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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권투 “아! 옛날이여”

3D 스포츠 전락 ‘갈수록 사양길’… 체육관마다 선수난, 챔프 꿈꾸는 청소년 극소수

  •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프로권투 “아! 옛날이여”

프로권투 “아! 옛날이여”
체육관마다 선수가 없어요. 요즘 애들, 운동 안하려고 해요.” 한국권투위원회 이세춘 사무총장. ‘챔프’를 꿈꾸는 어린 선수들을 만나려 한다는 기자의 말에 손사래부터 친다. 링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부와 명예를 한손에 거머쥐겠다는 ‘헝그리 복서 스토리’는 찾기 쉽지 않으리라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하겠다는 친구들이 보배지요. 아직도 권투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정말 대견한 일이고요.” 선수가 귀하다는 건 어찌 보면 한국 프로권투가 그만큼 위기라는 또 다른 반증이었다.

“춧! 춧! 춧춧춧!” 아직 더위가 남아 있는 8월 말 한낮의 서울 용산구 한일 체육관. 매서움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다부진 주먹이 정신없이 샌드백을 두드린다. ‘내가 저렇게 맞으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무더위가 싹 가신다. “왜 샌드백을 칠 때는 입으로 소리를 내느냐”고 기자가 물었다. 아직 앳된 얼굴의 선수가 비오듯 땀을 흘리며 숨을 가다듬는다. “한번에 힘을 모으는 거예요. 호흡하고 주먹을 일치시키는 거죠.” 두 달 전 챔피언의 꿈을 안고 서울 땅을 밟았다는 10대 복서 고혁진 선수(18). 아마추어로는 세계 챔피언의 길이 너무 멀다고 판단해 다니던 학교(충북체육고)를 그만두고 상경해 지난 7월 프로테스트를 통과했다.

스폰서 못 구해 시합 연기 예사

 처음에는 당연히 ‘자식이 맞는 꼴을 보고 싶지 않은’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그렇지만 남들은 가지 않으려는 길, 남들이 꾸지 않는 꿈에 대한 그의 열망은 확고했다. 눈물을 흘리며 말리던 어머니는 지금 서울에서 그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다.

로드 워크, 섀도 복싱과 샌드백 치기, 펀치볼, 농구공을 이용한 복부 맷집 강화훈련, 그리고 스파링. 새벽 6시에 시작한 훈련을 마무리하는 것은 저녁 6시로 하루 꼬박 12시간의 강행군이다. “학교 다닐 때는 스피드 하나면 충분했어요. 프로에서는 다르죠. 맷집·펀치 모두 필요하거든요.” 짧은 기간이지만 아마추어 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훈련 강도와 스타일에 벌써 발전이 느껴진다며 뿌듯해한다. ‘세계 챔피언이 되면 뭐가 좋을 것 같으냐’는 기자의 물음에 고선수는 냉큼 말한다. “그냥 다 좋을 것 같아요. 중학교 때부터 공부 못한다고 많이 혼났거든요. 나도 뭔가 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프로권투 “아! 옛날이여”
새벽 6시30분, 서울 한남동의 단국대학교 운동장. 머리를 짧게 깎은 한 선수가 주먹을 휘두르며 내달리고 있다. 400m 트랙 30바퀴, 12km를 달리는 선수의 얼굴이 점점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더위가 시작되기에는 이른 시각이지만 그의 온몸은 이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하늘이 노란색이 돼요. 권투 안하고 싶어져요.” 외모는 영락없이 한국 사람이지만 아직 한국말이 서투른 이 사람은 몽골에서 건너온 용병 선수 김바이라(20·몽골이름 칸바트 바이라 톡토). 지난해 12월, 몽골보다 권투수준이 앞선 한국에서 권투를 배우기 위해 왔다.

“몽골에선 아직도 세계 챔피언이 스타죠. 이 친구도 몽골 가면 여성 팬들이 줄줄 쫓아다녀요.” 허병훈 사범의 말이다. 몽골 외무부 장관이 방한 길에 몸소 체육관을 찾아올 만큼 차세대 주자로서 그에게 거는 고국의 기대는 크다. 이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몽골 선수가 김바이라 선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99년 6월 WBA 슈퍼페더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던 라크바 심(30) 선수도 이 체육관 소속. 몽골 정부가 외교관 여권을 발급해 줄 정도로 몽골 국내에서는 ‘국민적 영웅’으로 대접 받는 라크바 심 선수는 김바이라 선수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다.

허사범이 이야기하는 몽골 출신 선수들의 강점은 우선 탁월한 심폐 기능. “주로 고원지대에서 자랐기 때문이죠. 3분을 뛰고 1분을 쉬어야 하는 권투에서는 그 1분간 얼마나 빨리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더욱이 몽골 출신 선수들은 대부분 인파이터다. “아무리 맞아도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게 특징이죠. 반드시 챔피언이 되겠다는 근성이 있으니까요.”

프로 데뷔 이래 김선수의 전적은 8전7승1패 7KO다. 지난 5월 한국 챔피언 강기동 선수와의 타이틀전에서 99년 프로 데뷔 이래 첫 패배(4회 TKO)를 맛봤다. “아무 생각 없었어요.” 첫 패배 때의 소감을 묻자 가뜩이나 한국말이 쉽지 않은 김선수는 더욱 말을 아낀다. 그는 자신이 진 경기의 비디오를 50번도 넘게 보고 또 봤다. 세계챔피언이 되기 전에는 고국 땅을 밟지 않겠다는 각오를 되새긴 것도 패배 직후였다.

김선수가 삐뚤삐뚤한 한글로 적어주는 고향마을의 이름은 돈롯. 몽골 초원의 전통 천막가옥인 겔(gel)에 살며 말을 달리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시아경기대회 레슬링 금메달리스트기도 한 아버지의 영향으로 시작한 권투를 통해 화려한 인생을 꿈꾸며 한국을 찾았다. 99년 서울컵 아마추어국제대회에 출전했다가 서울 한남체육관 김한상 관장이 발굴한 김선수는 체육관측과 한국권투위원회의 도움으로 프로에 데뷔했다. 그의 성은 김관장을 따른 것이다.

“외국 국적의 선수가 한국 챔피언에 도전한다는 것에 대해 마땅치 않아 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우리도 이왕이면 한국 선수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고요. 그렇지만 지금처럼 제한된 국내 선수층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야구도 농구도 모두 용병을 수입하지 않습니까.” 이대로 가다가는 한국 권투는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게 허사범의 생각이다. 그러니 외국선수라도 데려다 맥을 유지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전성기 땐 챔프만 되면 대통령 면담

1980년대, 일주일에 두 번씩 어김없이 브라운관을 채운 수요권투와 토요권투 앞에서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 시절의 복서들은 그야말로 영웅이었다. 자그마한 우리 선수들이 올려 붙인 어퍼컷 한방에 외국 선수들이 벌렁 나자빠질 때 사람들은 벅찬 감격을 느꼈다. 마침내 세계 챔피언을 ‘먹은’ 선수를 태운 지프차가 광화문 거리를 달릴 때면 하늘에는 색색의 꽃가루가 날렸다.

“그때가 전성기였지. 챔피언만 먹었다 하면 청와대에 가는 게 당연했으니까. 박정희 대통령부터 김영삼 대통령까지 안 만나본 사람이 없었거든.” 서울 봉천동 대원체육관의 김진길 관장(61). 이 자리에서만 25년 간 운영해 왔다는 그의 체육관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서명이 뚜렷한 공로패가 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지금 그에게는 선수가 없다. 그의 낡은 출석부에 올라와 있는 이름들은 모두 체력관리나 체중조절을 위해 운동하는 대학생이나 직장인들. 가능성이 보인다고, 신인왕전에 나가보자고 아무리 이야기해도 그들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내젓는다. “신인왕 전 가보면 절반도 넘게 심심풀이로 나와본 친구들이야.” 61년 제1회 신인왕이던 김관장의 눈길에 세월에 대한 서운함이 어렸다.

“프로권투가 다시 인기를 얻을 날이 올까요?” 기자가 물었다. “암, 오고 말고. 잔인하다, 폭력적이다 말들은 많지만, 권투만큼 원초적이고 역동적인 운동이 없어. 두고 봐. 박찬호 중계 보듯 새벽잠 설쳐가며 권투 볼 날이 꼭 다시 올 테니까.” 백발이 성성한 노권투인의 청년 못지않은 꿈이었다.





주간동아 2001.09.06 300호 (p88~90)

< 황일도 기자 >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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