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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증권 끼워팔기’에 정부 외압 있었다?

‘IMF 졸업식’ 맞춰 투신 매각 서두르다 말썽 … “증권 주주들이 투신 부실 떠안은 격”

  •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현대증권 끼워팔기’에 정부 외압 있었다?

‘현대증권 끼워팔기’에 정부 외압 있었다?
지난 8월23일 지루한 ‘샅바싸움’을 거듭하던 정부와 AIG 컨소시엄이 현대투신증권 매각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였다. 그러나 MOU 내용이 알려지자 정부의 무능을 압축적으로 드러낸 ‘굴욕적 협상’이라는 비난이 높아지고 있다. MOU대로라면 우량기업인 현대증권을 ‘끼워팔기’식으로 AIG측에 헐값에 넘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은 결과적으로 현대투신의 부실을 현대증권에 부당하게 전가하는 셈이어서 재벌개혁 원칙을 정부 스스로 포기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현대투신 매각협상이 이처럼 꼬인 것은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MH) ‘봐주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고려대 장하성 교수(경영학)는 “작년 한국투신과 대한투신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현대투신에도 함께 투입한 후 현대투신을 실질적으로 경영한 MH에게 부실 책임을 사후적으로 물어야 했는데, MH가 대북사업을 맡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이를 회피하다 보니 엉뚱하게 현대증권 주주들이 현대투신 부실을 부담하게 되었고, 그 과정에 정부의 ‘외압’까지 있었다”고 지적했다.

협상 결과 졸속 발표했다 망신살

‘현대증권 끼워팔기’에 정부 외압 있었다?
일반적으로 MOU는 작년 포드자동차의 대우자동차 인수 포기에서 보듯 구속력이 없는 문서다. 금감위는 이번에 AIG와 체결한 MOU가 구속력 있다고 밝혔지만 대부분 MOU에서는 대략적인 얼개만 합의하므로 본격적 협상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마당에 AIG가 MOU 발표 다음날 현대증권 신주 발행가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본계약 체결 전망이 어두워졌다(상자 기사 참조).

그러나 본계약을 MOU 내용대로 체결한다고 해도 문제다. 현대증권 소액주주나 시민단체가 ‘굴욕적인 해외매각’이라며 반발할 것이 뻔하기 때문.



정부로서는 협상에 어려움이 많았다. AIG 컨소시엄 외에 현대투신에 관심을 보이는 곳이 없었으며 협상이 실패했을 경우 시장에 미치는 충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로서는 ‘퇴로’가 없는 게임을 벌인 셈인데 그런 점을 감안한다 해도 정부가 지나치게 저자세를 보였다는 지적은 두고두고 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투신 매각과 관련한 MOU 내용은 간단하다. AIG 컨소시엄과 정부가 각각 1조1000억 원과 9000억 원을 현대투신에 투자한다는 것이 전부다. AIG 컨소시엄의 1조1000억 원 가운데 6000억 원은 현대투신에 직접 출자하고, 나머지 4000억 원과 1000억 원은 각각 현대증권과 현대투신운용을 통해 현대투신에 출자하기로 되어 있다. 또 정부는 8000억 원을 현대투신에 직접 출자하고 나머지 1000억 원은 현대투신운용을 통해 출자하기로 합의했다.

이 가운데 문제되는 부분은 AIG 컨소시엄이 현대증권을 통해 4000억 원을 출자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이행하기 위해 현대증권은 지난 8월23일 오전 조찬을 겸한 이사회에서 5% 우선 누적 배당이 주어지고 의결권이 있는 우선주를 주당 8940원에 발행해 AIG 컨소시엄측에 배정하고, AIG측이 납입하는 4000억 원을 현대투신에 출자하기로 결의했다. 이로써 AIG측은 현대증권 지분 29.5%를 확보, 1대 주주가 됨으로써 현대증권 경영권도 차지하게 되었다. 기존 1대 주주인 현대상선 지분은 11.75%로 낮아진다.

‘현대증권 끼워팔기’에 정부 외압 있었다?
AIG 컨소시엄은 1조1000억 원을 투자함으로써 현대투신 현대투신운용 뿐만 아니라 현대증권도 손에 넣게 된다. 게다가 현대투신이 현대택배 현대오토넷 현대정보기술의 대주주이므로 이들 세 회사의 경영권 역시 AIG컨소시엄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현대투신이라는 부실기업 하나를 AIG측에 떠넘기기 위해 현대증권이라는 우량회사를 포함, 모두 5개 회사를 끼워 판 셈이 된다.

무엇보다 현대증권에 대한 AIG측의 출자는 현대증권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내용이다.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는 현대증권 이사회 직후 “현대증권은 아무런 실익도 없이 순자산가치가 제로인 현대투신에 출자하였고, 현대증권 소액주주들은 회사에 실질적으로 자금이 유입되지 않는 유상증자로 인해 지분권이 대폭 희석되는 피해를 보았다”면서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신주 발행 가격도 문제가 되는 부분이다. 주당 8940원의 신주 가격은 시가보다 10% 할인된 금액인데다 6월 말 현재 주당 순자산가치 1만2800원에도 훨씬 못 미치는 헐값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현대증권 관계자들이 “아버지 도박 빚(현대투신 부실) 때문에 집안이 망하게 되었다고 해서 곱게 키운 딸(현대증권)을 헐값에 팔아먹는 꼴이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대증권 끼워팔기’에 정부 외압 있었다?
금감위는 이에 대해 현대증권 신주 발행 가격은 결코 낮지 않다고 주장한다. 현대증권 주가는 최근 몇 달 사이 AIG 컨소시엄 출자 기대감으로 고평가된 상태였으며, AIG 컨소시엄이 배정 받을 의결권부 우선주는 액면 기준 5%의 확정배당을 받고 추가적 배당 참여가 불가능하므로 보통주의 배당률이 5%를 초과할 경우 오히려 불리해 반드시 보통주보다 유리한 것만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금감위는 또 현대증권의 현대투신 재출자 역시 현대증권 주주이익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대증권이 부실 금융기관인 현대투신의 2대 주주인데다 수익증권 판매사라는 점 때문에 져야 하는 손해와 책임에 비해 현대투신 출자로 인한 부담은 미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현대투신이 AIG측의 선진 자산운용 기법을 통해 우량 증권사로 거듭나면 현대증권의 현대투신 출자금은 회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금감위의 이런 해명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 금감위 설명대로라면 현대증권이 자발적으로 이사회 결의를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대증권 이사들은 8월23일 이사회에 앞서 열린 21일 이사회에서 신주 발행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노조원 및 소액주주들의 거센 반발뿐 아니라 소송 사태까지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증권 이사회는 홍완순 사장을 포함, 사내이사 3명과 사외이사 3명으로 구성되었다.

홍사장이 이사회 결의를 결심한 것은 지난 8월22일 밤 무렵으로 사외이사들에게 다음날 이사회 개최 사실을 통보했다. 홍사장은 이어 이날 밤 10시경 사태 추이를 지켜보기 위해 노조 사무실을 지킨 노조 집행부를 사장 집무실로 불러 이사회 결의의 불가피성을 설명했다. 완강하게 반대한 노조 집행부는 다음날 새벽 3시쯤 홍사장의 설득을 받아들였다. 이에 앞서 홍사장은 8월22일 오후 두 차례나 금감위에 불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금감위가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시사하는 대목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이사회 안건에 대해 의결을 유보하면 최소 1주일 정도의 냉각기를 가진 다음 다시 이사회를 열어 논의하는 게 대부분인데, 현대증권이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틀 만에 다시 이사회를 열어 결의했겠느냐”면서 동정적인 눈길을 보내고 있다.

참여연대는 이에 대해 정부가 스스로 재벌개혁 정책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난한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계열사 지원을 차단하는 개혁을 추진해 온 정부가 우량 상장기업에 부당한 압력을 가해 부실 계열사를 지원하게 하고 결과적으로 주주이익을 침해했다는 주장이다. 현대증권 사외이사들 역시 금감위의 압력에 맞서 주주이익을 지키는 데 별다른 역할을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위는 이같은 지적을 제기하자 8월24일 ‘외압’ 의혹에 대한 해명자료를 낼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금감위는 이 자료에서 “현대증권 신주 발행은 외부 압력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니다. 8월22일 홍사장이 금감위를 스스로 방문해 현대증권 희망사항을 금감위에 전달했고, 금감위는 홍사장에게 ‘현대증권이 이사회 결의를 지연하면 전체 협상이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전달했을 뿐이다”고 주장했다.

금감위의 이런 해명이 있는데도 금감위의 ‘압박’ 작전이 전방위적으로 진행되었음은 현대상선 쪽에서도 포착된다. 현대증권의 1대 주주인 현대상선 역시 8940원의 신주 발행 가격이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정부의 의지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현대상선 주변에서는 “현대상선의 취약한 재무상태 때문에 금감위의 ‘압박’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현대상선 오너인 MH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볼 때 이번 협상 결과가 불리할 것도 없다는 분석이다. 현대상선의 현대증권 지분을 계속 보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실질적으로 경영권을 행사한 현대투신 부실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지 않기 때문이다. MH는 지난해 4월 말부터 불거진 현대투신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의 직간접적인 사재 출연 요구를 받아왔으나 MH는 이를 외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MH의 ‘버티기’가 성공한 셈이다.

협상 내용도 ‘굴욕적’이지만 정부는 협상 결과마저 졸속으로 발표, 국제적 망신을 자초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AIG측이 MOU 체결 하루 뒤 현대증권 신주 발행 가격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것은 현대증권 가격 문제를 확실하게 마무리짓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가 성급하게 발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

정부는 왜 이같은 ‘무리수’를 두었을까. 일부에서는 정부가 8월23일의 ‘IMF 졸업식’을 앞두고 한건 하려다 빚은 결과라고 분석한다.

실제로 정부 고위당국자들은 IMF 지원 자금을 완전 상환하는 ‘IMF 졸업식’을 앞두고 현대투신 협상 진행 상황과 상관없이 매각 발표 임박설을 흘리기도 했다. 진념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8월21일 한 조찬 강연회에서 “매각협상 결과를 오늘 발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몇 시간 뒤 금감위 쪽에서는 “오늘 발표는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정부 내에서도 혼선이 빚어졌음을 입증하는 사례다. 현대투신 MOU 발표와 이를 둘러싼 혼란을 살펴볼 때 “그동안 우리 증시를 짓눌러 온 문제에 대한 협상 결과 발표를 ‘IMF 졸업식’을 장식할 꽃다발 정도로 생각한 정부 고위관료들의 사고방식이야말로 협상의 가장 큰 장애물이다”는 증권가의 지적이 과장은 아닌 듯싶다.





주간동아 2001.09.06 300호 (p36~38)

< 윤영호 기자 >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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