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21

2002.02.07

집만 짓는다고 서울 바깥으로 나갈까

환경단체 ‘수도권 광역도시계획’ 강력 반발 … 주택 공급 논리 치우쳐 난개발 초래 가능성

  • < 김진수 기자 > jockey@donga.com

    입력2004-11-11 14: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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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만 짓는다고 서울 바깥으로 나갈까
    판교를 신도시로 개발하면 녹지지역을 주거ㆍ상업 지역으로 변경함으로써 신도시를 개발하지 않는 것보다 개발밀도가 현저히 높아진다. 인접지역의 난개발 가능성도 신도시를 개발할 경우 5배를 초과하는 개발밀도를 보인다….’

    지난해 9월 정부의 판교 신도시 개발계획 확정에 6개월 앞서 한국지리교육학회지 ‘지리학연구’에 발표된 논문 ‘판교지역의 신도시 개발 여부에 관한 검증’ 중 ‘개발양상 예측’ 부분의 일부다.

    건설교통부가 1월21일 내놓은 ‘수도권 광역도시계획(안)’에도 이런 우려가 들어맞을 것이라 보는 시각이 많다. 아직 이 계획안에 기초한 시뮬레이션(모의실험)이 행해진 바 없지만, 환경단체들은 계획안 발표 직후 계획 철회를 주장하는 성명을 잇따라 내놓았다. 환경정의시민연대는 ‘근조(謹弔) 그린벨트’란 극단적인 성명 제목까지 달았다.

    이번 계획안의 골자는 2020년까지 서울ㆍ인천과 경기도 내 21개 시ㆍ군의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 3754만평을 단계적으로 풀어 26만 가구의 주택을 대량 공급한다는 것. 이로써 서울 도심의 극심한 주택난을 덜어 주택가격을 안정화하고, 수도권의 서울 의존형 단핵공간구조를 인천ㆍ수원ㆍ파주ㆍ동두천ㆍ평택ㆍ남양주ㆍ이천 등 7개 거점도시로 분산한 다핵공간구조로 개편한다는 구상을 담았다.

    집만 짓는다고 서울 바깥으로 나갈까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환경단체들과 도시계획전문가들의 비판은 바로 이 계획의 실행이 본 의도와 달리 수도권 과밀화를 더 부추길 것이란 비관적 전망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비판의 핵심은 계획안이 주택 수급논리에 치우친 결과 교통ㆍ환경ㆍ생태적 고려가 미흡해 국토의 균형발전을 해친다는 것.



    환경단체들은 우선 광역도시계획이 실행되면 수도권 인구집중이 한층 심화될 것이라 주장한다. 2153만명(1998년 기준)인 수도권 인구가 2020년엔 최대 2570만명까지 폭증한다는 것. 이에 대해 건교부는 이번 계획안 수립과정에서 그린벨트 해제대상 지역에 대한 수도권 이외 지역 인구의 신규유입을 전혀 가상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러나 지난해 8월 국토연구원이 작성한 전국 7개 대도시권 광역도시계획 및 개발제한구역 조정방안엔 2020년도 수도권 ‘계획’인구가 2420만∼2570만명으로 명시돼 있다. 이는 바로 환경운동연합이 이번 계획의 실현으로 현 부산권 인구(434만명)에 근접하는 417만명의 인구유입이 야기될 것이라 경고하는 근거다.

    그린벨트 해제 후 주택을 대규모로 짓겠다는 계획도 양대 선거를 의식, 그린벨트 내 주민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고 건설경기까지 띄워보려는 선심성 정책이란 지적이다. 주택 건립으로 서울의 저소득층과 무주택자의 서울 밖 이주를 유도한다는 발상은 한낱 ‘장밋빛 기대’에 그칠 것이란 얘기다. 일터에서 멀지 않은 주거지를 선호하는 저소득층의 특성상 대중교통 확보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이주가 불가능한 데다, 설령 이주하더라도 이들이 떠난 서울 도심엔 수도권 외 지역민들이 다시 유입되는 ‘주택 여과과정’이 반복돼 결국 수도권 영역만 ‘평면 확대’된다는 것.

    성신여대 지리학과 권용우 교수(경실련 도시개혁센터 대표)는 “교통문제가 해결돼도 임대주택 밀집지의 사회기반시설이 충분치 않고, 자족기능을 지니지 못하면 한낱 베드타운에 불과하다”며 “주택·교통·사회기반시설에 대한 계획이 연동돼야 도시정책의 현실성이 보장되는데 이번 계획안의 경우 삼자가 각기 따로 놀고 있다”고 비판한다.

    환경단체들은 또 그린벨트 해제지역 개발과정에서 환경평가 결과 보전이 필요한 지역인 1∼2등급지가 훼손돼 난개발이 초래될 것이라 우려한다. 이에 대해 건교부 도시정책과 관계자는 “해제대상 지역엔 1∼2등급지가 포함되지 않고 환경적 가치가 낮은 4∼5등급지만 해당되므로 환경훼손 위험은 없다”고 반박한다.

    그럴까. 건교부 등의 용역의뢰로 이번 계획안 수립에 참여한 국토연구원 박재길 연구위원은 “국책사업용지(고속철도 역세권 개발과 국민임대주택 건설)의 임대주택 건설을 위한 기본단위 면적에 자연지형 여건에 따라 1∼2등급지가 일부 섞일 수 있다. 상수도와 도로 조성시에도 지형 여건상 1∼2등급지를 완전히 배제하기 힘든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밝힌다.

    그럼에도 수도권 과밀화 현상만은 심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건교부와 국토연구원의 항변이다. 2002년 현재 2190만명에 육박한 수도권 인구가 실제 2020년 2570만명에 이르더라도 그만한 인구를 전면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최대치’를 고려해 그린벨트를 해제한 ‘유연한’ 계획이 이번 계획안이라는 것. 더욱이 현 계획안이 확정돼도 향후 시ㆍ군 단위 도시기본계획 수립과정에서 그린벨트 해제범위가 일부 조정될 여지가 있는데도 환경단체들이 단정적 비판에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계획안에 대한 생태학적 측면에서의 반박 또한 만만찮다. 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8월부터 수도권 그린벨트 해제대상 지역의 현장 모니터링에 착수해 해제가 부적합한 대표적 사례 두 곳을 확인했다고 1월25일 ‘주간동아’에 밝혔다. 그중 하나로, 재래염전이 있던 시흥갯벌(200만평)의 경우 건교부가 쓸모없는 폐염전 부지로 분류해 개발 1순위인 4∼5등급지로 평가됐으나 경기도 내 환경단체들이 갯벌을 지키려 ‘땅 한 평 사기’ 운동을 펼치고 있을 정도로 해양생태학적 가치를 지녔다는 것. 또 시흥시 정왕ㆍ월곡ㆍ장현동에 걸친 200만평의 시화 토취장 부지는 1986년 시화호 간척사업 1단계 공사를 위해 건교부 산하 수자원공사가 토취장으로 사용, 1988년에 이미 120만평의 토취를 끝내고도 1998년까지 10년간 70% 이상을 원상복구하지 않고 방치한 지역으로 1997년 불법 용도변경 사건으로 수자원공사 직원이 구속되기도 한 ‘문제지역’이란 것이다. 환경운동연합 맹지연 환경정책팀장은 “아직 그린벨트 해제지역의 구체적 입지가 전면공개되지 않은 상태여서 이에 대한 정보공개 요구 및 대대적인 실사작업을 벌여나갈 것”이라 말했다.

    건교부는 전체 그린벨트 해제대상 3754만평 중 31%인 집단취락(1158만평)의 개발제한 조치를 올 하반기부터 우선 해제하고, 이번 계획안이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확정되면 내년 상반기부터 나머지 그린벨트도 순차적으로 해제할 방침이어서 강력한 정책감시 활동을 천명한 환경단체들과의 장기적 대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린벨트를 둘러싼 대정부 불신감이 말끔히 씻길 날은 아직도 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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