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1

2002.02.07

‘크로스오버’ 그 황홀한 기타 선율

‘마이 뷰티풀 걸 마리’ 작곡 기타리스트 … 대중음악에 클래식 접목 독특한 느낌 발산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4-11-11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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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로스오버’ 그 황홀한 기타 선율
    기타리스트 이병우(37)의 첫인상은 눈사람 같다. 둥근 얼굴에 둥근 눈, 말하는 입도 둥글고 웃는 얼굴도 ‘스마일’ 마크 그대로다. 그 자신 “느려서 답답하다”고 말하는 느릿한 말투도 왠지 눈사람을 연상시킨다. 그 편안한 얼굴 때문일까. 오랜 공백 끝의 귀환인데도 낯선 느낌이 없다.

    ‘기타리스트’라고 표현했지만 이 단어 하나에 담기에는 이병우의 음악 여정이 너무도 길다. 1980년대 조동익과 듀엣 ‘어떤날’을 결성했던 이병우는 김민기, 양희은, 조동진 등 수준 높은 가객들의 세션으로 활동한 일급 기타리스트였다. ‘오후만 있던 일요일’ ‘너무 아쉬워하지 마’ 등 그가 작곡한 노래나 기타 연주 음반 ‘내가 그린 기린 그림’ 등을 기억하고 있는 팬들도 적지 않다.

    ‘크로스오버’ 그 황홀한 기타 선율
    그러다 이병우는 어느 날 갑자기 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엉뚱하게도(?) 그는 오스트리아 빈에 가 있었다. 빈 국립음악원 클래식 기타과에서 6년간 유학생활 끝에 1994년 귀국했지만 얼마 안 있어 미국으로 다시 떠났다. 피바디 음악원에서 4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것이 지난 2000년 여름. 그리고 귀국 2년 만에 처음 내놓은 음반이 애니메이션 ‘마리이야기’의 사운드 트랙인 ‘마이 뷰티풀 걸 마리’다. 그 자신의 말마따나 어지간히 느린 행보다.

    요즘은 대중음악인들에게도 유학은 낯선 일이 아니다. 반대로 성악이나 작곡 등을 전공한 음악도들이 대중음악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러나 대중음악에서 출발해 정통 클래식 코스로 진입한 사람은 이병우가 유일하다. 그는 빈 국립음악원을 수석으로 졸업했고 미국 유학 시절 예일 고든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는가 하면, 빈 브람스홀에서 비발디 협주곡을 기타로 연주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영화음악을 작곡하고 LG아트센터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그에게는 대중음악과 클래식 사이의 높은 벽이 무의미한 것일까.

    ‘크로스오버’ 그 황홀한 기타 선율
    “물론 대중음악과 클래식은 다르죠. 그러나 저는 그 두 음악이 엄청나게 다른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적어도 제 안에서는 그렇습니다. 저는 클래식도 좋아하고 대중음악, 록음악도 좋아하니까요.”



    사실 이병우에게 대중음악과 클래식의 구분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기타’다. 열한 살 때 처음 기타를 치기 시작한 이후부터 그는 귀에 들리는 모든 음악, 모든 음향을 기타로 따라 해볼 만큼 기타에 열중했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과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의 악보를 사서 기타로 쳐 보기도 했습니다. 관현악 반주는 못하지만 멜로디 라인은 따라 할 수 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대중음악 판에 들어가 기타리스트가 되었지요.”

    유학은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졌다. 빈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가 엉겁결에 빈 국립음악원의 오디션을 보고 콘라드 라고스닉 교수의 제자가 되었다.

    “빈에서 공부를 시작할 때 참 힘들었습니다.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다 간 게 아니었기 때문에 기초부터 새로 공부해야 했죠. 테크닉도 고칠 부분이 많았고요. 그렇지만 빈에서 음악을 하는 것은 단순히 음만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해석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어요.” 라고스닉 교수는 수석졸업 한 한국인 제자가 이름난 대중음악가라는 사실을 끝까지 몰랐다. 반면 피바디 음악원의 줄리안 그레이 교수는 그가 대중음악 하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고.

    그렇다면 왜 이병우는 굳이 유학을 갔을까. 그리고 클래식 음악에 뛰어들었을까. 남들처럼 교수가 되기 위해서? 그러나 이병우는 최근 한 대학에서 전임으로 와 달라는 제의를 거절했다.

    “교수가 되기 위해 11년간 공부한 것은 아니었어요.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유학 생활을 오래 하게 된 것은 내 나름대로의 운명이었을 뿐입니다. 기타 테크닉이 웬만큼 되었기 때문에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동시에 할 수 있었던 것이고요. 지금 내가 하는 음악은 물론 대중음악입니다. 클래식은 역사적으로 정형화된 음악이고 순수음악이지만 내 음악은 그런 건 아니니까요. 내가 하는 음악은 이 시대의 주류를 이루는 음악들입니다.”

    ‘크로스오버’ 그 황홀한 기타 선율
    최근 이병우가 내놓은 ‘마이 뷰티풀 걸 마리’에는 그 자신도 “때로는 내가 어떤 음악을 하고 있는지 헛갈린다”고 했던 클래식과 대중음악의 하모니가 담겨 있다. 정교하고 투명한 사운드와 함께 현악과 목관, 그리고 기타 연주가 절묘하게 배합된 이 음반은 이병우의 음악적 여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이 부분에 대해 질문하자 그는 “그동안 들어온 풍월이 있으니까 조금은 영향도 받았겠죠” 하고 웃었다. 그냥 웃어넘기나 했지만 그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우연한 기회로 들어서게 되었지만 클래식 음악을 배운 것은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중음악을 한다 해도 정통적인 음악방식은 도움이 될 때가 많아요. 클래식 음악을 할 줄 아는데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지금껏 죽 그래왔듯 이병우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상당히 다양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가곡과 말러의 교향곡을 즐겨 듣고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좋아하는가 하면, 노바소닉과 성시경, god도 멋지다고 말한다. 자신이 설립한 음악레이블 ‘뮤직도르프’에서 피아니스트 신이경의 음반을 제작했고 김지운 감독의 단편영화 ‘메모리즈’의 음악도 맡았다. 기타 연주를 담은 솔로 앨범은 4월 출반을 목표로 막바지 작업 중이다.

    “백건우 선생이 연주한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은 들을 때마다 감탄하죠. 한때는 드뷔시 같은 인상주의 음악들을 좋아했지만 요즘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좋습니다. 그의 가곡은 참 아릅답거든요.”

    이병우는 자신의 행보에 대해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식으로 쉽게 말했다. 그러나 말처럼 쉽지 않았을 여정을 걸어올 수 있게 한 동력은 기타에 대한 무한한 애정에 있는 듯했다. 그는 “수수하고 다들 대단치 않게 생각하지만 실은 어려운 악기”인 기타를 여전히 사랑한다.

    “기타는 칠 때마다 어려운 악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병우만의 스타일로 기타를 치는 것입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아요. 옛날에는 제 스타일이 어떤 것인지 전혀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남과 다르게 하는 것, 나만이 할 수 있는 음악이 무엇일까를 많이 생각합니다.”

    사진 촬영 때문에 그의 연주를 코앞에서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포즈를 취하는 일인데도 이병우는 아주 진지하게 기타를 쳤다. 숨소리로 그가 상당히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타를 칠 때마다 힘들다”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의 손끝이 닿자 놀라워라! 기타는 나지막하고 다정한, 그리고 신비스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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