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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빈부격차 키우는 교육개혁

부자 위한 사교육 빈자 위한 공교육

유아기부터 교육의 양과 질 확연한 차이 … 공부 잘하고 못하고는 가정환경 탓?

부자 위한 사교육 빈자 위한 공교육

부자 위한 사교육 빈자 위한 공교육
1993년 대통령에 취임한 클린턴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는 다름 아닌 딸 첼시의 교육문제였다. 중학교에 입학할 딸을 둔 부모 입장에서 공립이냐 사립이냐를 놓고 고민에 빠진 것이다. 국민 앞에 교육대통령이 되겠다고 엄숙히 맹세한 클린턴이었다. 그러나 막상 사랑하는 딸을 미국에서도 가장 엉망인 워싱턴D.C. 공립학교에 보내자니 모골이 송연해졌던지 클린턴 부부는 첼시를 사립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한다. 그러고는 교육구가 지정하는 공립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싶었으나 대통령가족을 위한 복잡한 경호활동 때문에 첼시를 비롯해 다른 아이들의 공부까지 방해할 염려가 있어 그랬노라고 군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첼시는 시드웰 프렌즈 스쿨(Sidwell Friends School)이라는 사립학교에 들어갔다. 이 학교는 워싱턴D.C. 북서쪽의 부촌에 자리잡은 고급사립학교로 입학조건이 워낙 까다로워 명문 재력가의 자손이 아니고는 넘겨다보지도 못한다. 98년 5월 첼시는 이 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대에 진학했다.

그렇다면 첼시의 급우가 될 뻔했던 워싱턴D.C.의 가난한 공립학교 아이들은 어떻게 됐을까. 1만5500명의 공립학교 학생들 중 백인학생은 381명뿐이며 나머지는 흑인과 스페니시 계통의 가난한 소수인종이 대다수다. 이 아이들 가운데 70%는 학교를 중도에 걷어치웠고, 흑인 남자아이들의 75%는 전과자가 되었으며, 전체 여자아이들의 14%가 미혼모로 전락했다. 아이들의 문제행동에 골머리를 앓던 선생님들은 마침내 두손두발 다 들어버렸다. 전체 신임교사 50%가 발령 후 5년 이내에 교직을 떠났다.

클린턴 부부는 첼시를 사립학교에 보내며 엄청난 비난을 들어야 했다. 대통령 취임 후 가장 먼저 겪은 정치적 시련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위선적이고 이기적이라는 욕을 먹으면서도 딸을 사립학교에 보낸 까닭은 무엇일까. 딸의 안전도 문제였지만 대도시 공립학교의 형편 없는 교육수준을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단적으로 98년의 미국 대입수능시험(Scholastic Aptitude Test, SAT)에서 공립학교 아이들은 평균 1011점을 얻었으나 가톨릭계를 포함하는 종교계 학교는 1042점, 최부유층 아이들이 재학하는 명문사립학교는 1111점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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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결과를 놓고 한 달이 넘도록 북새통을 치더니 텍사스 주지사 조지 부시(George W. Bush)가 결국 미국 43대 대통령이 되었고, 이제 41대 대통령인 아버지 조지 워커 부시와 현재 플로리다 주지사인 둘째아들 젭 부시까지 부시 가문은 명망 높은 케네디가의 뒤를 이어 미국 정계의 새로운 명가로 탄생했다.



그런데 부시 3부자가 고교동창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아버지 부시와 아들 부시 그리고 작은아들 부시는 모두 ‘고등학교의 하버드’라고 하는 필립스 아카데미(Phillips Academy) 출신이다. 대영제국의 식민지 정책에 항거하는 독립전쟁이 한창이던 1778년 새뮤얼 필립스 (Samuel Phillips), 새 나라의 동량이 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세운 이 학교는 미국 명문사립고교의 최고봉으로 미국사회 각 분야에서 이름을 날린 인물들을 수없이 배출했다.

앤도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미국 사립학교는 우수하다. 원래 기초가 튼튼한 아이들을 모아놓고 최고의 시설을 자랑하는 풍요한 환경에서 집중적으로 잘 가르치니 아이들이 공부를 잘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전체 학령아동의 10%에 지나지 않는 사립학교 학생들이 명문 아이비리그 전체 신입생의 40%를 차지하며 대학졸업 후에는 정치 경제 사회 학술 등 모든 분야에서 공립학교 졸업생들을 압도한다.

반면 돈 없고 선택권 없는 빈곤층 아이들은 공립학교에 수용하여 질이 의심스러운 교육을 받고 영원한 하층계급으로 남는다. 있는 집 아이들은 일취월장하여 학문과 지식을 배워 부모의 기대에 부응한다. 공부를 잘하니 의사와 법관은 있는 집 아이들이 독점한다. 학교에서 얻은 지식과 인맥 그리고 물려받은 풍부한 자본을 바탕으로 온갖 돈 되는 일은 다 휩쓴다. 이것이 미국 사교육의 힘이다.

남의 나라 학교 사정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사립학교와 공립학교로 대변되는 미국 교육의 빈부격차가 오늘날 한국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중-고등학교는 사립과 공립의 차이가 없다. 누가 학교를 설립했는지에 따라 사립과 공립으로 구별할 뿐 학생들이 배우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최소한 중-고등학교는 평준화한 한국의 교육제도가 보다 공평할 수 있다. 배우는 학과내용도 같고 교육방법에도 별다른 점이 없다. 물론 사립초등학교 출신 아이들이 보다 많은 지적 자본을 갖추고 중학교 생활을 시작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노력하면 그 차이를 따라잡을 수 있다. 공립이니 사립이니에 관계없이 선생님들이 모두 열심히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학교들이 공부를 덜 시키고 숙제를 덜 내주며, 시험 없애기에 나섰다. 80년 전 미국 공교육의 실수를 고스란히 흉내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즘 한국 학교에서 유행하는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 간다”는 식의 특기적성 교육이 빈부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사실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미국에서는 일찍이 1920년대부터 적성교육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세상을 사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아이들의 잠재능력을 확인하기 위한 각종 적성검사 방법과 도구를 개발하여 아이들의 인생을 결정하는 데 이용하였다. 그러나 이 적성검사에는 엄청난 함정이 있다.

우선 수천 가지 적성검사 도구 중 아동의 적성을 족집게처럼 잡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또 적성검사 결과는 늘 아동의 학습성적에 큰 영향을 받는다. 공부를 잘하면 대학이고, 못하면 취업적성이 나온다. 수학을 잘하면 이공계요, 국어나 역사를 잘하면 문과계통 이런 식이다. 이도저도 아니면 또다시 취업적성이 나온다. 적성검사나 지능검사 항목 자체가 학과지식이 많으면 대답하기 쉽기 때문이다. 어느 검사도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결국 공부를 잘하면 계속 공부하는 쪽으로 빠지고 공부를 대충하면 대강 사는 쪽으로 방향이 잡힌다.

그런데 아이의 학업성적이라는 게 가정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부잣집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배움의 기회가 많다. 생활에 여유가 있으니 부모님과 연극도 보러 가고, 영화도 관람하며, 박물관, 도서관, 동물원에 해외여행까지 다닌다. 집에는 책장마다 책이 가득하고, 사립유치원에 학원까지 다니며 미술, 음악, 외국어, 글짓기를 배운다. 많이 보고 듣고 읽으니 자연히 다양한 지식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식이 하나둘 머리 속에 착실히 쌓이면서 아이들은 나중에 학교를 다니며 배울 지식에 관한 배경지식을 습득한다. 이미 배워 알고 있는 지식과 학교에서 배우는 새로운 지식을 연결하니 자연히 이해도 잘하고 빠르게 배운다. 그러나 내일 끓일 쌀거리를 걱정하는 집에서 학과 배경 지식 타령은 귀퉁이나 쥐어박힐 배부른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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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기초지식이 필요하며, 교육학자들은 성공적인 학습에서 이토록 중요한 기초학력을 지적 자본(intellectual capital)이라고 한다. 돈이 있어야 돈을 번다. 공부도 마찬가지여서 기본적으로 준비한 지식이 있어야 공부를 할 수 있다. 돈벌이에는 돈이 자본이듯 공부에는 공부가 자본이다. 그래서 공부의 밑천인 기초지식을 지적 자본이라고 한다. 지적 자본의 많고 적음은 공부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건이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이 아이들 각자가 지닌 지적 자본의 양과 질은 학교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차이가 나며 이 차이의 가장 큰 원인은 아이들의 가정환경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부잣집에서 태어난 운 좋은 아이는 지적 자본을 충실히 축적할 기회가 많으니 게임의 시작부터 훨씬 유리하다.

1920년대의 미국과 2000년대 한국의 교육계가 쓸모없다고 난도질하는 학과위주의 지식중심교육은 지금도 여전히 부유한 권력층의 교육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반면 현실에 걸맞다는 적성교육은 하층계급의 자식들에게 주어졌다. 적성교육이 그토록 좋은데 왜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은 유독 학과중심 교육을 고집했을까? 그들은 학과지식이 있어야만 자기들이 이미 차지한 위치와 힘을 굳건히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잣집 아이들에게 좋은 교육은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도 좋은 교육이다. 모두에게 좋은 교육을 차별 없이 부여해서 공평하게 경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 즉 같은 내용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야만 교육기회의 평등이 있고, 가난한 아이들에게도 희망이 생긴다. 엘리트 교육을 없앤다고 지식교육을 배척했다가는 정말 엘리트 그룹을 만들게 된다. 물론 그 그룹의 참가자들은 배 부르고 등 따뜻한 부유층 자녀로 제한된다.

1999년부터 한국에서 도입한 수행평가도 적성교육과 똑같은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필자는 99년 7월 ‘주간동아’ 190호에서 수행평가가 아동간의 학업 차를 더욱 벌려놓으며 결과적으로 ‘있는 집’ 아이들에게만 유리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역시 미국에서 도입한 이 제도는 미국사회의 기본적인 믿음인 평등주의(egalitarianism)에서 시작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는 극히 민주적인 개념이 교육을 망친다니 무슨 헛소리인가 할 테지만, 미국 공립교육의 평등주의는 개인 차를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는 오도된 평등주의다. 동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본래의 개념이 변색하여 결과까지 같아야 한다는 강제된 평등주의가 된 것이다.

일반적 통념과 달리 수행평가는 오히려 아동간의 차를 더욱 벌려놓으며 결과적으로 부잣집 아이들만 유리하다. 수행평가는 작성자의 글솜씨와 손재주, 그리고 미적 감각에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선생님은 보기 좋게 잘 꾸며진 과제물에 좋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그러면 누가 유리할까? 미술학원, 음악학원, 웅변학원 다니며 예체능 실기능력을 개발한 부유층 아이들만 좋다. 세상에 자기 아이 꼴찌하는 꼴 보고 싶은 부모는 없으니 여유 없는 가정은 빚을 얻어서라도 과외를 하게 된다. 그러니 사교육비는 갈수록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래도 정말 없는 집 아이들은 도움 받을 곳이 아무 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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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제대로 실력을 쌓지 못한 아이들은 현실과 부딪치며 박살이 난다. 사회는 과정을 중시하여 수행평가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아이들은 또다시 저소득-저학력 가정의 아이들이다.

결국 한국이 추구하는 교육개혁은 애초의 기대와 달리 정반대로 가고 있다. 첫째, 이미 심각한 빈부간의 차를 더욱 악화시켜 계급구조를 고착화하고 영구화한다. 일단 가난하면 평생 고단하게 살아야 하고, 그 자식들까지도 빈곤의 멍에를 벗을 길이 없도록 만드는 노예의 교육이 될 것이다. 둘째, 교육수준을 떨어뜨려 하향평준화를 불러오고, 종국에는 국가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력의 바탕은 사회구성원의 전반적인 지식수준에 있다. 특히 인력만이 유일한 재산인 우리 나라의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국 학생들의 학력수준을 이미 신문방송 등을 통해 보도하였듯 내리막길을 타고 있다면 나라의 앞날이 실로 캄캄할 뿐이다.

미국교육이 문제라지만 노벨상만 잘 받는다고 반박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미국의 저력은 사립학교에서 나온다. 사립학교의 소수정예교육이 미래의 지도자들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초등학교를 제외하고는 공-사립의 차이가 없기 때문에 한군데 구멍이 생기면 막아낼 방도가 없다. 이런 이유로 공교육의 우수성 회복이야말로 한국의 앞날을 좌우할 중대한 요건이다.

둘째, 현재 미국의 이공계대학에서 수여되는 박사학위의 60% 정도가 외국 출신 학생들에게 간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들 중 많은 수가 고국으로 돌아가지만 훨씬 더 많은 수가 미국에 정착한다. 이들로 해서 미국의 산업과 과학의 기반이 유지되고 있다.

셋째, 미국은 부자다. 회사나 학교에서 가끔씩 희한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생각이 기발하고 현실성이 있어 보이면 엄청난 액수의 연구지원금과 시설을 제공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돈과 시설에 힘입어 아무 걱정 없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다. 돈을 써야 돈을 벌 듯 돈을 써야 연구도 하고 개발도 할 수 있다.

넷째, 막강한 경제력에 바탕을 둔 탄탄한 사회구조, 풍부한 취업의 기회와 윤택한 사회보장정책이 미국 공교육의 허술함을 보충한다. 무려 3500개가 넘는 대학이 진을 치고 있어 굳이 명문을 따지지 않는다면 대학입학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과외니 학원이니 난리를 피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졸업 후에는 어지간하면 누구라도 취직을 한다. 물론 고소득을 제공하는 좋은 직장은 일류대학 출신이 차지할 확률이 높다. 직장이 아무리 많아도 여전히 밥벌이를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사회보장제도의 안전망이 튼튼히 구축되어 있다. 한마디로 살기 좋은 나라다. 바로 이것이 미국과 한국의 다른 점이며 많은 분들이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정하는 첫번째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구조는 미국과 전혀 다르다. 학업성적이 매우 우수하거나 타력에 의지하지 않고는 경제적으로 자립하기가 힘들고, 저소득층에 대한 보호정책은 아직도 구호에 그치고 있을 뿐이다. 처지면 죽는 사회, 하지만 구제할 방도가 없다. 그래서 죄없는 학교가 비난받고 끝없이 변화를 강요받는다. 그러나 사회의 기본틀을 바꾸지 않고 교육정책만 가지고는 아무런 변화도 기대할 수 없다. 학교가 잘못해서 생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섣부른 미국식 교육 따라잡기가 결국 가난한 아이들을 더욱 절망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주간동아 2001.04.17 280호 (p4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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