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1

2002.02.07

약값에 날개 달렸네

낱알판매 금지 후 일반의약품 최고 4배까지 폭등 … “원가 상승 때문” 제약업체 억지 주장

  • < 최영철 기자 > ftdog@donga.com

    입력2004-11-11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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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값에 날개 달렸네
    어, 이게 이렇게나 올랐어요? 1년 전만 해도 한 포에 150원밖에 안 했는데….”

    2년간 해외 파견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회사원 김모씨(31). 그는 최근 회사 인근 약국에 들렀다 약사와 심하게 다퉜다. 술 마시기 전이나 속이 편치 않을 때 간편하게 사먹은 S제약사의 유명 제산제(위장약) G액의 가격이 무려 3배나 올라 있었기 때문. 게다가 당장 한두 포밖에 필요가 없는데도 10포가 들어간 한 곽을 통째로 사야 한다는 약사의 설명을 듣고 나니 더욱 화가 났다. “폭리를 취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지만 “왜 저보고 그럽니까. 약값을 올린 건 제약회사인데. 그리고 의약분업 이후 일반약도 이렇게 곽째 팔지 않으면 단속 대상이 되기 때문에 우리도 어쩔 수 없습니다”고 반박하는 약사의 말에 그냥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자율가격제로 정부 개입도 봉쇄

    울며 겨자 먹기로 제산제 한 곽을 받아 나온 김씨는 간단한 속쓰림 증세를 없애기 위해 자신이 예전보다 얼마나 더 많은 비용을 치렀는지 곰곰이 따져봤다. 분업 이전 G액 한 포의 가격은 150원, 현재 가격은 450원. 450원짜리 10포가 들어간 한 곽을 샀으므로 총 4500원이 들었다. 결국 김씨는 분업 이전보다 4350원을 더 지불한 셈이다. 김씨는 ‘의약분업이 불편할 뿐만 아니라 약품 가격을 올리고, 약물 남용을 줄이기는커녕 오히려 약을 낭비하게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2000년 7월1일 시작된 의약분업 이후 갑자기 가격이 오른 일반의약품은 G액만이 아니다. 1만여종에 달하는 일반의약품 중 의약분업 이후 약값이 떨어진 약품은 단 한 품목도 없다. 제약협회는 의사 처방전 없이 사먹을 수 있는 일반의약품의 가격이 분업 이전보다 대략 30% 오른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30%라는 것도 평균치일 뿐, 터무니 없이 오른 의약품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일반인들에게 해열진통제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B정, 피부약 K크림, 진통제 H정은 G액처럼 3, 4배나 가격이 폭등한 약품이다. H사의 C캅셀, S사의 X시럽, H사의 G정은 2배 이상 오른 약품들. 모두가 광고나 입소문을 통해 일반인들이 널리 쓰고 있는 의약품들이다. 이 밖에 30~80% 이상 오른 제품은 모두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의약분업 이후 일반의약품 가격이 이토록 폭등한 이유는 뭘까. 결론부터 말하면 약값 상승과 의약분업 자체는 아무런 ‘함수 관계’가 없다. 의약분업은 말 그대로 의사는 환자의 증상에 따라 처방전만 내고, 약사는 그에 따라 약만 지어 팔도록 의사와 약사의 기능을 분화시켰을 뿐이다. 그런데도 제약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의약분업 실시로 일반의약품의 가격을 대폭 올리지 않을 경우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주장한다. 왜 그럴까.

    제약업체들의 이런 ‘억지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해 의약분업 실시 이전 두 차례에 걸쳐 계속된 의료계 파업 당시 의료계가 줄기차게 주장했던 일반의약품 낱알판매 금지제도 도입 요구를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의사의 처방 없이 약국에서 자유자재로 구입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도 약사가 종류별로 한두 개씩 섞어 판다면 이는 결국 임의조제나 혼합조제로 볼 수밖에 없고, 이를 허용한다면 의사들은 의약분업에 동참할 수 없다.” (2000년 6월10일 대한의사협회 성명서 중)

    의사들은 당시 감기 몸살을 예로 들며 소염진통제, 소화제, 콧물약, 기침·가래 제거제, 해열제 등 각기 다른 종류의 일반의약품을 섞어 팔 경우 이는 약사의 ‘조제행위’라고 주장했다. 낱알판매 허용이 ‘의사의 처방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행위라며 정부와 맞선 의사협회는 약사들의 일반의약품 낱알판매를 막는 대신 10개들이 소포장 판매를 대안으로 제시했고, 의약분업 일정이 늦어질까 노심초사한 보건복지부는 이를 즉시 수락했다.

    그 후 제약업체는 일반의약품 가격을 올리기 시작했다. 기존 100개들이 대포장 생산시설을 10개들이 소포장 생산시설로 변경함으로써 원가부담이 늘어났다는 이유였다. 그동안 정부의 눈치를 보며 기회만 노린 제약업체들은 엄청난 ‘호재’를 만난 셈이었다.

    게다가 지난 99년 1월 시장의 자율경쟁을 통해 약가의 ‘거품’을 없앤다며 실시한 ‘자율가격제’(Open Price)는 약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데도 정부가 지도나 단속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 놓았다. 자율가격제에서는 일반의약품 가격 결정이 제약업체와 약국에 맡겨져 있어 ‘담합’이 아니면 누구라도 간섭할 수 없기 때문. 이러다 보니 같은 성분을 가진 일반의약품 중 시장 지배력이 강한 상품 가격은 계속 올라 의약분업 이전보다 무려 3, 4배 오른 품목까지 등장한 것이다.

    각 제약업체들은 생산시설 변경에 따른 원가부담이 업체마다 제각기 다르다고 해명하지만 이는 그야말로 ‘변명’에 불과하다. 제약협회 한 관계자는 “10개들이 소포장 생산체제로 변경되면서 원가가 30% 가량 늘었다. 그 이상의 비용이 들어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하지만 가격결정은 해당 제약사의 고유 권한이므로 누가 뭐라고 말할 수 없다”고 한다. 원가 인상 폭은 크지 않은데도 각 제약업체들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약값에 날개 달렸네
    의약분업 이전보다 제품가격을 4배나 올린 A제약업체 한 관계자는 “IMF 체제 당시의 금융차입 비용과 광고비 증가, 추가 성분 투입 등이 가격 인상의 원인이 됐다. 그러나 약값 인상은 자율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므로 원가를 공개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낱알판매 금지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낱알판매가 금지되면서 일반의약품에 의한 약화 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한두 번 먹고 남은 일반의약품이 집 안 서랍 속에 가득 쌓이면서 일반인들이 임의로 약품을 복용하다 화를 입는 경우가 다반사로 일어나는 것.

    지난 신정연휴 집에 있는 약을 잘못 먹었다 화장실에서 살다시피 한 최모씨(34)가 바로 그런 경우. 감기 몸살로 달아오른 체온을 떨어뜨리기 위해 먹은 해열제가 알고 보니 변비약이었던 것. 안 그래도 온몸이 쑤셔 못 견딜 상황인데 설사까지 계속되는 바람에 최씨는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대한약사회 박석동 이사는 “일반의약품이라고 부작용이 없는 것이 아니다. 집 안에 방치된 의약품을 어린아이가 먹거나 성인이라도 전문가인 약사의 복약지도 없이 임의로 유사 증상에 복용할 경우 약화 사고의 우려가 높다. 오래돼 변질된 의약품을 먹을 경우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같은 진통제라도 소염진통제와 해열진통제가 구분되며, 소염진통제도 증상에 따라 사용처가 각기 다르다. 따라서 약사의 처방 없이 먹었다가는 발열이나 위장장애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실제로 대한약사회는 최근 일반의약품 약화 사고에 따른 문의가 하루 수십건씩 잇따르자 약사회 인터넷 홈페이지에 1만여개에 이르는 일반의약품의 효능과 용법을 모두 검색할 수 있는 ‘드럭 인포메이션’ 코너를 개설했다. 가정에 있는 약을 제대로 알고 먹게 하기 위한 것이다.

    결국 처방전 없이 먹는 일반의약품의 오·남용을 막는다며 만들어 놓은 낱알판매 금지제도는 제약업체의 배만 불린 채 약화 사고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의사협회에서 우려했던 일반의약품의 혼합조제를 약사도 아닌 일반인들이 행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우석균 정책실장은 “일반의약품은 한두 번 먹는 약품이지 장기 복용약품이 아닌데도 낱알판매를 금지한 것은 문제가 많다. 집 안에 쌓여 사장되는 의약품이 연 1000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될 만큼 자원 낭비가 심각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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