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1

2001.04.26

흥겨운 우리 가락 ‘생활 국악 시대’ 연다

  •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

    입력2005-03-02 15: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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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겨운 우리 가락 ‘생활 국악 시대’ 연다
    국악 프로그램은 계륵이다.” 지난 2월 한 방송사가 TV 국악 프로를 폐지하면서 변명처럼 한 말이다. 그러나 윤미용 국립국악원 원장(55)은 두고두고 이 말을 되새긴다.

    “저도 15년 가까이 방송에서 국악 프로를 진행했습니다만, 국악 프로가 제대로 대접받은 적이 있나요? 새벽 6시 아니면 심야에 편성해 놓고 시청률과 청취율만 따집니다.”

    이처럼 국악 프로는 방송 개편 때마다 이리저리 옮겨다니거나 축소-폐지되는 서러움을 겪어왔다. 국립국악원이 3년 전부터 국악전문방송 설립을 서두른 것도 일단 국민들에게 국악에 접할 기회를 갖게 해주자는 취지였다. 개원 50주년을 맞은 국악원은 드디어 소원을 성취했다. 3월2일 국악 FM(서울-경기 지역 99.1MHz, 전북 남원지역 95.9MHz)이 개국함으로써 하루 21시간 우리 가락만 흘러나오는 방송이 생긴 것이다. 채치성 편성제작팀장은 “우리 국악을 생활음악으로 정착시키겠다”며 포부가 대단하다.

    국립국악원은 이밖에도 개원 50주년 기념으로 4월과 5월 두 달 동안 혜경궁 홍씨 회갑연을 무대예술로 재구성한 ‘왕조의 꿈, 태평서곡’, 불교예술의 백미 ‘영산재’(靈山齋), 인간문화재 초청 ‘우리 시대 예인의 무대’, 민속음악대전 ‘흥과 신명, 그 생명의 바람’ 등 어느 때보다 풍성한 국악무대를 마련했다.

    잔칫상이 차려졌으니 다음은 하객이 얼마나 모일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특히 이번 기념공연의 하이라이트라 할 ‘왕조의 꿈, 태평서곡’ 은 최초로 연례악(宴禮樂)을 무대화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물론 4월11일 첫 무대는 대성공이었다. 내-외명부 대표들이 차례로 혜경궁 홍씨에게 절을 하고 술잔을 올리는 동안 대취타, 여창가곡, 수제천, 여민락 등의 궁중음악을 연주하고, 음악에 따라 처용무와 학춤 등이 어우러져 무대종합예술의 백미를 보여주었다. 관객들은 숨소리조차 죽이고 이 장엄한 연례악을 지켜보았다.



    “궁중음악은 크게 제례악(祭禮樂)과 연례악으로 나뉩니다. 지금까지 종묘제례악은 의식과 함께 접할 기회가 종종 있었지만, 연례를 제대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겁니다. 왕실이 사라지면서 연례라는 것도 사라졌으니까요.”

    한편 윤미용 원장은 우리 전통음악의 정수(精髓)라 할 궁중음악을 단지 보존 차원에서만 연주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국악에 접할 기회가 워낙 제한적인데 그마저도 판소리나 민요, 사물놀이 등 민속음악에 치우쳐 국악의 편식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4월 창단공연을 가진 ‘한국정가단’의 이준아 단장도 “70년대 사물놀이가 세계 무대에 우리 음악을 알린 공은 대단하지만, 국악이 빠르게 두드리는 음악만 있다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면서 호흡이 멈추는 듯 느린 정가(正歌)가 일반인들에게 좀더 알려지기를 기대했다.

    그런 점에서 개원 50주년을 맞은 국립국악원의 어깨는 무겁다. 전통의 원형보전과 창조적 계승, 국악의 대중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윤원장은 “원형이 있어야 변형도 있다”는 말로 일단 국악원이 보존과 계승 쪽에 비중을 둘 것임을 시사했다.

    그렇다고 국악의 대중화를 외면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연간 250회에 이르는 국악원 공연을 세분화해 눈높이 국악교육을 하겠다는 것이다. 설 대보름 단오 칠석 추석 등 주요 명절에 펼쳐지는 무료 기획공연은 누구나 부담 없이 즐기는 국악무대로 짜인다. 록그룹과 전통 시나위가 어우러지고, 재즈와 판소리가 만나는 등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도 이때 이루어진다.

    반면 토요상설 국악공연은 전통 악(樂)-가(歌)-무(舞) 중에서 엄선한 프로그램으로 국악의 진수를 느끼게 하고, 매주 목요일에는 젊은 명인들을 위한 자리도 마련한다. ‘찾아가는 국악원’은 국악공연을 한번도 접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국악원 예술단 단원들이 직접 오지를 찾아다니며 연주한다. 윤원장 부임 후 국악원 예악당(대극장)과 우면당(소극장)의 불이 1년 내내 꺼질 새가 없다고 할 만큼 공연이 끊이지를 않고, 외국인이 어느 때 찾아오더라도 국악공연에 접할 수 있을 만큼 상설공연이 많아졌다.

    한편 국악원은 청소년과 교원, 일반인을 위한 국악교육도 꾸준히 펼쳐왔다. 특히 방학중 청소년 국악특강은 경쟁이 치열해 선착순 300명으로 제한할 때는 전날 밤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우면당 앞이 장사진을 이룰 정도였다. 지난해부터 500명으로 정원을 늘리고 제비뽑기로 방식을 바꿨지만 여전히 2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국악인구는 지난 몇 년 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이번 ‘왕조의 꿈, 태평서곡’과 같은 격조 높은 궁중연례악 공연에도 일반인들이 몰릴 만큼 국악을 즐기는 수준도 높아졌다는 평가다. 일제 식민치하와 미 군정을 거치면서 단절된 국악을 되살리고 국민들에게서 잊힌 국악을 다시 느끼고 즐기게 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심이 필요하다. 국악원 50년 역사는 바로 그것을 위해 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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