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96

2001.08.09

금요일 오후부터 “여행을 떠나요”

선진국들 주 5일 근무 정착… 긴 휴일 이용 해외 나들이 등 여가문화 ‘짱’

  • < 전원경 기자 > winnie@donga.com

    입력2005-01-14 15: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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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요일 오후부터 “여행을 떠나요”
    한국인이 토요일에도 일한다는 말을 들으면 대다수의 외국인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어떻게 토요일까지 일할 수 있느냐’는 것이 놀라는 이유다. 이처럼 주 5일 근무제는 세계적인 추세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일본도 1997년부터 주 40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기 시작해 99년에 완전히 정착했다. 중국 역시 3년의 시험기간을 거쳐 97년 전면적으로 주 5일 근무를 시행했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정도가 토요일에 근무하는 국가로 꼽힌다.

    유럽의 국가들은 주 5일 근무에서 한술 더 뜬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주 40시간 근무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이 시간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독일 근로자들의 노동시간은 평균적으f로 주 37시간이다. 프랑스는 아예 올해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실시해 금요일 점심시간에 주말이 시작된다. 비교적 엄격하게 근로시간을 지킨다는 평을 듣는 영국에서도 금요일 오후 4시면 슬슬 퇴근하는 분위기로 바뀐다. 도서관 같은 공공기관조차 토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한국의 직장인들이 토요일 아침마다 겪는 ‘주말병’을 서구인은 금요일 오후에 겪는다. 금요일 점심시간이 지나면 사무실에는 주말의 들뜬 분위기가 스멀스멀 퍼진다. 이날 오후에 은행이나 관공서를 찾아가는 사람은 달갑지 않은 눈초리를 받기 일쑤다.

    미국인이 즐겨 쓰는 표현 중에서 ‘T.G.I.F’라는 것이 있다. 우리에게는 외식산업체 이름으로 알려진 이 말은 ‘Thanks God, It’s Friday’의 약어다. 우리 말로 하자면 ‘만세, 금요일이다!’ 즉 ‘만세, 주말이다’는 뜻이다.

    일본에서도 늘어난 휴일과 관련된 새로운 풍조가 생겼다. ‘꽃의 목요일’이라는 뜻의 하나모쿠(花木)라는 말이 그것이다. 이 말은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하는 주말을 알차게 즐기기 위해 모든 행사를 목요일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예를 들면 회식을 목요일 저녁에 한다든지, 주간지의 발행일자를 목요일로 맞춘다든지 하는 따위가 ‘하나모쿠 현상’이다.



    긴 휴일은 곧 여유로운 여가문화로 이어진다. 유럽인은 주 5일 근무를 이용해 여행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주말을 이용하면 충분히 인근 국가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여행 챔피언’으로 불리는 독일인의 여행 선호도는 가히 광적이다. 주말에는 유럽 어느 지역에서도 배낭을 멘 강건한 이미지의 독일인을 만날 수 있다.

    짧고 싼 여행을 선호하는 주말 여행자를 겨냥한 여행업계의 경쟁도 치열하다. 비수기에는 런던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왕복하는 비행기 티켓을 최저 40파운드(7만 5000 원), 그리스 아테네는 60파운드(11만 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다. 인터넷 여행업체 사이트는 주말여행 코스를 찾는 사람으로 인해 수요일이나 목요일 저녁 시간대에는 접속하기조차 어렵다.

    유럽에 비하면 미국의 휴일문화는 상대적으로 한국에 가깝다. 대부분의 직종들이 철저히 주 5일 근무를 고수하지만 월 스트리트의 증권분석가와 컨설턴트들,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휴일을 고스란히 반납한 채 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유럽인은 미국의 상점들이 밤늦게까지 문을 열어두는 것에 강한 반감을 가진다. 유럽인이 미국을 험담할 때 빠뜨리지 않는 말이 ‘늦게까지 일하는 비인간적인 미국인이다’. 유럽인은 미국적 풍토가 상점 점원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사례라고 비난하면서도 미국식의 장삿속이 유럽에까지 밀려올 것을 은근히 걱정하기도 한다.

    이처럼 서구인은 휴일을 마땅히 누려야 할 인간의 권리로 여긴다. 조금 덜 받더라도 휴일을 챙기는 것을 당연시하는 서구인은 지금 우리가 벌이고 있는 주 5일 근무제 시행 논란을 어리둥절한 눈초리로 바라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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