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4

2001.12.20

다복한 8남매 17년 만에 환한 웃음

이순남씨 뉴욕 거주 넷째 노미언니 찾아 … 내년 4월 귀국 ‘혈육의 정’ 나눌 계획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2-08 15: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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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복한 8남매 17년 만에 환한 웃음
    이춘자(59), 순자(56), 붓돌(55), 노미(53), 순남(50), 혜근(47), 순희(43), 호근씨(40) 8남매. 자식, 손주들까지 다 모이면 강당이 필요하다고 할 만큼 다복한 이씨 댁이지만, 지난 17년 동안 비어 있는 한 자리리 때문에 늘 허전할 수밖에 없었다. 넷째 이노미씨와 연락이 끊긴 지 17년째. 1974년 넷째 이노미씨가 미국인 토머스 잼피노씨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간 후 84년까지는 전화와 편지가 오갔다. 그러나 서로 이사를 하면서 연락처가 바뀐 뒤 어느새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한국에 형제들이 많으니까 미국의 언니가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았을 텐데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이 없는 것을 보고 무슨 일이 생겼구나 했습니다.”(이순남)

    우체국에서 우연히 ‘주간동아’ 캠페인 기사를 본 것은 이순남씨의 남편 권기문씨였다. “드디어 미국의 처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권씨가 본 것은 일곱 번째 당첨자인 김형순 할머니(72)가 여동생 김효순씨(65)와 39년 만에 통화하는 장면이었다.

    다복한 8남매 17년 만에 환한 웃음
    이씨의 사연이 접수되자마자 시카고의 강효흔 탐정은 찾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당장 착수하겠다고 소식을 보내왔다. 가족들이 기억하는 이노미씨 부부의 영문 철자와 옛 주소지 기록이 정확한 데다, 잼피노라는 성이 미국에서도 흔치 않기 때문에 동명이인이 나올 가능성이 적었다. 강탐정이 추적에 성공했을 때 이노미씨 가족은 여전히 뉴욕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전화를 걸어 이노미씨를 찾았을 때는 뜻밖에도 본인이 아니라며 통화를 거부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귀찮게 걸려오는 세일즈 전화 때문에 방어적으로 일단 아니라고 대답했던 것. 곧 한국의 여동생 순남씨, ‘꼭지’라는 별명을 가진 여동생이 찾고 있다는 사연을 설명하자 노미씨는 금세 눈물을 흘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살고 있는 이순남씨 댁.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더니 순남씨가 직접 받았다. “주간동아입니다. 축하합니다” 이 한 마디에 “어머” 소리만 하더니 얼른 수화기를 남편에게 건넸다. 나중에 이씨는 놀라움과 기쁨 때문에 목이 메어 남편에게 넘겼다고 고백했다.

    8남매 중에서도 특히 넷째 노미씨와 다섯째 순남씨 자매는 친구 같은 사이였다고 한다. 노미씨가 결혼 후 몇 년간 한국에 살 때 미혼이던 순남씨는 언니집에서 큰조카 토미를 길러주기도 했다. 순남씨가 권기문씨를 만나 약혼했을 때 노미씨는 가구를 장만해 주며 축복했다. 동생은 오랫동안 언니와 연락이 두절되자 차마 언니가 사준 헌 가구를 버릴 수 없어 이사 때마다 끌고 다녔다. 손잡이가 떨어져나가고 여기저기 긁힌 상처가 난 화장대를 볼 때마다 언니 생각을 했다.

    82년 노미씨는 순남씨네 가족을 미국으로 초청했다. 그러나 순남씨는 권숙(27), 윤희(25), 평구(22) 어린 3남매를 두고 갈 수 없어 남편 권기문씨만 미국에 가서 두 달 넘게 여행했다. 한국의 가족을 그리워하던 노미씨는 여동생 가족에게 이민 수속을 밟으라고 강력히 청하기도 했다.

    “미국 여행에서 돌아와 실제 이민 서류를 다 만들었는데 마지막에 포기했어요. 그것이 처형네 가족과 마지막 만남이 될 줄은 몰랐지요.”

    연락이 단절되기 전 노미씨를 마지막으로 만났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권씨 역시 처형에 대한 생각이 각별했다. 여행 때 찍어온 조카 토미와 리사, 그리고 처형의 사진을 냉장고에 붙여놓고 어떻게 찾을 수 있을지 궁리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경기도 단장직을 맡고 있는 권씨는 내년쯤 촬영을 핑계로 미국에 가 수소문이라도 해볼 참이었다.

    냉장고에 붙어 있던 사진 속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쓴 개구쟁이 토미(26)는 벌써 결혼해 아들 하나를 두었다. 현재 페더럴익스프레스에 근무한다. 자동차 보닛 위에서 미소 짓던 통통한 꼬마 아가씨 리사(23)는 메소커뮤니티 대학에서 사회사업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다. 한국의 가족과 연락마저 끊기고 외로움이 컸던 노미씨가 뒤늦게 얻은 막내아들 티모시(16)는 고등학생이라고 한다. 잼피노씨는 브룩데일 병원 안전요원이며 노미씨 역시 가게 캐시어로 일하며 알뜰히 저축해 3년 전 큰 집도 사는 등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내년 4월 순남씨의 장녀 권숙씨의 결혼에 맞춰 노미씨는 20여년 만에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내후년 맏언니 이춘자씨의 회갑 때는 한국의 형제들이 모두 미국으로 가자는 거창한 계획을 세워놓았다. 순남씨 형제와 가족이 모두 미국에 가려면 비행기 한 대는 전세내도 되겠다며 활짝 웃었다.

    아홉 번째 사연도 성공리에 마무리지은 강효흔 탐정이 신청자들에게 다시 부탁하는 것은 찾는 사람의 영문 철자를 정확히 알면 성공률이 아주 높다는 것. 마지막으로 편지를 주고받은 미국 주소까지 알면 확률은 80%. 이것만 확실히 알고 있다면 헤어진 지 너무 오래되었다고 절대 실망할 일이 아니다. 주간동아는 열 번째 당첨자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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