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80

2001.04.17

김근태 ‘홀로서기’ 이제부터 시작

한반도재단 창립 사실상 ‘대권 출정식’… 한화갑`-`노무현과 연대 카드 모색

  • < 조용준 기자 abraxas@donga.com >

    입력2005-02-25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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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근태 ‘홀로서기’ 이제부터 시작
    민주당 김근태 최고위원과 이인제 최고위원이 4월3일 동시에 대규모 행사를 가진 것은 분명 공교로운 일이었다. 이날 김최고위원은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한반도 평화와 경제발전 전략 연구재단’(약칭 한반도재단) 창립대회를, 이최고위원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홀에서 사실상의 ‘대선 출정식’ 같은 후원회를 열었다. 이미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두 사람이기에 우연히 벌어진 이날의 ‘기싸움’은 앞으로 여권에서 벌어질 치열한 ‘대권 각축전’의 서막을 보는 듯했다.

    사실 청와대 입장에서 보자면 같은 날 행사가 열림으로써 이위원 행사에 쏠린 스포트라이트가 줄어든 사실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적정한 한계를 의식하지 않고 마냥 치고 나가는 대선 예비주자들의 돌출 행동을 제어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 여권 핵심부의 기류였던 만큼, 김위원의 창립대회가 이위원의 후원회를 견제하는 부수 효과를 가져온 것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던 것. 물론 김위원측이 처음부터 이런 측면을 고려해 행사 일정을 잡은 것은 아니었다.

    “지지율 10% 미만 땐 기회 없어”

    사실 김최고위원 자신은 애당초 63빌딩에서의 대규모 창립대회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같이 큰 장소에서 연구재단의 창립대회와 학술대회를 화려하게 치른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행사를 치르는 데 들어갈 엄청난 재정 문제를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 따라서 김위원은 신문로 프레스 센터에서의 조촐한 행사를 예정했다. 그러나 김위원의 이런 생각은 측근 인사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이인제 최고위원의 후원회와 마찬가지로 한반도재단의 창립대회 또한 김근태 최고위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김위원에게 한반도재단의 창립은 ‘이제부터 이것저것 눈치보지 않고 2002년 대통령선거를 위한 길을 가겠다’는 홀로서기 선언의 의미를 지닌다. 김위원 캠프 한 핵심인사의 설명. “김위원이 처음 제기했던 국정쇄신론은 여당이 힘을 갖기 위해 과반을 넘어야 한다는 정계재편론으로 이상하게 변질됐고, 동등한 기회를 갖기 위해 장관직을 희망한다는 공개 의사 표시도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위원의 국민적인 지지율이 하반기까지 10%대 이상으로 오르지 않는다면 대선 출마 기회는 없다. 이제부터는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자적인 행보를 취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된 것이다.”



    현재 김위원에게 가장 큰 고민은 대중성의 빈곤. 오피니언 리더 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에서는 대통령후보로서의 자질을 상당히 인정받는 그이지만, 일반 여론조사에서는 저조한 성적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냉엄한 현실. 특히 인지도가 높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최고위원 경선은 김위원이 자신의 이러한 문제점을 절실하게 깨닫는 계기가 됐다. 7명을 뽑는 선출직 최고위원 가운데 적어도 3등 정도는 하리라고 예상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6등으로 겨우 턱걸이한 사실은 그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고, 자신이 대중적 득표력에서 문제가 있음을 인식했던 것. 이에 따라 김위원의 ‘싱크 탱크’인 한반도재단의 브레인들은 그가 민주화운동 투사와 엘리트의 이미지로 각인된 것이 오히려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면서 대중적 친밀감을 고양하는 다양한 방법을 모색중이다.

    그러나 대선 예비주자로서의 김위원이 풀어가야 할 숙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우선 민주당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동교동 구주류와의 관계 개선도 시급한 현안이다. 권노갑 전 고문 등 구주류의 핵심인사들은 김위원을 권 전 고문 최고위원직 사퇴 파동의 배후로 보고 있는 듯하다. 김위원이 정동영 최고위원을 부추겨 구주류를 몰아내려 했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색깔에서 김위원과 정위원이 서로 비슷하다는 점에 따른 오해지만, 이런 오해가 아니더라도 김위원과 동교동 구주류가 공유할 수 있는 체질상의 공감대는 많지 않아 보인다.

    김근태 ‘홀로서기’ 이제부터 시작
    너무 개혁적이고 진보적으로 비치는 것도 대중 정치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탈피해야 할 부분. 이번 한반도재단 창립대회에서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JP)가 격려사를 한 것은 김위원의 대변신을 보여준다. 이를 위해 지난 2월21일 김위원은 JP와 만찬 회동을 통해 “김명예총재는 서울대 사대 다닐 때 학생운동을 하셨던 분”이라며 “따지고 보면 오늘 학생운동의 선배님을 모신 것”이라고 JP를 ‘운동권 선배’로 한껏 예우하면서 관계 개선을 꾀했다. 물론 ‘운동권의 기수가 대권을 위해 보수 원조에게 굴신(屈身)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와 함께 민주화 투쟁에 나섰던 적지 않은 원로들이 “어떻게 JP와 손잡을 수 있느냐”며 실망과 분노의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한 측근 인사는 “(그렇게 호통을 치던 원로 인사들이) 막상 JP가 창립대회에 와서 격려사를 읽는 모습을 보고 나서는 ‘이제 통일을 시킬 놈은 근태밖에 없어’라며 흐뭇한 표정으로 대회장을 나섰다”고 말한다. 이를 통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이영희 선생의 책 제목이 주는 교훈을 실감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김근태 최고위원은 “차기 리더십의 항목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도덕적 일관성이지만 (프랑스 혁명 후) 로베스피에르가 마라를 처형했던 것 같은 철두철미한 이념의 도덕성은 아니며, 그런 도덕성은 인간사에서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어떤 이념이든 극단적으로 치닫는 것은 결국 또 다른 실패를 부른다는 사실에 눈뜬 유연성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그 대신 김위원이 강조하는 것은 정체성의 문제. 이에 대해 김위원은 “총선시민연대가 낙선-낙천운동을 벌일 때는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다가, 여당이 강력한 여당을 말하면서 법과 원칙을 말할 때는 ‘정의롭지 않은 법은 이미 법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처럼 상황에 따라 자신의 원칙을 바꾸는 것은 정체성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현재 김위원 진영은 한화갑 최고위원-노무현 고문을 잇는 3자 연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각기 영호남을 대표하면서도 개혁적인 만큼 연대가 이루어진다면 환상적인 ‘필승 카드’라는 얘기다. 물론 이들 모두가 각기 예비주자인 상황에서 과연 어느 한 명에게 힘을 모아주는 연대가 가능할 것인지 매우 불투명하고 현실성도 높아 보이지 않지만 ‘하는 데까지는 하겠다’는 것이 김위원 캠프의 전략이다. 이에 대해 김위원은 “아직 구체적으로 얘기한 단계는 아니지만, 과거 서로 비슷한 역정을 헤쳐 나왔고 어떤 사안에 대해 거의 동일한 해법을 내놓는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앞으로 진지하게 입장 조율을 해나가겠다”고 말한다.

    한반도재단은 김위원에게 일종의 ‘마당’과 같다. 본격적인 대선 주자로서의 활동을 위한 ‘판’이 마련된 것. 그러나 이런 시점에 그가 강조하는 것은 뜻밖에도 ‘성공한 대통령론’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성공해야 나도 성공할 수 있다. 김대통령이 임기 중 지속적으로 실행해오는 것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과 개혁,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나 역시 이에 전폭적으로 공감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였다는 점에서 김대통령이 실패한다면 나 역시 실패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적임자라고 자부한다. 김대통령이 성공하지 못한 대통령이 된다면 내가 대선 주자로 나갈 기회는 없다.”

    그의 발언이 단순히 ‘김심’을 확보하기 위한 수사(修辭)로 들리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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