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1

2001.02.15

세계 정복 나선 ‘은륜의 전사들’

  • 입력2005-03-18 14: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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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정복 나선 ‘은륜의 전사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게 세상의 이치겠지만 텅 빈 운동장에서 쓸쓸하게 고독한 레이스를 펼치는 비인기종목 선수들의 애환은 눈물겹고 처절하다.

    하지만 척박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틀을 깨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세계로 진출하는 비인기종목 선수들도 있다.

    정보통신과 보안시스템 전문업체인 ㈜씨큐어넷(회장 채규철)은 지난해 12월20일 국내 최초로 유럽에서 활동할 ‘씨큐어넷 프로 사이클팀’을 창단했다. 세계 정상급의 사이클 스타 조호성(27)의 꺾인 날개를 활짝 펴주기 위한 결단이었다. 국내 스포츠사상 외국에서 활동할 최초의 프로팀 창단으로 박수갈채를 받아야 할 쾌거이지만 파장은 그리 크지 않았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도 없었다.

    지난 99년 세계선수권대회(독일 베를린) 40km 포인트레이스에서 3위에 올라 국제적 스타로 급부상한 조호성은 시드니올림픽 포인트레이스 40km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지만 각국 선수들의 치열한 견제로 아쉽게 4위에 그친 세계적인 선수. 현재 세계 사이클계는 조호성의 ‘황색돌풍’에 주목하고 있다. 시드니올림픽 당시 조호성은 사이클의 최고봉인 유럽 사이클 프로팀으로부터 집중적인 스카우트 표적으로 떠올랐을 만큼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문제는 국내에 조호성의 금메달 꿈을 이뤄줄 만한 프로팀이 없다는 것. 씨큐어넷이 나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국내에서 안 된다면 외국에서 활동할 팀을 만들면 되지 않겠냐는 발상이었다.

    이런 도전적 발상의 진원지는 사이클 국가대표팀 정태윤 감독(47)이었다. 시드니올림픽이 끝난 뒤 정감독은 한국 사이클이 세계 정상권에 진입하기 위해선 유럽무대 진출이 절실하다고 보고 평소 사이클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던 ㈜씨큐어넷의 문을 두드렸다.



    프랑스 프로팀으로부터 물밀듯 밀어닥친 스카우트 제의를 뿌리친 조호성의 씨큐어넷팀 입단이 결정되자 차세대 주자인 국가대표 전대홍(24) 정해준(21) 소세환(21) 등이 차례로 움츠러들었던 죽지를 펴고 이 팀에 함께 둥지를 틀었다.

    이처럼 씨큐어넷팀의 창단에는 조호성과 이 팀의 창단 감독인 정감독의 각별한 애정이 큰 역할을 했다.

    조호성은 지난해 7월 월드컵 4차대회(이탈리아 트리노)에서 한국사이클사상 최초로 국제대회 정상에 오른 뒤 기쁨에 겨워 대표팀 정태윤 감독(47)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시상대에 함께 오르지요.”

    당시 정감독은 “아직 기뻐하기엔 이르다. 시드니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뒤 함께 시상대에 서자”며 조호성의 간곡한 청을 거절했다.

    시드니 올림픽 제패의 꿈이 무산된 뒤, 둘은 단상에 함께 오르는 꿈을 이루기 위해 국내 최초 원정 프로팀의 선수와 감독이 되기로 한 것. 이미 둘은 지도자와 선수의 관계를 뛰어넘어 아버지와 아들처럼 막역한 사이가 돼 있었다. 시드니올림픽에 앞서 전훈지인 프랑스 푸아티에에 온 조선수가 뼈를 깎는 혹독한 훈련을 소화하며 외로움을 달랜 것도 정감독의 다정한 편지 때문이었다. 이들은 현재 부푼 꿈을 안고 호주 시드니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1월19일부터 시작된 70일간의 호주 전훈이 끝나면 ㈜씨큐어넷 사이클팀은 곧바로 프랑스 푸아티에로 날아가 각종 프로투어에 참가할 예정이다.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딛고 4년 뒤 아테네올림픽 금메달의 꿈을 키우고 있는 이들의 우렁찬 페달 밟는 소리가 우리 곁에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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