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3

2001.05.10

동교동계, 이인제 누르기 시작?

“뭉쳐야 산다” 결속력 강화하며 잇단 견제구 … ‘믿을 만한 대안’ 없어 고민

  • 입력2005-01-24 15: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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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교동계, 이인제 누르기 시작?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의 최근 행보는 다른 대선주자들에 비해 다소 도전적이다. 이미 정가에는 “이최고위원이 독자적인 세 구축작업을 하였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이최고위원은 “차기 대권은 전후 세대가 맡아야 한다”거나 “내년 대선에서 3김의 영향력은 사라질 것”이라는 등 간헐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내고 있다.

    이최고위원의 이런 행보는 김대중 대통령이 4월 중순 민주당 지도부와의 주례보고 자리에서 “강연이나 연설도 좋지만 사랑방 좌담회처럼 국민과 무릎을 맞대고 고민하는 모습을 심층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좋겠다”고 언급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최근 정가에는 “동교동계가 이최고위원 제거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돈다. 이위원측 일부에서도 이런 의심을 한다.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지난 4월26일 이인제 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동교동 쪽에서 우리를 제거하려고 작심한 것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보를 제어하는 정도라면 괜찮은데 그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 측근은 세 가지 근거를 들었다.

    먼저 지난 4월24일 이해찬 정책위의장의 국민정치연구회(이사장 이재정 의원) 강연 내용이다. 이의장은 이날 “우리 나라는 대선 이후인 2003~2004년이 매우 어려운 시기가 될 것이다. 인내와 설득, 갈등 조정능력이 필요한데, 현재 대권 후보 가운데 이를 충족할 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측은 즉각 “무슨 소리냐”며 반박했지만 이최고위원측도 불쾌하기는 마찬가지.

    이최고위원의 측근들은 “국민 지지도에서 다른 대권 후보들을 상당한 차이로 앞섰는데 똑같이 ‘도토리’ 취급을 한다. 결국 이최고위원은 (후보가)아니라는 얘기 아니냐”고 해석한다. 이의장이 동교동 인사들과 친밀감을 높여왔다는 점에서 동교동계의 의중이 실린 발언으로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최근 일부 언론에도 이의장의 발언과 비슷한 내용의 칼럼이 실려 조직적인 ‘이인제 죽이기’ 흐름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는 것.



    이 측근은 또 MBC가 ‘시사매거진 2580’에서(지난 4월22일 방송) 지난 4월3일 열린 이최고위원의 후원회를 밀착 취재해 내보낸 것에 대해서도 “뭔가 배경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시사매거진 2580’은 이최고위원의 후원회에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동원’된 사실을 집중 취재해 방송했다. “누가 꾸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역공격인 것 같다”는 이최고위원측 한 열성 지지자의 말은 이최고위원 캠프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시사매거진 2580’의 정관웅 PD는 이런 시각에 어이없어했다. 정PD는 “신문에서 정치인들의 후원회가 여럿 열린다는 기사를 보고 취재에 들어갔다. 현장에 가서 방송할 만한 내용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그만두자는 생각에 다른 몇몇 정치인들의 후원회와 함께 이최고위원 후원회를 취재했던 것”이라며 “이최고위원의 후원회가 취재 기간에 열려 취재한 것이지 다른 목적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동교동계 의원들이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줄 서기하지 말라”며 단도리 작업을 하는 것도 이최고위원 진영에서는 민감하게 받아들인다. 이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정균환 의원 등 동교동계 의원들이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최고위원도 “동교동계 의원들이 일부 지구당 위원장들에게 그런 소리를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대세론’을 굳히려는 이최고위원 진영에서는 동교동계의 이런 움직임을 ‘고사작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이런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것은 동교동계 인사들이 갈수록 결속력을 강화하였다는 점이다. 지난 4월23일 저녁, 신촌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열린 동교동계 의원들의 비공개모임에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높았다고 한 참석자는 전했다. 이 참석자는 “이최고위원은 대세론을 굳히려 하겠지만 레임덕 문제도 있고, 우리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다. 대선 후보가 누구인지는 정해진 바 없지만 동교동계가 하나로 뭉쳐야만 산다는 공감대를 다졌다”고 전했다.

    물론 아직까지 동교동계 양대 축인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 한화갑 최고위원이 완전히 관계를 회복한 것 같지는 않다. 한최고위원은 여전히 ‘대권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권 전 최고위원의 이최고위원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가 완전히 바뀐 것 같지도 않다. 한최고위원은 ‘태생적 한계론’을 내비치면서 출마 여부를 김대통령에게 물어본 다음 결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최고위원의 한 측근은 “지금 단계는 두 사람이 서로의 위상을 인정하면서 가까워지는 쪽으로 기수를 돌린 상태로 보는 게 정확하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동교동계 한 인사는 “그동안 김대통령은 몇 차례에 걸쳐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 한화갑 최고위원에게 뭉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전했다.

    동교동계, 이인제 누르기 시작?
    동교동계의 이최고위원에 대한 견제 배경에는 이최고위원측이 먼저 자극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최고위원은 지난 4월14일 21세기 산악회 부산시 지부 개소식을 갖는 등 사조직 조직화 작업에 가속도를 내었다. 민주당 소속 영남지역 지구당 사무국장들이 결성한 ‘사무국장 협의회’ 회장을 이최고위원의 사조직 핵심간부가 맡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한 동교동계 인사는 “이최고위원측에서 중부권과 경기지역을 중심으로 지구당 위원장들을 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어 당사자들이 곤혹스러워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줄을 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최고위원과 불편한 관계를 맺기에는 찜찜해 위원장들이 어정쩡한 상태에 있다”는 것.

    그러나 이와 전혀 다른 얘기도 있다. 이최고위원측의 한 인사는 “동교동계가 이최고위원을 제거하려 한다는 얘기는 신주류 내부의 위기의식이 과장되어 나온 것”이라고 주장하며 색다른 얘기를 들려줬다. “지난 3·24 개각을 앞두고 여권 핵심인사 L씨와 K씨, 전 고위인사 L씨 등이 모여 이최고위원의 낙마를 논의했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 얘기가 와전한 것 같다”는 것. 권노갑 전 최고위원과 이최고위원의 관계도 “여전히 좋다”는 주장이다. 한 측근은 “4·26 보궐선거를 앞두고 권 전 최고위원이 직접 이최고위원의 부인인 김은숙씨에게 ‘서울 은평구청장 선거에 힘을 보태달라’는 내용의 전화를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지난 4월24일 김씨는 은평구를 방문했다는 것.

    정가에서는 “꾸준히 대안을 모색하겠지만 현 단계에서 동교동계가 조직적으로 이최고위원을 낙마시키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러잖아도 취약한 지지 기반, 이최고위원이 가진 대중성, 복잡한 동교동계의 내부 관계 등 때문이다. 그러나 김대통령의 의지대로 정권을 재창출하려는 동교동계의 이해관계와 독자세력화를 바탕으로 한 이최고위원의 밀어붙이기 행보는 결국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도 현실이다.

    동교동계 입장에서도 고민은 있다. 뚜렷이 내세울 ‘믿을 만한 대안’이 없는 것. 이런 이유로 동교동계 일부 인사들 사이에서는 “믿을 수 없는 이최고위원에 (후보를)주느니 차라리 야당할 각오로 동교동계 후보를 내세우자” “제3후보를 찾자”는 등의 언급이 나온다. 권 전 최고위원이 이수성 전 총리나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등과 회동을 가진 것을 이런 맥락에서 보는 사람도 있다. 보궐선거 참패 직후인 지난 4월27일 동교동계 한 초선의원은 “이대로는 안 된다.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대통령 선거에 바로 영향을 미치는데, 차라리 한 사람을(대통령 후보로 일찍) 내세워서라도 돌파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든다. 당의 중심세력으로 올해 안에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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