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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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2전2패 ‘巨野의 수난’

‘교원정년·검찰총장 탄핵안’ 잇단 악수 … 지도부 비판에 자민련과도 결별 ‘안팎 흔들’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4-12-08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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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2전2패 ‘巨野의 수난’
    12월4일: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아주 훌륭한 분이다.”(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12월7일: “우리 당은 (탄핵안 지지해 달라고 자민련에) 애걸복걸하지 않는다.”(권철현 대변인)

    12월7일 오후: 이재오 총무, 의원회관에서 자민련 의원 상대로 탄핵안 지지 부탁.

    12월8일 오전 9시30분: “김종필 총재의 기교와 변신을 누가 따라가겠나.”(이회창 총재)

    12월8일 오전 10시: 검찰총장 탄핵안 부결.



    12월9일: “자민련은 민주당 2소대, 검찰 하수인이다.”(이재오 총무)

    검찰총장 탄핵안 처리와 관련, 한나라당 지도부 주요 언행을 시간대별로 정리한 것이다. 뭔가 ‘좌충우돌’한다는 느낌을 관전자들에게 주는 듯하다.

    한나라당은 교원정년 연장법안 연기에 이어 검찰총장 탄핵안 가결에 실패했다. 당 지도부는 “우린 떳떳하게 행동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당 안팎의 시각은 곱지 않다. “결과도 나빴고 과정도 나빴다”는 평가가 나온다. “후유증이 클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된다. 몇몇 당내 인사들은 한나라당의 이번 2연패 과정을 복기(復棋)하며 그 뒷얘기들을 전했다.

    한나라당 2전2패 ‘巨野의 수난’
    12월8일 오전 한나라당 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탄핵안 처리 무산에 대한 속마음을 나눴다. 김동욱 의원은 전화 인터뷰에서 “당 지도부에 대한 비판이 많이 나왔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치란 ‘기브 앤 테이크(주고받기)’인데 야당끼리 공조한다면서 자민련 입장을 너무 안 세워준 게 이런 결과를 불렀다는 의견이었다.”(김의원)

    한나라당 고위 당직자 A씨는 좀더 구체적으로 분석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우리는 세 번 잘못했다”고 밝혔다. “재·보궐 선거 전 신승남 검찰총장 동생 문제가 터져나온 직후 총장 탄핵안을 밀어붙여야 했다. 그때 여론 호응이 가장 컸다. 내부적으로 당 지도부 L의원이 그렇게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보궐 선거 후엔 수순을 잘못 밟았다. 교원정년 연장 공조를 한나라-자민련 원내 총무 간에 최우선 정책공조 의제로 잡은 것이 문제였다.”

    탄핵사안과 관련, 한나라당의 ‘마지막 실책’은 교원정년 연장 번복 과정이었다는 게 A씨의 설명. “이회창 총재는 러시아에서 교원정년 연장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총재단회의와 의원총회 의견 수렴을 통해 유보 방침으로 돌아섰다. 이총재의 이런 점진적이면서 절차를 중요시한 ‘U턴’은 당내 갈등을 최소화한 최선책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 가지가 누락됐다. 자민련 설득 작업을 빠뜨리고 만 것이다.”

    ‘총재 회동’까지 추진한다는 각오로 성의를 보이면서 국민 여론을 근거로 자민련을 설득했다면 쉽게 넘어갈 일이었다는 것. 자민련이 이 문제를 총장탄핵 사안과 연계하는 것을 사전 차단할 수 있었는데 기회를 놓쳤다는 설명이다.

    국회 교육위 간사인 한나라당 황우려 의원은 12월7일 기자에게 “어어 하다 모습이 우습게 됐다”고 말했다. 교원정년 연장 결정과 유보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보여준 행보에 대한 당내 불만의 한 종류다. 교육위 소속 한나라당 한 의원은 “결과적으로 지도부 전략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의 설명. “교원정년 연장 사안을 처리하기로 한 것은 지도부가 결정한 일이었다. 교육위 소속 의원들은 지도부 결정에 따른 것뿐이다. 지도부만 믿고 조용히 법안 처리되는 줄 알고 있다 역풍을 맞았다. 여당 지도부로부터 사전양해를 구했다고 하니 그 대가로 여당에 다른 선물까지 주지 않았겠는가.”

    교원정년 연장법안 처리에 대해 당내에서 몇 차례 ‘위기 경보’가 나왔지만 한나라당은 국민 여론을 점검해 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총재 측근 K의원은 “힘으로 밀어붙여 힘에 의해 좌절되는 과정이 ‘패배한 자에 대한 동정’까지 희석시키고 있다”고 우려했다. “교원정년 연장을 통해 한나라당이 실패한 DJ 개혁의 대안 세력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려 했다. 검찰총장 탄핵은 대권가도의 장애물 제거 성격이 강했다. 두 사안은 거야 구도의 ‘명분’과 ‘실리’를 대표한 셈이다. 그런데 중차대한 두 가지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K의원)

    2전2패 후 한나라당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여론의 동향’이다. 모 방송사 설문조사 결과 한나라당과 민주당, 이회창 총재와 이인제 고문 사이의 지지율 격차가 상당히 좁혀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이 잘 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과반을 넘어섰다.

    한나라당은 자민련과의 공조관계에도 큰 상처를 입었다. 앞으로도 ‘-1표의 아쉬움’을 두고 두고 느끼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거기에다 한나라당은 적대관계로 돌아서는 자민련이 단 1표의 절묘한 캐스팅보트를 행사하며 ‘괴력’을 발휘하도록 키워주기까지 했다. 이 때문에 ‘자민련 고사’를 위한 ‘핵심 카드’였던 대전 집회의 ‘약효’ 역시 반감되고 말았다.

    한나라당엔 현재 민주당, 자민련을 향한 격앙된 분위기가 강하다. 그러나 이총재 측근 L의원은 “지도부가 ‘초초강수’를 뒀다”며 당 지도부 책임론을 폈다. 지도부 다른 K의원은 “브레이크가 없다”고 말했다. 지도부에 대한 직·간접적 불만 표출은 일부 중진의원, 개혁세력 의원의 선을 넘어 평의원, 일부 총재 측근 의원에게까지 확산되고 있다. 한 의원은 “2전2패는 인재(人災)였다”고 말했다. “자민련과 특별히 앙금 쌓은 일도 없었고 외부에서 한나라당을 뒤흔드는 악재도 없었는데 상황을 꼭 이렇게까지 몰고 갈 수밖에 없었느냐”는 시각이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국민의 뜻에 따라, 원칙대로, 정도대로 정치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련 정우택 의원의 측근은 “-1석도 극복하지 못하는 정치력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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