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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왕뽀이는 자랑스런 나의 별명”

호텔 롯데 류용상 전무… 자기부터 철저히 낮추어야 진정한 '호텔리어'

  •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

”왕뽀이는 자랑스런 나의 별명”

”왕뽀이는 자랑스런 나의 별명”
그는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가끔 제주도에 내려간다. 호텔업계에 뛰어들어 한길만을 달려온 지도 20년이 훌쩍 넘어버린 지금, 열정을 쏟아부어 지은 제주호텔 앞바다를 바라보는 호텔 롯데 류용상 전무(56)의 머리 속에 많은 생각이 스친다. “젊은 시절 내내 최고의 전문가가 되고 싶었고, 이제 그 꿈을 이룬 것이 아니냐고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제부터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으니까요.”

그가 처음 업계에 발을 디딘 것은 지난 78년. 대학(청주대 회계학과)을 졸업하며 취득한 세무사 자격증으로 사무실을 운영하던 그에게 걸려온 선배의 전화 한 통이 삶의 방향을 바꾼 것이었다. ‘생소한 분야인 만큼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 전문가가 아무도 없으니 바로 네가 최고가 되라’는 권유였다. “호텔은 아직 개업도 하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곳에서 사람을 구하더라는 소식이 왜 그리 신경을 잡아 끌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어요.” 아직 호텔업에 대한 인식 자체가 전무하던 시절, 서울 곳곳에 특급 호텔들이 그제야 막 문을 열던 때였다.

그렇게 해서 경리과장을 시작으로 호텔에서 일한 지 23년이 되는 올해는 그에게 상당히 의미가 깊은 해다. 전무 승진, 경영학 박사,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잡은 특급호텔의 총지배인. “평범한 월급쟁이로 출발한 사람이 목표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은 셈”이라고 말하며, 나이에 걸맞지 않게 수줍은 미소를 지어보인다.

턱없는 욕심보다는 한 계단씩 밟아온 직장 생활이었다. 92년 이사, 96년 상무, 그리고 지난 2월 전무 승진. 학벌이 신분이라는 우리 사회에서 지방대 출신이라는 약점 아닌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한꺼번에 달려가기보다는 꾸준히 움직이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쉴 틈이 없는 조직생활 가운데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뒤늦게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지난 86년 석사(경희대), 올해 2월 박사(인천대) 학위를 받은 그의 관심분야는 당연히 호텔 회계와 경영. ‘우리 나라 호텔 회계방안의 개선방안’이라는 석사논문과 ‘호텔 산업의 수익성에 관한 연구’라는 박사논문은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 분야의 체계적인 연구 성과물이다.

“객실에는 재고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오늘 700만원짜리 로열 스위트 룸을 못 팔았다고 내일 두 번 팔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이러한 특수성이 있음에도 일반 제조업체의 회계기법이 호텔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는 것이 그가 지적하는 국내 호텔 회사들의 대표적인 한계다. 이 분야에서 우리 나라는 아직 걸음마를 떼고 있는 수준이라는 것. 게다가 똑같이 1000명의 손님을 받아도 내국인 손님과 외국인 손님은 매출에서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솔직한 토로이기도 하다. “브랜드의 힘도 무시할 수는 없지요. 하얏트나 힐튼은 세계적인 호텔체인이다 보니 출장 온 외국 비즈니스맨들은 당연히 그런 호텔들을 선호하는 편이죠.”



그런 그에게 늘상 아쉬운 부분은 역시 사람이다. 호텔업이란 기본적으로 사람이 재산이 되는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훌륭한 건물과 시설은 오히려 그 다음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호텔문화 자체가 서양에서 건너온 것이다 보니 종업원들이 적응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서부터 외국 호텔과는 차이가 난다. “인력관리나 조직운영의 효율성 측면에서 아직 국내 업체들은 외국계 호텔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면세점 매출 덕분에 수익은 국내 업체들이 앞서지만, 호텔 자체만의 경영 능력은 역시 외국계 업체를 따라가지 못하거든요.”

때문에 그는 함께 일하는 종업원들에게 가장 신경이 쓰인다. 주차를 담당하는 말단 직원이 수백 명에 달하는 VIP들의 차종과 번호를 모두 외우도록 확인하는 일까지도 그의 업무 영역. 이런 이유로 유씨는 어디서든 스스로를 ‘왕뽀이’라고 소개하기를 즐기곤 한다.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을 ‘뽀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 역시 그 뽀이들 가운데 한 명이라고 생각하고 일하는 거지요.” 이 별명은 부하 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그만의 노하우이자 호텔 종사자의 자세에 대한 그의 생각을 보여준다. TV 드라마에서 화려하게만 그려지는 이 일은 사실 얼마나 자신을 낮출 수 있는지에 그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호텔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말하곤 하지요. 진정한 호텔리어(hotelier)가 되고자 한다면 가장 하기 싫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고요. 객실 청소에서부터 접시 닦는 일까지 모든 궂은 일을 경험해서 몸으로 익혀야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호텔은 초기 이직률이 높은 분야 가운데 하나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체계적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배워야 하는 입문 과정에서 많은 신입 사원들이 회의를 품고 떠난다는 것이다.

”왕뽀이는 자랑스런 나의 별명”
그런가 하면 늘 종업원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해온 그에게 지난해의 파업은 가슴 아픈 기억이었다. 함께 일하던 사람들과 얼굴을 붉혀가며 싸워야 했고, 또 적잖은 상처도 주고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80년대 호텔 근처에서 계속되던 민주화 시위로 손님들이 모두 떠나가던 시절에도 지난해만큼 힘들지는 않았다고 그는 털어놓는다. “어떻게든 해결은 되겠지만 상처는 남겠지요. 한번 흔들린 신뢰를 다시 복구하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요.” 파업 때를 떠올리자 그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1300개의 객실, 3000여 명의 종업원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보살펴야 하는 것이 총지배인의 위치지만, 매력적인 것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그는 지난 4월4일 호텔을 방문한 특별한 손님을 잊지 못한다. 국가원수도 아니고 세계적인 기업가도 아니었지만 이 만남을 통해 그동안의 호텔 생활을 통틀어 가장 큰 감격을 얻었노라고 유씨는 말한다. 다름아닌 애덤 킹군(10·한국명 오인호). 2001 프로 야구 시즌 개막식에서 의족에 의지해 시구를 했던 중증 장애인 입양 소년이다.

“많은 어려움이 있음에도 티없이 맑기만 한 모습이 아직도 두 눈에 선합니다. 지금까지 호텔에서 지내온 23년 세월을 되돌아보는 계기도 되었고요. 어찌 보면 한 사람의 월급쟁이가 직장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은 이런 게 아닐까요.” 킹군과 그 양부모의 모습을 보며 되새긴 또 하나의 생각은 가족에 대한 고마움. 365일 24시간 대기상태에 있어야 하는 호텔인, 그것도 모자라 밤이면 대학원 공부를 위해 집을 비운 가장을 묵묵히 응원해 준 아내와 두 아들이었다. 얼마 전 있었던 장남 낙현씨(26)의 결혼식이 더욱 감개무량했던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먼곳만을 바라보는 이상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차분히 바라보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끊임없이 실현 가능한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그를 향해 한발짝씩 나아가는 거지요.” 그가 새롭게 세운 목표는 모스크바 진출. 우리 호텔이 국내에만 안주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세계적인 호텔체인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복안이다. “두고 보십시오. 우리 나라 사람들이 세계 어디를 가도 익숙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Slow and steady wins the race.’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달리는 자가 이긴다). 일상에 매몰되기 쉬운 모든 샐러리맨들에게 ‘왕뽀이’ 류용상 전무가 다시 한번 전하는 삶의 진실이다.





주간동아 2001.05.10 283호 (p86~87)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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