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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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추월은 시간문제”

국제 ‘큰손’ 진출 러시 … 월스트리트 버금가는 인프라 완비한 ‘동방명주’

  • < 성기영 기자 / 상하이 > sky3203@donga.com

    입력2004-11-18 13: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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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 추월은 시간문제”
    50층 이상 고층빌딩이 100여 개나 즐비하게 늘어선 푸둥(浦東) 황푸(黃浦) 강변의 루자쭈이(陸家嘴) 금융무역구. 푸둥 개발의 상징이자 아시아 최고 높이(468m)를 자랑하는 동팡밍주(東方明珠)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 보이는 46층짜리 HSBC 타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리(森) 빌딩’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순수 일본계 자본이 지은 빌딩답게 일본식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그러나 올 초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본사를 푸둥으로 옮기겠다고 선언하면서 이 건물의 3개층과 함께 건물 이름 사용권을 얻어냄으로써 건물 꼭대기에는 ‘HSBC’라는 새로운 간판이 나붙었다. HSBC는 이미 리서치 데스크를 푸둥으로 옮긴 데 이어 본사를 이전하는 작업에도 속도를 붙이고 있다.

    “상하이가 홍콩을 추월하는 거요? 시간문제죠. 지금 외국 금융기관들은 중국 정부가 내놓을 자본시장 개방의 정도만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HSBC 타워 46층 일식집 ‘찬조’(燦鳥)에서 황푸 강변의 마천루를 내려다보던 현대증권 상하이대표처 심영우 대표는 혼자말을 하듯 내뱉었다.

    오는 11월로 예상되는 중국의 WTO 가입 이후 전면적인 은행시장 개방을 눈앞에 두고 세계의 돈이 푸둥으로 몰려들고 있다. 과거 홍콩을 통하지 않으면 돈이 돌지 않았지만 이제 상하이 푸둥이 그 역할을 대신할 날만 호시탐탐 노리는 것이다. 시티뱅크, ABN AMRO 은행, 크레디리요네 은행, 도쿄미쓰비시은행 등 아시아와 미주, 유럽을 가리지 않고 국제금융계의 큰손들이 ‘푸둥으로, 푸둥으로’ 몰려든다. 현재 푸둥 지역에 는 52개의 외국계 은행이 진출해 있다. 이 중 25개가 이미 인민폐 영업을 하고 있다. 물론 중국 정부는 인민폐 영업 허가 조건으로 ‘지점 설 립후 3년이 경과할 것’ ‘최근 2년 연속 흑자를 기록할 것’ 등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놓아 아직 모든 은행들이 인민폐 영업 경쟁에 나서지는 못하는 형편. 그러나 이미 세계 굴지의 금융기관들은 푸둥의 잠재력만 믿고 황푸 강변에 너도나도 포진했다.

    차기 국제금융중심지를 노리는 상하이의 모습은 루자쭈이금융무역구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융무역구와 황푸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와이탄(外灘) 지역에도 ‘365일 영업’(365天營業)을 내세운 세계 유수 은행들과,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자동입출금기, 즉 ‘자조은행’(自助銀行)들이 빽빽히 들어차 있다. 1842년 아편전쟁이 끝나고 난징(南京)조약에 따라 강제개항이라는 치욕을 당하고 나서 열강들이 지어놓은 유럽식 건물들을 차지하고 들어선 와이탄 은행가는 150년이 지난 지금 세계 관광객들에게 사랑 받는 관광지가 되었을 정도.



    자본시장 ‘빗장’ 쉽게 안 풀어 외국은행 발 동동

    “홍콩 추월은 시간문제”
    외국계 은행들은 WTO 가입 후 2년 안에 중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인민폐 영업을 할 수 있고 5년 안에는 모든 중국의 일반 소비자들을 상대로 인민폐 영 업을 할 수 있다. 이때까지는 중국의 모든 지역에서 인민폐 영업에 대한 규제가 없어진다.

    이를 앞두고 중국의 주요 은행들은 각자 다른 은행과의 제휴에 나서는 등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중국에서 4대 국영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이른다. 이 중 중국공상은행(中國工商銀行)이 이미 홍콩의 우련은행(友聯銀行)을 인수합병하는 등 몸집 불리기에 나섰고 농업은행(農業銀行)은 시티뱅크와 제휴를 맺어 2005년까지 대대적인 온라인 전산망 정비에 나섰다. 그러나 무엇보다 외국계 금융기관들의 관심을 끄는 자본자유화 문제에서만큼은 중국 정부가 보수적인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애태우고 있다. 상하이사회과학원 세계경제연구소 쉬밍취(徐明棋) 국제금융연구실장은 97년 국제통화기금(IMF)의 자본시장 개방 요구를 거절한 점을 상기시키면서 “금융 서비스 분야의 개방과 자본시장 개방은 어디까지나 별개 문제다”고 강조했다. 쉬실장은 “동남아 외환 위기의 교훈을 면밀하게 분석하면서 국내 자본시장에 대한 감독과 규제를 어떻게 할지 검토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중국이 WTO 이후 금융 분야의 개방 일정에도 불구하고 외화 송금 등 자본 시장에 대한 빗장을 쉽게 풀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었다.

    게다가 아직까지 푸둥을 노리고 달려드는 국제적 은행가들에게 상하이가 마냥 ‘기회의 땅’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구미계 은행들과 경쟁에서 늘 치일 수밖에 없는 국내 은행의 현실은 답답할 따름이다.

    하나은행 상하이사무소(韓亞銀行上海分行) 정해진 경리는 “대출이자의 7%를 고스란히 영업세로 내게 된 상황에서 인민폐 영업을 해도 돈을 벌기는 그른 일이다”고 잘라 말했다. 정경리의 말에 따르면 ‘인민폐 영업이야말로 겉으로만 돈 벌고 뒤에서는 고스란히 중국 당국에 세금으로 바쳐야 하는 헛장사’라는 것이다.

    그러나 돈내가 나는 곳이면 어디든지 몰려드는 은행가들의 속성상 이들이 21세기 황금어장인 푸둥을 포기할 리는 만무하다. 아시아의 빌딩숲 어디선가에서 한몫 잡으려는 ‘큰손’들의 움직임은 여전히 기민하다. 그리고 약간의 과장이 섞였을지언정 한때 ‘전 세계 타워 크레인의 80%가 모여들었다’는 푸둥 지역에는 지금도 자고 나면 한 층씩 올라가는 마천루의 고공행진이 멈추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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