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0

2001.04.17

걸음마 항공산업 헬기 개발해야 뜬다

KF-16, KT-1 생산 2006년 마무리 … 신기종 개발 중단 땐 기술 퇴보 불 보듯

  •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hoon@donga.com >

    입력2005-02-25 13:3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걸음마 항공산업 헬기 개발해야 뜬다
    지난 3월20일 공군사관학교 제49기 졸업식에 참석한 김대중 대통령은 갓 소위로 임관한 젊은 ‘보라매’들 앞에서 “2015년까지 국산 최신예기를 개발하고, 21세기형 항공우주군을 만들겠다”고 역설했다. 김대통령의 발언 중에서도 관심을 끈 것은 2015년까지 국산 최신예기를 개발하겠다고 한 부분이었다. 과연 한국은 2015년 지금의 FX기나 KF`-`16기 수준의 최신예기를 개발할 수 있을까?

    정답은 “아니다”이다. 그 이유는 국방부나 산업자원부 과학기술부 어디에서도 2015년에 국산 최신예기를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대통령은 무엇을 근거로 2015년에 국산 최신예기를 개발하겠다고 연설한 것일까? 정부에서 계획을 세운 바도 없다면, 누군가가 대통령을 속이는 것은 아닐까?

    소식통에 따르면 애초 공군에서 제공한 김대통령의 공사 졸업식 연설문 초고에는, 2015년 국산 최신예기 개발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이 초고는 청와대 국방비서관실과 공보비서관실에서 가필하여 김대통령에게 올라갔는데, 국방비서관실에서는 2015년 국산 최신예기 개발부분을 삽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로서는 김대통령 연설문에 2015년 국산 최신예기 개발을 삽입한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는 아마 순수한 애국심과 최신예기 개발에 대한 염원에서 그런 문구를 집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어찌 되었든 김대통령의 국산 최신예기에 대한 개발 언급은, 국내 항공산업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국내 항공산업은 2015년에 국산 최신예기를 띄울 수 있을 정도로 탄탄한 기반을 닦아 놓은 것일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한국의 항공산업은 하루하루 생존하는 것조차도 힘들어할 만큼 숨을 헐떡이고 있다.



    걸음마 항공산업 헬기 개발해야 뜬다
    한국의 항공산업을 이끄는 견인차는 1999년 3월 삼성항공과 현대우주항공 대우중공업의 항공부문이 통합해서 출범한 한국항공우주산업㈜이다. 새 부대를 만들었으면 새 술을 부어야 하는데 한국항공우주산업은 통합 이전의 회사들이 해오던 사업만 하고 있다. 즉 삼성항공이 면허생산하던 KF`-`16기 20대 추가 생산분과 한국형 고등훈련기 T`-`50 개발, 그리고 대우중공업이 독자 개발해 온 한국형 초등훈련기 KT`-`1 생산이 이 회사가 맡고 있는 사업의 전부다.

    그런데 KF`-`16 추가분 20대의 면허생산은 2004년 종료되고, KT`-`1 생산(100여 대로 추정)도 수출이라는 ‘대박’이 터지지 않는 한 2006년 마무리된다. KT`-`1은 최근 인도네시아 공군에 7대를 수출하기로 계약했으나 물량이 너무 적어 의미가 없다. 따라서 두 사업을 종료할 시점에는 고등훈련기 T`-`50 사업만 남는다.

    T`-`50 사업은 2002년에 개발을 완료하고 이후부터는 생산부문만 남는다. 항공산업은 개발과 생산부문으로 나뉘는데, 두 부문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발전할 수가 있다. 즉 생산부문이 전투기를 생산하는 동안 개발부문은 다음 전투기의 개발에 착수해, 현재 생산중인 전투기 사업을 종료할 즈음에 새 전투기를 내놓아야 항공산업은 발전한다.

    이러한 정책을 가장 잘 펴는 나라가 일본이다. 현재 일본은 미국과 한국 공군이 보유한 최신예 F`-`16기보다 성능이 뛰어난 F`-`2기를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공동개발해 생산해 내고 있다. 한국은 사실상의 국영기업인 한국항공우주산업이 항공산업을 리드하였으나, 일본에서는 사(私)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이 맡고 있다. 일본 정부는 미쓰비시 중공업의 개발과 생산부문이 쉬지 않고 돌아가도록 배려해 주었기 때문에, 일본의 항공산업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항공산업은 외국에서 개발한 전투기를 면허생산하면서 기술을 배워 독자개발 단계로 진입한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후 일본은 항공산업의 맥이 끊어졌다. 그러다 1955년 일본 정부는 미쓰비시 중공업에 F`-`86 전투기 면허생산권을 줌으로써, 항공산업을 부활시켰다. 미쓰비시 중공업은 1960년까지 모두 300대의 F`-`86을 생산해 항공자위대에 납품해, 항공자위대의 전력을 급상승시킴과 동시에 일본 방위산업을 한차원 끌어올렸다.

    1960년 F`-`86기 면허생산을 종료하기 전 일본 정부는 F`-`104 전투기 면허생산 사업권을 미쓰비시에 주었다. 그 덕분에 미쓰비시는 쉬지 않고 61년부터 바로 F`-`104 생산에 들어가, 67년까지 모두 230대의 F`-`104 전투기를 자위대에 공급했다. 발 빠르게 달려오던 일본의 항공산업은 이 무렵부터 주춤한다. 일본 정부가 항공산업 육성문제에 대한 일관성을 잃어버려, 미쓰비시는 2년여의 공백기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69년 미쓰비시는 일본 정부의 배려로 다시 F`-`4 면허생산에 들어가 81년까지 140대의 F`-`4 팬텀기를 생산해 자위대에 납품했다. 그리고 81년부터는 세계 최강의 전투기로 꼽히는 F`-`15J 면허생산에 들어갔다. 애초에 일본 정부가 미쓰비시에 주문한 것은 F`-`15J 100대의 면허생산이었다.

    그런데 이 사업을 종료할 시점에서, 미쓰비시에 줄 일감이 떨어질 것이 예상되자, 일본 정부는 국방회의를 열고 F`-`15J기 55대 추가 생산을 결정했다(82년 7월23일). 일본 정부는 미쓰비시에 특혜를 준다는 오해보다는 일본 항공산업이 무너지는 것을 더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렇게 했음에도 미쓰비시의 일감이 또 떨어질 것으로 보이자, 일본 정부는 85년 9월18일과 90년 12월20일 각각 32대와 36대의 F`-`15J기 추가 생산을 결정해 미쓰비시의 숨통을 터주었다.

    걸음마 항공산업 헬기 개발해야 뜬다
    이러한 ‘배려’가 있었기 때문에 미쓰비시는 면허생산 과정에서 습득한 기술로 초등훈련기 T`-`1과 T`-`2, 고등훈련기 T`-`4를 독자 개발했다. 이어 현재 한국공군이 보유한 F`-`5 전투기보다 성능이 월등히 뛰어난 F`-`1 전투기를 독자개발하고, 최근에는 KF`-`16기보다 스텔스 기능과 선회기능이 훨씬 뛰어난 F`-`2 전투기를 미국 록히드마틴과 공동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戰犯)국가’다. 전범국가는 미국이나 UN의 허락이 없으면 군수물자를 수출하지 못한다. 이러한 구조하에서 일본이 방위산업을 발전시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일본은 이러한 문제를 타파하기 위해 최신예기를 외국에서 직도입하지 않고, 일본 국내에서 면허생산케 해 일본 방위산업체를 살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쓰비시에 대한 배려도 이러한 국익 추구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다.

    군사력이 크지 않음에도 일본이 중국에 맞서는 군사력을 가진 나라로 평가받는 것은 F`-`2를 공동생산할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이제 겨우 고등훈련기 T`-`50을 미국의 록히드마틴과 공동개발하고 있으니 15년 이상 일본에 뒤처진 셈이다. 그런데 한국은 T`-`50 개발 후에는 새로운 일감이 없어 개발부문 인력을 사장시켜야 할 처지다.

    이런 가운데 항공산업계에서는 항공산업을 살리고 방위력을 증강하는 대안으로 한국형 다목적 헬기인 KMH의 국내 개발 생산을 제시하고 있다. KMH는 현재 수명이 다한 경(輕)공격 헬기인 500MD와 소형 기동헬기인 UH`-`1H의 후속기로 쓰일 수 있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미국 벨사와 SB`-`427 헬기를 공동생산하고 있는데, 이 헬기의 추력을 보강하면 육군이 요구하는 KMH 수준의 헬기를 제작할 수 있다.

    교체해야 하는 500MD와 UH`-`1H 물량은 300대 정도다. 따라서 T`-`50 개발이 끝나는 대로 이 인력을 KMH 개발에 투입한다면, 병아리 단계인 한국의 항공산업은 일감 부족이라는 위기를 맞지 않고 계속 발전할 수 있다. 그런데 육군은 교체가 시급한 KMH 사업에 전력을 기울이지 않고, 대형 공격헬기를 추가로 도입해야 한다며 2조원대로 추산하는 차기공격헬기(AHX)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하지만 육군이 보유한 공격헬기의 작전 수명은 10년 정도 남아 있다. 따라서 ‘지금 시점에서는 KMH 사업을 벌이고, 10년 후에 차기 공격헬기 사업을 벌이는 것이 국내 방위산업도 살리고 육군의 전력을 극대화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차기공격헬기 사업에 참여한 외국업체에서도 나오고 있는데, 이들은 사석에서 “한국 육군에 급한 것은 KMH 사업이지, 차기공격헬기 사업이 아니다. 한국 육군이 차기공격헬기 사업에 열을 올리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T`-`50과 KMH 사업에 이어 5, 6년 후 차기공격헬기와 차기전투기(FX)의 면허생산권을 한국항공우주산업에 준다면, 2015년쯤 한국은 KF`-`16 수준의 최신예기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김대통령이 공사 졸업식에서 근거도 없이 말한 2015년 국산 최신예기 개발이 현실화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은 방위산업도 살리고, 방위력도 증강하는 길로 갈 수 있을 것인가. 전문가들은 “육군은 자군 이기주의에만 매달리지 말고 전체 국익부터 고려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