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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들이여, 섹스를 탐하지 말라”

부부강간죄 제정 관련 뜨거운 공방 … 법 해석·남녀 입장 차 커 합의점 도출 힘들 듯

  • < 박은경/ 자유기고가 > siren52@hanmail.net

“부부들이여, 섹스를 탐하지 말라”

“부부들이여, 섹스를 탐하지 말라”
부부강간’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아내(또는 남편)가 원치 않는데도 폭행이나 강압적 수단을 동원해 성관계를 강제했을 때 이를 강간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과 부부간 은밀한 성적 문제를 법으로 처벌하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

우리 사회 현실에서 다소 생소한 단어인 ‘부부강간’은 지난 8월 말 한국여성개발원 주최로 열린 ‘여성폭력 방지 종합대책 시안 공청회’ 직후 사회 이슈로 급부상했다. 이날 공청회는 성폭력의 친고죄 폐지와 더불어 부부간 강간죄 명문화 등을 골자로 했다. 이후 ‘남편과 아내 사이에 강간죄가 성립할 수 있는가’라는 법적 물음에서부터 ‘성을 둘러싼 권력투쟁’이란 다소 과격한 주장에 이르기까지 일반인은 물론 법조계와 학계의 전문가까지 가세해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어디까지 부부강간?’ 애매모호

공청회를 계기로 여성개발원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엔 수많은 네티즌의 글이 떴다. ‘도대체 여성은 어느 정도까지 보호받기를 원하나? 부부간 잠자리도 법으로 따지고 양해하며 해야 하는가’(ID 궁금) ‘만약 (부부강간죄를) 시행한다면, 왜 40~50대 남성 사망률이 여성의 3.3배이며 세계 1위인지의 원인이 분명해진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와 과중한 노동, 마누라의 무리한 섹스 요구가 그 원인이다’(airforce498) ‘책임감 때문에 하는 성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모르나 보다. 남자들은 얄팍한 의무감과 책임감 때문에 하기 싫고 피곤해도 (성관계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 사회에서 원론적 책임은 다 남성에게 있고, 여성은 피해자다. 남성들이여! 책임감을 던져버리자’(indieraver 2002) ‘나는 사대부 자손으로 작금의 우리 행태가 옳지 않다고 본다. 부부간 강간죄 도입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불만이 많은 터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성문제에까지 법이 개입해선 안 된다’(김양자).

부부강간죄에 반대하는 격앙된 남성의 주장이 대다수인 가운데 법적 처벌을 찬성하는 주장은 극히 드물 뿐 아니라 매우 조심스럽다. ‘간통죄처럼 부부강간죄에서도 여성을 처벌해야 하는 것인가. 남편에게 강간당하는 여성의 실상을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어느 (TV)프로그램을 보니까 부인이 집에서 남편을 가만두지 않는 것과는 차원이 조금 다르더라. 폭행하고 모멸감을 주며 동물 취급하고…’(jisougo).



이런 일련의 반응에 대해 공청회를 주최한 여성개발원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눈치다. 공청회 시안 마련에 참여한 한 연구원은 “공청회 의미는 법적 규제에 앞서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것이지, 공청회 때 발표한 시안이 곧 법 제정을 의미하진 않는다. 어디까지를 부부강간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사실 부부강간의 심각성이 국내에서 처음 불거진 것은 지난해 발생한 한 사건이 계기가 되었다. 결혼생활 12년 동안 남편의 폭력과 성적 학대에 시달린 신모씨(34)가 남편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 그는 남편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친정으로 피신한 뒤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신씨의 남편은 그녀가 머물던 친정으로 찾아가 이혼소송 취하를 요구하다 거부당하자 흉기로 신씨를 위협해 강제로 옷을 벗긴 뒤 강간하려 했다. 이에 신씨는 옆에 있던 흉기로 남편을 찔러 살해했다. 사건 직후 서울여성의전화는 신씨의 무죄를 주장하며 구명운동을 펼쳤고, 신씨는 살인혐의에서 벗어나 불구속되었다. 이 사건은 여성계가 부부강간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계기를 제공했다.

“부부들이여, 섹스를 탐하지 말라”
그러나 일부 남성은 “말이 부부강간이지 아내가 남편을 힘으로 누르고 성관계를 갖는 경우가 얼마나 있겠느냐. 결국 남성 대다수를 가해자로 몰려는 행위다. 극소수의 비정상적 행위를 일반화해 다수의 행복한 가정을 불미스럽게 만드는 게 옳은 일인가”라며 여성계를 향해 곱잖은 눈길을 보낸다. 반면 여성계는 “뿌리깊은 가부장제로 인해 동등해야 할 부부관계에서 희생을 감수하는 여성이 우리 사회에 그만큼 많다는 방증이다”며 반박한다. 게다가 아직 부부 사이 강간 개념이 국내법상 인정되지 못한 실정에서 실제 피해당하는 여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 여성계 분석이다. ‘부부간 성폭력’ 또는 ‘아내 강간’과 관련한 각종 보고서와 통계를 보면 남편에게 강간당하는 여성의 수가 결코 적지 않다.

지난 98년 기혼남녀 28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부부간에 발생한 성폭력이 전체의 33.6%에 달한다. 경북대 신성자 교수(사회복지학)가 지난 99년 발표한 ‘아내 강간 발생과 관련 변수 파악 및 인식’ 보고서에서도 부부를 포함한 기혼남녀 224명(남성 99명, 여성 125명) 중 남성의 42.4%가 아내를 강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여성의 36%가 남편에게서 강간당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 보면 ‘단순 강압에 의한 강간’이 가장 많은 35.4%를 차지했고, ‘구타 동반 강간’이 12.1%, ‘가학적 강간’이 10.4%인 것으로 집계되었다. 신교수는 조사과정에서 알게 된 아내 강간의 유형별 대표 사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먼저 단순 강압에 의한 강간. “남편이 억지로 나를 밀쳐서 뉘였다. 나는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성관계 전 어떤 친밀한 행동이나 부드러움도 없었다. 남편은 그냥 삽입했고, 당시 그런 지겹고 싫은 일을 피하고 싶었다.”

구타 동반 강간은 앞 사례보다 더 심각하다. “남편은 나와 성관계를 하면서 때리거나 잡아채는 등 사나운 행동을 한다. 어떤 때는 때린 후 강제로 성관계를 갖기도 한다. 심지어 머리를 잡고 누르며 강제로 오럴섹스를 시킨 적도 있다. 남편의 완력과 폭력적 행동에 굴복해 시키는 대로 내버려 둘 때가 많다.”

그런가 하면 가학적 강간은 행동특성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남편은 내 몸을 다양한 방법으로 아주 난폭하게 다루며 괴상한 방법으로 성관계를 하거나 괴상한 성적 행동을 하며 흥분한다. 자신의 거칠고 기괴한 성적 행동에 내가 고통받고 괴로워하는 걸 오히려 즐기는 것 같다.”

이외에도 포르노를 보며 화면 속 체위를 요구하는 경우, 구타와 더불어 여성 성기에 각종 이물질을 쑤셔 넣는 행위, 집에 다른 가족이 함께 있다는 이유로 여러 곳의 여관으로 끌고 다니며 강간한 경우 등이 각종 상담기관을 통해 보고되었다. 성폭력상담소 조중신 부장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강요받거나, 오럴섹스 또는 항문섹스를 요구받는 등 수치심과 모욕감을 자극하는 성관계를 요구하는 남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는 상담전화가 종종 있다. 이 경우 대개의 여성은 남편에게 얘기하길 몹시 힘들어 한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 아내 입장에선 몹시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부부들이여, 섹스를 탐하지 말라”
여성의전화 정춘숙 사무처장은 “우리 상담소는 여성이 가정폭력을 피해 쉴 수 있는 쉼터를 개설하고 있다. 이 중 서울쉼터에만 1년에 100여 명의 여성이 찾아든다. 이 가운데 30~35%의 여성이 남편에게 폭행 후 강간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남편의 강압적 성폭력을 피하면 더 맞을까 두려워 그냥 참는 경우도 있다. 이런 성폭력이 여성에게 주는 신체·정신적 피해는 매우 심각하다”고 그는 덧붙인다. 더욱이 신뢰와 애정을 바탕으로 한 부부사이에 무방비 상태에서 이뤄지는 강간의 정신적 충격과 후유증은 클 수밖에 없다.

배우자에게 강간당함으로써 파생하는 문제점에 대해 서구에선 이미 다양한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즉 이들 여성은 구토, 타박상, 근육긴장, 두통, 심한 피로, 성기 부분의 상처, 방광염 등의 증상을 호소할 뿐 아니라 유산과 사산, 불임까지를 포함하는 신체적 영향을 받는다는 것. 정신적 피해도 몹시 큰 것으로 보고되었다. 불안, 충격, 강한 두려움, 우울증, 자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증가, 자살충동 등의 정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신과 전문의 신승철 박사는 “남편의 폭행이나 강압에 의해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하고 이런 상황이 지속되어 자존감이 심하게 상처 받으면 분노 처리가 어려워진다. 특히 남편에 대한 배신감과 불신감이 심화하면 성적 기피현상마저 보이고, 남성혐오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진단한다.

부부강간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보는 여성계는 법적으로 보장한 성적 자기결정권과 인권을 앞세워 부부강간에 대한 법적 처벌근거 마련에 힘쓰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결혼은 합의한 성적 관계를 전제로 한다”는 이유로 부부강간은 있을 수 없다고 맞선다. 이에 대해 최인호 변호사는 “법적 부부 사이라면 잠자리를 같이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24시간 언제든 남편이 원할 때 응할 의무는 없다. 남편 역시 아내에 대해 마찬가지다. 부부간 성관계는 상호 인격존중을 바탕으로 한 의무다”고 지적한다. 그런데도 사회 한쪽에서는 “기존의 폭행죄로 부부강간 처벌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부부강간죄가 성립하면 법적 처벌을 남용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 부부강간을 둘러싼 논란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전망이다.





주간동아 2001.09.27 303호 (p48~50)

< 박은경/ 자유기고가 >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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