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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리맨 시마 과장, 부장 되다

386세대 인기 높은 일본 만화… 직장사회의 페이소스 통해 ‘존재 의미’ 추구

  •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

샐러리맨 시마 과장, 부장 되다

샐러리맨 시마 과장, 부장 되다
시마 코사쿠(島耕作) 과장이 드디어 부장이 되었다. 일본만화 ‘시마 과장’(원제, 課長島耕作)이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단행본으로 엮어져 나온 것은 1996년 초였다. 지금까지 모두 16권이 나왔다. 코사쿠가 부장으로 승진하면서 과장 시절을 마감하는 마지막 권은 6월 말쯤 나올 예정이다.

‘리얼리즘의 직립보행’이란 평가를 듣는 히로카네 겐시(弘兼憲史)의 ‘시마 과장’은 지난 1983년 봄 고단샤(講談社)의 ‘모닝’이란 잡지에 처음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등장했다. 그 후 1992년 초 연재를 일단 마감할 때까지 9년의 세월 동안 ‘시마 과장’은 계속 과장이었다. ‘시마 과장’이 ‘시마 부장’이 되어 다시 연재를 시작한 것은 1999년이었다.

‘시마 과장’은 직장을 무대로 한 애환과 모험·도전·갈등·사랑을 그리는 본격적인 성인만화다. 우리 나라에는 이같은 만화가 나온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또 직장생활의 이면을 놀랍도록 정확하고 생생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시마 과장’은 많은 샐러리맨의 인기를 끌었다. 한때 성인들에게 외면당하던 만화방에 넥타이 부대들이 다시 몰리게 만든 것에는 ‘시마 과장’의 영향이 크다. 히로카네 겐시는 “샐러리맨 사회의 보편타당성을 좇아야만 하는 슬픈 세계, 그 근저에 흐르는 진한 페이소스를 그려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만화방 찾게 된 넥타이 부대

‘시마 과장’은 샐러리맨 일상의 단순한 묘사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왜 그 길을 걸어야만 했는지, 그들이 궁극적으로 도달할 우리 사회의 단면은 어떤 것인지 끝없는 질문의 반추를 통해 그냥 간과하기 쉬운 샐러리맨의 존재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따라서 과장 시절의 시마 코사쿠가 이 땅의 많은 직장인에게 던진 의미는 어떤 것이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 될 듯하다. 최근에는 히로카네 겐시가 쓴 ‘인생을 변화시키는 작은 원칙들’이란 책(97년 고단샤)이 번역 출간(현재 펴냄)되어 나왔다. 이 책은 ‘시마 과장이 말하는 자신을 지키면서 자유롭게 사는 법’이란 부제가 붙어 있다. 만화는 시마 계장이 직장 상사에게서 승진 소식을 듣는 것에서 출발한다. “뭐 뜻밖의 일은 아니지만, 자네에게 과장 자리를 마련해 두었네.” 상사는 ‘자네가 과장으로 승진하게 되었네’라고 말하는 대신 ‘과장 자리를 마련해 두었네’라고 말한다. 어차피 같은 뜻이라지만 이 표현에는 조직의 위계질서나 한 명의 조직원으로서의 샐러리맨 위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샐러리맨 시마 과장, 부장 되다
시마 코사쿠. 34세. 대기업 전자회사인 하츠시바 전산의 전기 메이커 영업본부 판매조성부 선전과 계장. 한 딸의 아버지. 그러나 시마 계장은 승진 소식을 아내에게 말하지 않는다. “지금 너무 떠들어댔다가 만약에 안 되기라도 한다면 얼마나 꼴사나울까…. 그런 나의 실패를 봤을 때 집사람의 쌀쌀맞은 조소를 상상하면….” 그는 대신 출근길의 전철 안에서 “34세 과장이라면 동기 녀석들과 비교해도 빠른 편이다. 나쁘진 않군!”이라고 생각하며 혼자 킬킬댄다. 여기까지는 평범하고 소심한 샐러리맨의 전형이다.

우연한 기회에 그와 육체관계를 맺은 같은 부서 여직원에게 그는 “나한텐 사랑하는 집사람과 딸이 하나 있어. 융자로 산 집도 있고! 나름대로의 행복이 있다구! 나는 평범한 남자의 비열함을 드러낸 별볼일 없는 샐러리맨이야” 라고 고개를 숙이지만, 이미 그와 한 세대 차이가 나는 여직원은 그와의 일은 ‘한순간의 바람’이었다는 듯 당당하게 자신의 결혼 소식을 알리면서 이렇게 말한다. “높은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샐러리맨은 언뜻 보면 호방해 보이지만, 사실은 소심할수록 출세한다고 하더군요. 시마 계장님도 부장까지 오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시마 과장도 ‘단카이(團塊) 세대’로서 한때는 ‘뜨겁고 격렬하던’ 시절이 있었다. 단카이 세대는 2차 대전 직후 1947~49년에 태어난, 전쟁터에서 살아남아 돌아온 남정네들에 의해 이뤄진 베이비 붐 세대다. 그 수효는 자그마치 710만여 명으로 일본 인구의 6%에 육박한다. 이 세대의 성장사는 곧 전후 일본 사회의 변천사를 대변한다.

이들이 자라 취학기가 되자 초등학교는 교실 부족에 허덕였지만, 1960년대 경제 부흥 덕택에 훨씬 유복한 소년기를 보냈다. 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 입시지옥 현상이 생겨나 ‘수험전쟁 세대’라고도 하였다. 대학에 들어가서는 고도성장 과정에 벌어진 극심한 빈부 격차를 체험하고 기성세대의 혁명이라는 가장 과격한 방법으로 저항했고, ‘전공투(全共鬪) 세대’라는 이름을 또 얻었다. 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디딜 무렵 일본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해 종래의 연공서열보다 능력주의, 전문직 중심주의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이들이 가족을 이루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뉴패밀리 세대’라는 또 다른 별칭이 주어졌다.

말하자면 시마 과장은 이런 과정을 차례차례 밟아온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로 말하자면 ‘자본론’을 겨우 다섯 페이지 읽고 학생운동에 가담해 밝은 분위기의 서클 활동과는 거리가 먼 ‘저널리즘연구회’ 같은 어두운 모임에 들어가 그야말로 음울하기 짝이 없는 4년을 보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을 “기성세대에도, 반체제에도 잘 어울리기 힘든 전후 ‘베이비 붐 세대’의 사람인 것이다”고 자조하며 사내 특정 파벌에 줄 설 것을 강요하는 상사들의 제의를 거부한다.

샐러리맨 시마 과장, 부장 되다
“어쨌거나 난 내 자신을 남에게 구속시키는 것 따윈 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그에게 대학 동기이자 입사 동기로서 가장 빠른 출세가도를 달리는 친구는 이렇게 충고한다. “잘 생각해 보게. 자네도 곧 마흔이야. 언제까지나 ‘전공투’를 짊어지고 살 셈인가? 반체제는 당시 젊은이들의 유행에 지나지 않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자신의 그런 서툰 모습에 빠져 있는 것 아닌가? 좀더 어른이 되게.” 물론 시마는 “또 다른 권력에 자신의 몸을 기대는 것만이 어른이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네”라고 반격하지만, “그런 생각이라면 어째서 샐러리맨이 된 거지? 더구나 하츠시바 같은 대기업에 말이야!”라고 재반격하는 친구의 말에는 할 말을 잊는다.

사실 시마와 친구의 이같은 대화에는 그 자신이 단카이 세대인 히로카네 겐시의 갈등이 잘 녹아 있다. 시마는 실패한 혁명의 상처를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일본이라는 거대조직의 일원으로 들어간 세대, 그 자신과 친구들의 모습이었던 것. “젊은 시절 외치던 정의와 자유는 이제 퇴색해 버렸고, 출세를 위해서는 어떤 권모술수도 마다하지 않아야 하며, 그렇게 노력해 부와 명성을 얻었다 하더라도 가족은 이미 자기 곁을 떠나고 말았다. 할수없이 외도하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있을 곳을 찾지 못해 외로움에 떠는 가엾은 중년 남자, 그것이 히로카네 겐시가 그린 단카이 세대였다”(만화평론가 이명석).

바로 이같은 점에서 단카이 세대는 우리 나라의 386세대와 닮아 있다. 어쩌면 단카이는 386의 선험체(先驗體)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우리의 경우 분단 이데올로기라는 거대한 망령이 하나 더 덧씌워진 탓에 세대적 좌절은 단카이의 그것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더 심할 수 있지만, 거대한 사회변혁의 파고에도 전혀 흔들림 없는 듯한 기성세대를 향한 도전 그리고 좌절이라는 점에서는 다를 것이 없다. 30대 이상의 넥타이 부대가 ‘시마 과장’에 매료된 것도 이 만화 자체가 그 자신들의 삶과 똑같은 궤적 위에 놓여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그것은 마치 “나는 투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외치던 386세대의 80년대식 가치관과 존재론이 “나는 행복하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90년대식 존재론과 맞닥뜨리면서 느끼는 당혹감과 정체성의 혼란과 닮아 있다. ‘사치스런 상징’쯤으로밖에는 여기지 않던 ‘행복’이 어느 날 갑자기 사회의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 것에 대한 놀라움, 그리고 어색함 같은 것.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이 “할아버지세대는 경제를, 아버지세대는 정치를, 자식세대는 문화를 추구한다”고 말했다지만, 386이나 단카이는 경제추구세대와 문화추구세대 사이에 낀 단순한 ‘낀 세대’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는지. 정치적으로도 일정한 성취를 이루는 데 실패하고, 사회의 구성원, 조직의 일원으로 생계만을 걱정해야 하는….

시마의 도움으로 강력한 라이벌을 제치고 사장에 오른 오이즈미는 이렇게 말한다. “조직이라는 거대한 소굴 속에서 개인의 힘은 극히 미약하지. 때문에 좀 출세했다 싶으면 자기 파벌을 만들어 그 거대한 힘 속에 안주하려 하는 거야.” 그러면서도 오이즈미는 “그것도 인생을 사는 하나의 방법이겠지”라며 ‘어떤 파벌에도 속하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유인’으로서의 시마의 선택을 인정한다. 그러나 현실세계에서 시마 과장과 같은 행보를 하기란 쉽지 않다. 만화에서 시마와 거의 비슷한 유형인 나카자와 부장을 나중에 사장으로까지 만드는 것도 어쩌면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고 싶은’ 작가 자신의 욕심 때문인지 모른다. 나카자와 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결국 샐러리맨이란 위험한 운명공동체야. 한 뗏목을 타고 간다고나 할까? 좀더 크게 생각하면 회사 자체가 뗏목인 것이고….”

작가는 ‘인생을 변화시키는 작은 원칙들’이란 책에서 “내가 생각하는 ‘정상적인 사람’은 어딘가 시원하게 뚫린 부분이 있는 사람이다. 사회의 틀에 머물면서도 거기에 길들여지지 않는 그 무언가를 지닌 사람 말이다”고 말한다. 물론 그라고 현실세계의 답답함을 모를까. “30, 40대가 되면 싫더라도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사리분별을 해야 한다. 일이나 가정에 책임이 늘면 그만큼 요령도 는다. 그렇지 않으면 샐러리맨 사회에서 참고 견딜 수 없다. 그런데 그 사리분별이나 요령은 반대로 인생을 점점 위축시킨다. 가족이나 회사 때문이라는 대의명분에 길들여지고 마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을 떨쳐 버릴 것인가? 가족을 사랑하고 일을 사랑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속박 받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 갈 수 있을까”에 대한 해답 찾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시마 과장’의 인생인지도 모른다.

만화는 시마가 부장이 될 날이 가까워지면서 ‘전지전능한 영웅’이 등장하는 기업만화처럼 변할 때가 많다. 시마가 늘 사건의 중심에서 우연한 기회 또는 수많은 여자의 도움으로 각종 일들을 해결하는 것. “뉴욕이라는 세계를 보고 있자니 일본의 한낱 샐러리맨으로 일생을 마치는 것이 굉장히 허무해진 거야. 난 현재에 승부를 걸어보겠어”라고 외쳤다가 파멸하고 마는 동료의 그런 추락이 시마에게는 없다. 시마는 그런 승부를 요행스럽게 피해가면서 ‘지독하게 운 좋은 남자’라는 느낌밖에는 들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인, 그야말로 만화 그 자체의 캐릭터가 된다. 그럼에도 작가는 인간적인 끈끈함과 진지함, 진한 페이소스를 밑바탕에 깔아 놓는 것을 잊지 않는다. 만화면서도 현실감있게 느끼도록 만드는 ‘시마 과장’의 독특한 매력이다.

몇 번의 해외 근무와 권력 암투, 많은 위기와 사건을 거쳐 시마는 드디어 부장이 된다. 부장이 된 시마는 회의를 끝내고 이렇게 중얼거린다. “현장에서 멀어져 조금은 한가할 거라는 생각은 완전한 착각이었다. 이렇게 날마다 뚜껑이 열릴 정도로 바쁘다니…! 현장에는 현장의 일이 있고 그 위에는 그 위의 일이 있다. 일하는 자리가 바뀐 것뿐이지 업무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 왠지 허무한 기분이 든다.”

한 사람이 직장생활에서 부장의 자리에 오른다는 것은 일단 현장 책임자에서 한 조직의 리더이자 기획자가 된다는 ‘변신’의 의미가 크다. 훨씬 막중한 책임감이 어깨를 짓누르고, 조직과 일 이외에 다른 생각을 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새로운 그 무엇’에의 시도가 어려운 것이다. 나이도 대략 40대 중반을 넘어 인생의 전환점을 이미 지나쳤을 시점이다.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반환점을 돌아서서 오직 일만이 모든 것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 사람이 ‘회사인간’이든 그렇지 않든 삶에서 조직은 최우선의 위치를 차지한다. 산다는 것에 대한 답답함을 느끼고, 그래서 이 세대는 힘들다.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지만, 탈출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다. 시마 그 자신의 표현대로 “샐러리맨이란 참으로 슬픈 인종”인 것이다. 그러나 시마의 인생 항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간동아 2001.06.28 290호 (p72~74)

< 조용준 기자 > abrax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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