 ‘병풍’(兵風·정연씨 불법 면제의혹 파문)의 진실이 의혹의 더미에 묻혀 본질은 사라질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그러나 병풍의 급소는 의외로 간단하다.

물증은 없고 관련 인물들은 부인 ‘오리무중’

병적기록부 변조, 은폐대책회의는 불법을 감추기 위해 부수적으로 저질러지는 성격의 일이다. 병풍 의혹의 본질은 결국 정연씨측이 돈을 주고 체중을 조작해 병역을 면제받은 일이 실제로 있었는지 규명하는 데 있다. 이 사안의 진실 규명이 각종 정치 공세와 검찰 흔들기로 인해 실종된다면 ‘법치’라는 개념 자체가 사라질 만한 심각한 상황이다.

민주당과 김대업씨의 녹음 테이프가 제기하는 불법면제 시나리오는 대략 ‘이회창 후보 부인 한인옥 여사가 병무청 유학담당 직원과 함께 전 국군수도통합병원 직원 김도술씨를 다방에서 만나 2000만원을 제공했다→ 김도술씨는 이를 다시 변재규 전 헌병대 준위에게 청탁했다→ 변 전 준위는 국군춘천병원에 청탁해서 체중미달로 정연씨를 군 면제시켰다’는 흐름이다.

따라서 불법면제 여부를 가려줄 결정적 근거의 하나는 바로 시나리오 최종 단계에 있다. 즉 정연씨 체중을 측정한 장본인으로 확인된 백일서씨가 변 전 준위로부터 청탁을 받아 정연씨 체중을 조작했다는 점이 사실로 밝혀지면 되는 것. 이 때문에 백씨의 또 다른 병역비리 가담 여부는 다른 어떤 의혹 못지않은 무게를 지니게 된다.



김대업씨는 ‘주간동아’와의 전화통화에서 “지난 90년 백일서씨는 논산병원에서도 병역비리를 저질렀다”고 재차 주장하면서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다음은 김대업씨의 말. “나는 90년 6월 대구의 한 대학원생과 함께 논산으로 갔다. 대학원생은 논산훈련소로 들어갔고 나는 논산병원 원장실을 찾아 병역 면제를 청탁했다. 원장과는 전부터 잘 알던 사이였다. 대학원생은 급하게 면제청탁을 해왔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내가 논산까지 동행하게 됐다. 원장은 백일서씨를 원장실로 불렀다. 그 자리에서 나는 백씨에게 500만원을 줬다. 하루나 이틀 뒤 대학원생은 훈련소에서 나와 논산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백씨로부터 허리디스크 판정(5급)을 받아 대구로 돌아갔다.”

이에 대해 백일서씨는 “김대업씨의 주장은 명백한 허위사실”이라고 반박한다. 백씨는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함께 있었다는 당시 논산병원장도 김대업씨 주장을 부인했다. 김대업씨는 “백일서씨 비리의 객관적 입증자료에 대해선 얘기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현재까진 백씨 부분에 대해 수사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백씨의 체중 측정행위의 불법성 여부는 병풍의 ‘급소’다. “청탁 받아 체중 조작한 근거가 있다”, “불법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는 둘 중 하나의 결론이 나와야 한다. 백씨에 대한 결론을 생략한 검찰 수사는 의혹만 부풀리고 마는 일이 된다.

돈과 면제 청탁이 유통됐다는 시나리오 중간 단계엔 한인옥 여사, 이름을 알 수 없는 병무청 유학담당 직원, 김도술씨, 변재규씨 등 4명이 등장한다. 이중 한여사, 김씨, 변씨는 모두 시나리오 내용을 강하게 부정하고 있다. 검찰은 유학담당 직원의 신원을 최근 확인해 소재를 추적중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녹음 테이프 육성은 김도술씨 본인 것인지 판독이 불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 수사는 현재 병풍의 핵심인 시나리오 자체에선 불법면제의 단서 및 증언을 도출해내지 못하고 있다.

검찰 일각에선 “현재의 병풍 수사에 거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 검찰 관계자의 말. “병무청과 서울 병무청의 당시 유학담당 직원들을 소환했을 때 검찰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녹음 테이프에 등장하는 유학담당 직원을 찾아내는 일이다. 얼마 뒤 검찰은 정연씨 미국 유학 자료를 미국측에 요구했다. 이것은 정연씨의 유학을 이유로 한 입영 연기가 적법했는지 규명하는 정도에 필요한 사안 아니냐. 그런데 검찰은 이를 언론에 흘리고, 언론은 그것을 받아서 병풍이 정연씨 유학문제 검증이라는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고 쓴다. 그러나 오히려 불법면제 의혹 규명이라는 수사의 본질에선 멀어진 느낌이었다.”

검찰 수사가 서울대병원의 정연씨 체중측정 의혹문제, 정연씨 체중변동 추이에 관련된 문제를 짚는 일에 대해서도 이 검찰 관계자는 인색한 평가를 내렸다. 불법 행위 자체가 아닌, 불법이 일어났을 개연성에 대한 검증에까지 수사 범위를 넓히는 일은 수사력의 효율적 사용이라고 보기 힘들며 ‘신속하게 핵심 결론만 내려달라’는 국민적 요구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8월 초 검찰 수사가 시작된 이래 검찰은 수사 내용을 언론에 공개해 왔다. 검찰이 이런 방법을 택한 것에 대해 한 검찰 관계자는 “공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므로 수사 과정도 알릴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사 내용 공개로 알려진 검찰 수사의 전개방향은 사건의 핵심에 다가서지 못하는 인상이다. 검찰은 8월26일 병역문제 수사를 전담할 ‘병무특별수사반’을 별도 편성했다.

검찰은 지금부터라도 사건의 급소, 핵심을 밝혀내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한여사-유학담당 직원-김도술씨-변재규씨-백일서씨 등 5명 사이에 금품거래, 면제청탁, 체중조작 행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밝혀서 발표하는 게 이 사건의 핵심이다. 한 달이 다 되어가니 검찰 수사가 그럴 때도 됐지 않았을까.





주간동아 350호 (p18~19)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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