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0

2001.02.08

서울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 < 서병훈 숭실대교수 ·정치학 >

    입력2005-03-17 14: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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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대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살다 보니 별일도 다 있다. 그래서 세상은 아직도 살 만 하다고 하는가 보다.

    어느 유수한 대학의 ‘입시관리처장’이 전국의 ‘공부 잘하는’ 수험생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간단하다. ‘잠을 좀더 많이 자라. 청춘을 즐기도록 해라. 일류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아등바등하면서 그저 남의 눈에 쏙 드는 모범생 노릇 하느라 좋은 세월 다 보내는데, 그렇게 하지 마라. 일류 대학 졸업장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 않은가. 고개를 돌려서 다른 쪽도 쳐다보도록 하라. 무엇보다 ‘참된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 이런 편지를 일부러 보낸 것이다.

    이 대학 관계자는 ‘고3 수험생’들이 명문대학에 들어오기 위해 청춘을 ‘탕진’하는 바람에 정작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못 이겨 무력감에 빠져 버리고 마는 일에 대해 심각하게 걱정하고 있다.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이렇게 의욕을 잃어서야 어떻게 되겠느냐는 것이다. 과연 편지 한 통이 어느 정도의 효력을 발휘할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그렇게 걱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아름답지 않은가.

    그런가 하면 이런 일도 있다. 또 다른 어느 명문 대학에서는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학교 문을 나선 지 각각 10년, 20년이 되는 졸업생들에게 ‘지금 이 시점에서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역시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지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대답한 사람들이 가장 많았다. 그리고 상당수는 자신 나름대로의 철학이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살아가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그 다음 대답이 눈길을 끌었다. 40대 응답자의 22%, 그리고 30대의 19%가 ‘충격적’인 답을 했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이다.



    일류 대학을 졸업하고 나이가 이쯤 되면 정말 바쁠 것이다. 모르긴 해도 대부분은 출세 가도를 힘차게 달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열매가 눈앞에 보일 이 중요한 시점에서 다섯 사람 중 하나는 어려운 이웃을 우선 생각하고자 한다. 남을 돕는 것, 이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솔직히, 속이 뜨끔하지 않은가.

    유감스럽게도 우리 나라 대학의 이야기는 아니다. 바다 건너 외국에서 지난 연말에 있었던 일들이다. 대학은 고등학생들에게 청춘을 즐기고 그러면서 ‘참된 인간’이 되기를 당부한다. 대학을 졸업한 뒤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로 남을 돕는 일을 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 나오게 된다.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 아닐까.

    우수학생 유치에만 관심… 참된 인간 육성은 뒷전

    서울대학교 총장이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뽑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런 직후에 나온 서울대학교 입시 개선안을 놓고 우려와 비판이 무성하다. 어떤 방향으로 간들 뒷말이 없겠는가마는, 한국 교육계 전반의 판을 짜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칠 서울대학교 입시안에는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다. 기껏 고심한다는 것이, 어떻게 하면 우수한 학생들을 ‘입도선매’(立稻先賣)할 것인지에 집중되어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던가. 소위 ‘명문’이라는 다른 몇몇 대학도 서울대에 뒤질세라 ‘본고사 부활’을 골자로 하는 신입생 자율선발을 요구하고 나섰다. 교육부가 시시콜콜 대학문제에 간섭하고 있는 것을 잘 한다고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들 대학이 마음놓고 자율선발을 한 결과가 무엇이었던가. 젊은 학도들의 창의력을 키우는 데 얼마나 기여했던가. 사회를 위해 헌신하고, 나보다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가슴 아파할 줄 아는 ‘따뜻한 인간’을 얼마나 길러냈던가. 그런 주제에 왜 본고사 타령만 그렇게 하고 있는가.

    글자 그대로 명문이 되고 싶은가. 그렇다면 ‘상위 1%’의 학생들을 독식하느라 노심초사하기 전에, 이들을 어떻게 하면 민주사회의 건전한 시민으로 가르칠 것인지 철학적인 고뇌부터 우선 해야 할 것이다. 오늘도 밤잠 못 자며 청춘을 소진하는 고등학생들을 어떻게 하면 ‘참된 인간’으로 길러낼 수 있을지 고민부터 먼저 해야 한다. ‘서울대학교’는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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